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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기 전에
2001-02-02

인터넷 시대, 냅스터의 교훈과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대응전략

P2P(Peer to Peer)라는 또 하나의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지난해 인터넷업계와 음반업계의 최대 논쟁거리가 된 냅스터는, 이제 BMG를 거느린 독일계의 거대 미디어 그룹인 버텔스만에 인수된 이후 차츰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적과의 동침’을 한 이상, 적에 곧 대가를 지불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꿋꿋하게 무료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지만, 언제 유료화를 들고 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서 수많은 냅스터 이용자들이 곱게 유료화에 따라줄 리는 없다. 우선 프리넷이나 그누텔라 등 유사 서비스가 아직도 건제한데다가, P2P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파일 공유 서비스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냅스터에 의해 음반업계가 발칵 뒤집히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할리우드는 과연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미 MP3뿐만이 아닌 모든 종류의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P2P 서비스에서 나타나고 있는 동영상 파일의 공유 문제가 조만간 할리우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시간30분 분량의 영화를 공유할 수 있으려면, 이에 적합한 전송속도가 보장돼야 한다. 또한 여러 편의 영화파일을 한꺼번에 보유하고 있으려면, 개개인이 소유한 저장공간도 지금보다는 훨씬 늘어나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전세계적인 고속인터넷 서비스의 확산과 저장용량의 확대가 계속된다면, 영화파일을 공유하는 서비스가 조만간 나타나리라는 것이 인터넷업계와 할리우드의 공통된 인식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입장에서도 이런 영화파일의 공유 서비스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금과 같이 영화를 촬영해 최종 상영을 하는 데까지 드는 시간적 금전적인 부담을 생각한다면, 디지털로 제작해 배급과정 없이 바로 최종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미국의 음반업계에서 비용을 최소화해 제작한 뒤, MP3로만 판매하는 음반들을 출시하기 시작한 것은 좋은 예다. 더구나 냅스터와 같은 서비스가 나타나기 전에 인터넷을 이용한 배급시스템을 완료시키지 않으면, 음반업계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하지 않으란 법도 없다는 잠재적 위협까지 할리우드를 재촉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흐름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마다 그 대응방법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사안의 시급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것. 그중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스튜디오는 폭스다. 폭스를 소유하고 있는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이 지난 1월4일, FoxNews.com, FoxSports.com, Fox.com 등 뉴스/엔터테인먼트 관련 인터넷 서비스들을 다시 방송 계열사인 Fox Network에 축소, 흡수한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평소 인터넷의 영향력을 폄하하는 것으로 유명한 루퍼트 머독에 의해 내려진 이번 결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반면 컬럼비아-트라이스타를 소유하고 있는 소니의 경우, 소니 픽쳐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라는 자회사를 통해 인터넷을 통한 본격적인 비디오-온-디멘드(VOD) 서비스를 준비중이라 눈길을 끌고 있다. 말 그대로 소니가 소유한 영화들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게 해줄 VOD 서비스는 아직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조만간 초기 버전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목할 것은 디즈니 역시 Movies.com을 통한 인터넷 영화정보 서비스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특별 연구팀을 배치해 인터넷을 통한 영화 서비스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아직 자체적으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해 Hypnotic이라는 인터넷 영화 서비스에 지분을 투자하면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한편 파라마운트는 계열사인 비디오 대여 체인점인 블록버스터 때문에 직접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없는 입장에 처한 경우다. 재미있는 것은 오히려 블록버스터가 엔론 브로드밴드라는 고속인터넷 서비스업체와 손을 잡고, 지난해 여름부터 인터넷을 통한 VOD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 EBEntertainment라고 알려진 그 서비스는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북서부 지방의 일부 작은 도시들에서 시범 서비스를 진행중인데,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습게도 파라마운트와 블록버스터의 모회사인 바이어컴이 얼마 전 분사했던 MTV.com과 VH1.com을 수익성 제고라는 명목으로 다시 본사로 끌어들인 것으로 알려져, 전반적인 인터넷 관련된 전략의 수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처럼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을 통해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하고 있는 워너브러더스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현상황은 그야말로 ‘갈팡질팡’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소개했듯이 Pop.com을 거의 버리다시피 했다가 CountingDown.com으로 부활시킨 드림웍스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모두가 ‘영화판 냅스터가 나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라는 명제에는 동의하지만, ‘그때가 과연 언제가 될 것인가’는 섣불리 단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날’이 오면, 과연 어느 스튜디오가 웃고, 어느 스튜디오가 울게 될까? 자못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 냅스터 홈페이지 ::

www.napster.com

■ 하이프노틱닷컴 홈페이지 ::

www.hypnotic.com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bandee@channel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