힌두 경전 <우파니샤드>에는 ‘벼락신의 언어’를 인간이 어떻게 해석하고 알아들어야 하는가에 관한 한 대목이 나온다. 벼락신 프라자파티는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 벼락의 언어로 말한다. 벼락의 언어는 벼락치는 소리-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딱딱딱’이고 힌두 경전 표현으로는 ‘다’ 소리가 세번 연속되는 ‘다다다’이다. 다다다? 이 소리로 벼락신은 무엇을 말하는가? 경전에 따르면, 첫 번째 ‘다’ 소리는 ‘다미아타’(Damyata)의 ‘다’이다. ‘다미아타’는 힌두어로 “너를 다스리라”는 의미이다. 두 번째 ‘다’는 ‘다타’(Data)의 ‘다’이고 “주어라”를 의미한다. 세 번째 ‘다’는 ‘다야디암’(Dayadhyam)의 첫 소리이며 의미는 “자비로워야 한다”이다. 이 해석학은 퍽 근사하다. 당신의 책상머리에, 바람벽에, 거실에, ‘다다다!’라고 써붙일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러지 말기 바란다. 21세기를 살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벼락신의 가르침은 “죽어라”(Drop dead!)라는 소리나 진배없다. 우리가 우리 욕망을 다스릴 수 없고 다스려서는 안 되는 시대에 “너를 다스리라”니? 세상의 돈이란 돈은 모조리 갈퀴로 긁어모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주어라”고? 주긴 뭘 줘? 남 줄 것이 어디 있간디? “자비로워라”도 바람에 말똥 굴러가는 소리다. ‘자비’로웠다가는 기업 망하고 나라 망하고 나도 망한다. 살기 위해 우리는 벼락신의 세 가지 가르침을 완벽하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 1) 너를 다스리지 말라. 탐욕은 좋은 것이다. 탐욕의 주체라는 점에서만 너는 인간이다. 2) 헌 치솔, 구멍난 냄비, 강아지똥말고는 아무것도 남에게 주지 말라. 돈은 보이는 대로 움켜쥐고 훔칠 수 있을 때는 훔치라. 노예이고 싶은가? 돈만이 너를 부유케 하고 자유롭게 한다. 3) 자비의 염에 끌리는 자는 무자비하게 망한다. 자비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것은 네가 잘라내야 하는 무겁고 추악한 혹부리이다. 그 혹부리를 달고 경쟁시대의 바늘구멍을 통과할 자는 없다. 모든 경우에 ‘나 먼저’와 ‘나부터’를 내세우라.
이 뒤집어진 벼락신의 가르침, 거기서 우리는 정확히 이 기술·금융 자본주의 시대의 ‘시대정신’을 만난다. 벼락신의 언어를 풀어내는 현대적 번역어는 ‘다다다’가 아니라 ‘탐탐탐’이다. 첫 번째 ‘탐’ 소리는 “탐욕은 다스리지 말라”이고 두 번째 ‘탐’은 “탐(貪)하라”이며 세 번째 ‘탐’은 “탐욕은 좋은 것이다”이다. 아니, ‘다다다’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해석학을 시도할 수도 있다. 첫 번째 ‘다’는 “다스리지 말라”, 두 번째 ‘다’는 “다부지게 탐하라”, 세 번째 ‘다’는 “다 탐하라, 사정없이”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당신의 자유다. ‘다다다’와 ‘탐탐탐’ 사이에 빛나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선택? 그럴 필요도 없다. 두 가지 명령을 다 움켜잡는 것이 다다다(多多多)의 시대정신에 더 잘 맞아떨어진다. “다다다, 탐! 탐탐, 다다다, 탐!” 이 지혜의 언어는 속도감, 비의성(秘義性), 간결성의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 영어로 옮기고 ‘에로이카’의 가락을 붙이면 그대로 우리 시대의 ‘만트라’(mantra)가 된다. “Da Da Da, Tam! Tam Tam, Da Da Da, Tam!”
‘다다다 탐’의 시대에 살아남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느림’은 이 시대에 당신을 죽음으로 이끌 병 가운데서도 가장 확실한 죽음의 병이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빠른 자와 느린 자로 선명히 나누고 어떤 경우에도 느린 자의 편에 줄서지 말라. 모든 느린 것들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라. 3초 이상 당신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당신의 적이다. 기다리지 말라! 기다리는 자는 죽는다. 3초 안에 문이 닫히지 않는 엘리베이터, 3초 이상 기다리게 하는 PC프로그램, 당신을 3초 이상 기다리게 하는 애인, 3초 이상 당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초보운전자, 당신을 지루하게 하는 책, 이들은 당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악마들이다. 당신은 이들을 저주하고 구둣발로 걷어차고 내던지고 갈아치워야 한다. 당신 자신이 느림의 징후를 보일 때는 지체없이 ‘업그레이드’(upgrade)하라!그런데 우리를 참으로 속터지게 하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데는 왜 시간이 걸리고 과일은 왜 천천히 익고 씨앗들은 왜 겨울 눈더미와 지층 사이에서 서서히 싹틔울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성장(growth)은 어째서 업그레이딩과 다른가? 머리(생각)의 속도는 어째서 눈의 속도보다 느린가?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다릴 일이다. 21세기에 이 모든 느린 것들은 제발 좀 없어져라. 기다리라고? 기다리면 죽는데?
도정일/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jidoh@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