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사양과객’(斜陽過客)이라 쓰는 선셋 비지터의 첫 게임 <1000xRESIST>는 처음엔 이 세상 배경이 아닌 SF로 보였다. ‘과수원’이라는 거대한 시설에 마스크를 쓴 ‘자매들’이 자신의 기능을 이름으로 부르며 살아가는데, 유저는 ‘워처’가 되어 자매들이 신으로 추앙하는 ‘올마더’의 기억을 열람하는 임무를 맡는다. 1천년 전, 외계에서 온 미지의 ‘점거자’에 의한 ‘눈물병’(눈물이 멈추지 않아 몸의 모든 수분을 배출하고 사망하는) 팬데믹으로 인류가 전멸했다. 10대 소녀 아이리스만 면역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리스가 지금의 올마더이며, 모든 자매들은 그 클론인 것. 게임을 진행하면서 유저는 아이리스가 인류의 구원자 혹은 클론들의 신이 되기엔 지극히 평범하고 이기적이며 삐뚤어진 성격의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여기에 이민 2세의 디아스포라가 더해진다. 명확한 기믹이 있는 게임이라기보다 오직 상호작용 스토리텔링만 하는 지루한 워킹 시뮬레이터로 플레이하던 중, 아이리스의 부모가 어디서 처음 만나 왜 이민을 택했는지 나오는 대목에서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하얀 최루탄 연기 속에 곤봉을 든 무장경찰을 피해 도망치는 시위대와 바닥에 내팽개친 검은 우산을 본 것이다. 지난해 말, 이란 반정부 시위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탄압당할 때 느꼈던 답답함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끝내 좌절되는 것을 바라볼 때의 기분과 똑같았음을 되새겼다. 분명히 이 세상에 발붙이고 선 게임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세대에 걸쳐 각인되는지를 더듬는 동시에 클론조차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원본의 체제에 저항하는 서사를 통해 필수 불가결한 혁명과 그 너머의 미래까지 나아간다.
온 세계가 권위주의 정권의 포악한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헛소리와 그 부역자 지지자들이 같이 떠들며 내뿜는 악취에 신음한다.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의 깡패는 다른 깡패와 함께 시위대의 피가 채 마르지 않은 땅을 공습하고서 전쟁이 아니라 우긴다. 답답하게 지켜보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을까. 더블 파인 프로덕션의 초현실적인 어드벤처게임인 는 이런 고민에 어떤 대답이 되어주었다. 높은 산봉우리에서 시작되어 모든 것을 시들게 만드는 시커먼 덩굴의 압제에 뒤덮인 세상, 한 등대가 눈을 뜬다. 부서진 잔해를 다리 삼아 일어선 등대는 덩굴을 피해 날아온 새와 함께 산봉우리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것은 어둠을 빛으로 밝혀 정화하는 일. 이렇게 고된 길을 걷던 등대가 막다른 바다에 닿자 스스로 배가 되는 장면이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올바른 길을 비추는 빛이 없다면, 스스로 나아갈 길을 밝혀야 한다는 것. 답답한 현실에 눈을 돌리거나 감아버린다면 여정은 멈추고 혁명은 끝날 것이다. 앞의 게임에서도 냉정한 사실 직시가 바로 천 배의 저항이 비로소 시작되는 순간 아니었던가. 빛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나는 이렇게 게임에서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