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간/ 중국, 프랑스/ 2025년/ 156분/ 경쟁
이걸 어떤 영화라고 해야 할까. 판타지? 영화를 위한 영화? 기억과 이미지에 대한 우리 인식에 도전하는 실험? 비간 감독의 네 번째 작품 <광야시대>를 마주하는 순간, 의미와 장르적 범주로 이 영화를 해석하는 시도는 불가능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비간은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세트를 재현한 무성영화로 문을 연다. 영화의 화신처럼 보이는 신비로운 여인(서기)이 <노스페라투>와 <프랑켄슈타인>이 뒤섞인 듯한 어느 괴물을 돌보고 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소동극을 시작으로 영화는 다섯 개의 다른 이야기를 그려낸다. 근미래, 인간들은 꿈을 꾸지 않으면 불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꿈꾸는 자는 불꽃을 피우다 녹아내리는 촛불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타즈머’라 불리는 이단자들은 단명할지언정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양천새가 연기한 판타즈머는 꿈을 통해 20세기 중국사의 다양한 시공간을 떠돈다.
영화사 100년을 집대성하려는 비간의 야심이 꿈의 문법을 닮아 분절된 각각의 에피소드를 횡보한다. 판타즈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필름 누아르적 세계의 추격전, 구로사와 아키라식 우화의 배경이 되는 설원 속 사찰, 1970년대 미국 영화에 어울리는 도박사의 세계 등을 거쳐 새해 전야에 도착한다. 1999년의 끝에서 21세기가 젊은 연인을 기다리고 있다.
<광야시대>는 매우 직접적인 동시에 관객을 패턴 없는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 영화다. 이 종잡을 수 없는 시도를 영화사의 메타 텍스트로 읽으려는 노력 자체가 어느 순간 어리석게 느껴진다. 관객은 서사를 배열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을 포기하고 이미지 자체에 몰입해야 한다. 어느덧 비범한 묵상과 과시적인 기교가 동시에 손짓한다. 그 가운데 문득 우리를 몽환에 젖게 하고 고양시키는 순간이 명멸하는데, 개별 에피소드들이 연결된 옴니버스 구조가 감독의 전작 <지구 최후의 밤>(2018)만큼 응집력 있는 마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한다.
영화의 절정은 30분간 지속되는 장대한 롱테이크다. 세기말에 판타즈마와 그의 연인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모습은 차이밍량, 왕가위를 거쳐 현대 뱀파이어의 전형까지 가 닿는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의 끝에서 비간의 메시지는 노골적일 정도로 선명해지며, 자각몽에서 깨어난 이의 환희로 가득찬 피날레를 선보인다. 촛불로서 녹아내리는 극장과 관객이 거기에 있다. 빛은 뜨겁고 눈부시다. 엔딩크레디트 앞에서 확신하기를 적어도 비간의 <광야시대> 속에서 영화는 이미 부활했다. 그 순간의 목격을 위해, 영화의 전체에 기여하는 부분들이 다소 지난하더라도 기꺼이 견뎌볼 가치가 있는 꿈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