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많은 게임이 시장에 나왔다. 어떤 게임은 나왔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어떤 게임은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고 나왔다가 그만큼의 비난을 받으며 묻혀버린다. 대중적인 관심은 받지 못하지만 몇몇 열혈 플레이어들이 떠받드는 게임이 있고,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는 게임이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올 한해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드래곤 퀘스트7>이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나온 일본 롤플레잉 게임인데, 일본에서만 거의 400만장이 팔렸다. 가격도 다른 게임보다 비싸서 한장에 9만원 정도나 한다. 매출은 3600억원쯤이다. 제작비를 아무리 많이 잡아봐도 순익만 2500억원 이상인 셈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돈을 번 게임은 따로 있다. <포켓 몬스터>는 게임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나오는 족족 히트한 ‘녹, 적, 청, 피카추’ 버전에 이어 올해 금, 은 버전이 새로 나왔고, 이제 ‘크리스털’ 버전이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정작 게임보다 ‘부수익’이 더 크다. 버전이 바뀔 때마다 TV 애니메이션이 새 시리즈로 이어지고, 적당한 시점에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속속 개봉된다. 게임 관련 캐릭터 산업의 규모는 더욱 놀랍다. 각종 인형에 문구에 심지어 점보 여객기(모형이 아닌 진짜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팬시 상품이 일본은 물론 한국과 미국, 유럽까지 강타했다. <포켓 몬스터>는 ‘원 소스 멀티 유즈\\\\\\\\\\\\\\\'라는 최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방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PC게임에는 비디오게임만큼의 흥행작은 없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디아블로2>가 100만장을 겨우 넘긴 정도다. 1편의 명성과 발매를 기다리던 뜨거운 열기와 비교하면 많이 미흡한 수준이다. <디아블로2>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맵이 지나치게 넓고 복잡한 등 난이도가 올라가서 소프트 유저에게는 조금 버거웠다. 그래서 1편만큼 대중적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게다가 멀티플레이 지원이 원활하지 못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이 점 때문에 <디아블로2>의 인기가 쉽게 식어버렸다.
<디아블로2>뿐 아니라 다른 게임들도 그다지 팔리지 않았다. 투자와 제작 열기에 비해 판매량은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스타크래프트>처럼 전세계 판매량의 반 정도로 한국에서 소화하기는커녕, 10만장을 넘긴 게임이 거의 없을 정도다. 고정팬이 있는 <삼국지7> <레드얼럿2> 같은 게임도 전작의 명성에 비해 성공하지는 못했다.
‘블리자드’나 ‘EA’ 같은 대형 제작사가 보여준 한국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어긋난 셈이다.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서 그렇게 많이 팔린 건 한국의 멀티플레이 환경이 세계 최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게임방뿐 아니라 가정에도 초고속 통신망이 깔리기 시작했고, 이는 게임시장에서 역효과를 내고 있다. 대형 포털에도 버젓이 등록돼 있는 와레즈 사이트에 가면 못 구할 게임이 없다.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 CD 장수를 늘리는 작전도 이제는 소용없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늘어나도 게임 판매량은 줄어든다. 그래서 다들 온라인 게임을 기웃거리지만 수익을 내고 있는 게임은 드물다.
내년에는 특히 국산게임이 많이 출시될 것이다. 당장 올해 말 국산게임 최고의 흥행작 <창세기전> 시리즈의 최신작이 나올 것이고, 그 밖에도 올해 투자를 받아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게임이 많다. 한국게임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을 지 없을지, 내년이 고비다.
박상우/ 게임평론가sugulman@cho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