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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7호 [스페셜] 경계에서 중심까지, 활약하는 한국계 감독들 ① 코고나다 감독, <빅 볼드 뷰티풀>을 말하다
남선우 2025-09-23

첫 시리즈 연출작 <파친코> 시즌1 촬영 당시 부산에 머물렀던 코고나다가 전작 <콜럼버스>(2017), <애프터 양>(2022)보다 한결 규모가 커진 신작으로 이 도시에 돌아왔다. <빅 볼드 뷰티풀>은 코고나다가 처음으로 타인이 쓴 각본을 영화화한 것이나 핵심 컨셉부터 주요 장면까지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로 빼곡하다. “나도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사라진 시간, 사라질 기억을 스크린에 붙잡아두기 위해 프레임을 정돈해 온 시네아스트는 이번에도 지난날로 향하는 문을 연다. 그 손잡이를 돌리는 데이비드(콜린 패럴)와 사라(마고 로비)는 신비로운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유년기부터 당장 어제처럼 느껴지는 가까운 과거로까지 모험을 떠난다. 익숙한 여행지는 그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젊은 신체, 전 연인의 지친 표정까지 생생하게 제공한다. 여기서 무언가 되돌릴 수 있을까?

무엇도 되찾을 수 없을지라도, 데이비드와 사라는 함께 걸음을 내디딘 서로가 있음을 자각하지 않을까.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길을 잃었고, 그 점이 둘을 진정으로 연결한다.” 코고나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이런 식의 고요한 긍정이 존재해 왔다. 오는 10월24일 국내 정식 개봉에 기해 더 긴 인터뷰를 <씨네21> 지면에 옮길 것을 약속하며, 코고나다가 BIFF 데일리 매거진을 위해 그려준 <빅 볼드 뷰티풀>로의 약도를 먼저 펼친다.

아니메의 상상력을 열쇠 삼아

“아시아 애니메이션, 특히 일본 ‘아니메’의 영향을 어떻게 서구적인 할리우드 영화에 녹일 것인가. 그 질문으로 <빅 볼드 뷰티풀>을 시작했다. 특정한 매개를 거쳐 여기 아닌 어딘가로 가는 설정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 같은 영화들이 떠오르지 않나! 미술감독, 촬영감독과도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세스 리스)에게도 ‘문’만 두자고 제안했다. 원래 각본에는 문이 아닌 건물이 있었다. 데이비드와 사라가 차를 세우고 등대나 학교를 발견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러나 건물 전체가 아닌 문 하나만 있다면 그 문 너머로 어떤 공간이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다. 무엇이든 가능해진다. 내가 애니메이션에서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굳이 많은 설명 없이, 관객이 그냥 받아들이게 하는 것.”

<빅 볼드 뷰티풀>

때로 연극처럼, 결국 뮤지컬도

“<빅 볼드 뷰티풀>에는 애니메이션만큼이나 연극적인 요소도 많다. 이 영화는 사라와 데이비드가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다. 마치 심리치료에 임하듯, 그들은 과거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친 건지 알기 위해 과거를 재현해 본다. 영화에는 마치 연극 무대 같은 빈 공간도 등장한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그 장면에 대해 너무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물들이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공터에서 자기 감정의 진실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반대로 뮤지컬은 훨씬 인공적인 연출과 과장된 표현을 허용한다. 나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느리고 조용한 시네마를 사랑하지만, 정반대인 뮤지컬도 좋아한다. 이 영화도 그걸 포용하고자 했다. 12살의 사라가 그랬듯, 환상적인 사랑과 마법을 믿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서.”

혼자 결혼식에 가본 적 있나요?

“사라와 데이비드가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처음 만난다는 전제가 재밌었다. 싱글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단순한 신체적 끌림 이상을 느낀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에 결혼식이라는 건 참 이상하고도 현대적인 현상이다. 그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일종의 의식인데, 식장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사랑을 냉소한다. 그럼에도 결혼식이라는 단 한 번의 자리에서만큼은 모두가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를 축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싱글이고, 애정 문제로 괴로운 상태라면 얘기가 다르다. 결혼식이야말로 외로움이 증폭되는 장소일 수 있다. 처음 이 장면을 떠올린 시나리오 작가도 혼자 많은 결혼식에 참석해 외로웠던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 나는 그 상태가 이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이라는 사건이 사라와 데이비드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서 더욱.”

대담한 모험의 미더운 동반자들

“콜린 패럴은 눈빛으로 역사를 전하는 배우다. 그에게는 그냥 카메라를 가져다 대면 된다. 그럼, 우리에게 해줄 말이 아주 많은 캐릭터 한 명이 바로 나타날 테니까. <애프터 양>에서 콜린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연기했는데, 언젠가 그와 다른 식의 작업도 해보자는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이 영화에서는 뮤지컬 무대에 선 콜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마고 로비에 대해서는 내가 콜린에게 느껴온 것만큼의 좋은 이야기를 여럿에게 전해 들었다. 세계적인 스타가 현장에서 모두와 친하게 지내서 다들 마고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콜린과 마고는 비슷한 영혼의 소유자 같았다. 우리 셋만 텅 빈 무대에 모여 리허설 한 일주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처럼 훌륭한 배우에게는 모든 걸 믿고 맡기고 싶어진다. <빅 볼드 뷰티풀>의 음악감독이자 거장, 히사이시 조에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 상실을 사유하기 좋은 매체

“영화는 시간을 기록하고 포착한다. 그래서 모든 영화는 관객에게 ‘기억’이라는 경험을 준다. 지나온 과거를 보여준 다음 몇 번이고 반복 재생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정수다. 그래서 영화 외의 어떠한 매체도 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을 탐험할 기회를 주지 못한다. 나는 바로 그 점에 매력을 느낀다. 우리는 늘 과거의 기억을 갖고 현재의 자신을 정의한다. 그 사실은 언제나 나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은 곧 과거가 될 것이고, 당장 일주일만 지나도 이 대화는 추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문을 열고 이때로 돌아와 더 나은 인터뷰를 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상실을 의식하며 현재에 머무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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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소니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