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로즈니차. 이 이름의 무게는 우리가 사는 현실의 풍경이 전쟁의 이미지로 휩싸이고 있는 지금, 더 무겁다. 1964년 벨라루스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자란 그는 2000년 무렵부터 꾸준히 인류의 폭력을 다큐멘터리로 목도하고, 극영화로 전환해 왔다. 비극의 현장을 비극 그 자체로 진술했던 그의 마스터 클래스 제목이 ‘증언의 방식: 바라보고 기억하다’임은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경력을 일약 압축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발생한 인간들의 고통과 시체 더미를 보여준 다큐멘터리 <봉쇄>(2005), 한 러시아 트럭 운전사의 시선을 빌려 인간의 갖은 악행을 로드 무비 형식으로 풀어낸 극영화 <나의 기쁨>(2010) 등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세계는 늘 우리의 비극적 감각을 일깨우는 파문으로 이어져 왔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섹션에 초청된 그의 신작 <두 검사>(2025) 역시 1937년 스탈린 체제의 권위적 부조리를 다루며 사회 비판적 요소를 극의 중핵에 둔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이자 프랑수아 샬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다만 <두 검사>의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재현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르게이 로즈니차가 마스터 클래스에서 밝힌 대로, 그가 역사를 통해 환기하는 사실은 트럼프와 푸틴의 시대를 사는 현재의 우리가 마주한 상황이기도 하다. 극영화 <돈바스>(2018)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감독상, 다큐멘터리 <바비 야르 협곡>(2021)으로 칸영화제 골든아이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는 수상 실적만으로 그의 사유를 축약하는 일은 마땅치 않을 것이다. 9월20일 16시부터 17시 30분까지 진행된 마스터 클래스 ‘세르게이 로즈니차, 증언의 방식: 바라보고 기억하다’에선 그가 영화를 대하고, 현실을 만드는 형식에 대해 더 깊숙하게 청취할 수 있었다. 하나의 질문에 30분 이상의 답변이 이어질 만큼 자기 연출론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그의 말을 몇 가지 키워드로 기록했다.
수학과 영화, 논리의 집
‘증언의 방식: 바라보고 기억하다’라는 제목은 결국 ‘성찰’이라는 영역에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영화는 우리가 증언하는 일에 대한 일종의 성찰에서 출발했다. 우선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난 젊을 때 수학이란 독에 매료됐었다. (그는 키이 공과대학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했다. - 편집자) 지금 돌아보면 으레 말하는 ‘AI'의 논리를 공부하고 싶었던 것 같다. 특정한 논리 구조를 만들어 그 안에서 계속하여 생각하는 방식이다. 이후엔 모스크바 러시아국립영화학교에서 극영화를 배우긴 했으나, 영화 만들기도 수학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영화 역시 특정한 하나의 수학적 모델, 통찰의 기구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아카이브 푸티지 영화를 만들 때, 실제로 필름을 만지는 작업보다 우선하는 일은 이 영화만의 논리적 개념을 설정하는 것이다. 특정 주제를 하나의 논리적 축으로 삼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내러티브를 정한다. 극영화라면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일지, 어떤 제한을 둬야 할지 정한다. 스스로 설정한 제약에 따르면 각 시퀀스의 카메라 위치는 마치 수학 공식의 답처럼 유일해진다. 왜냐, 영화란 결국 만드는 이가 구축한 진술(statement)이다. 당신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정했다면 그 과정은 특별히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중요한 바는 연출자의 개인적 진술에 마땅한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라는 관찰의 윤리
픽션과 다큐멘터리는 다르다. 분명하다. 픽션에서 연출자는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반면에 다큐멘터리엔 분명한 윤리적 기준이 존재한다. 카메라 뒤에 서서 어떤 것을 목격하고, 어떤 것을 목격하면 안 될지 고심해야 한다. 단순히 무지한 목격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즉 다큐멘터리는 매우 위험한 도구다. 논픽션의 카메라는 일상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과 정보를 고정하고,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이들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는 그저 기록하는 방식이 아니다. 현실을 촬영하거나 편집하면 그 순간부터 영화 속의 현실은 오직 당신과 현실의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하이젠베르크가 말한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관찰이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 종종 다큐멘터리스트들은 본인의 영화에 대해 ’내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정의하지만, 한편으로 이 주장은 모순적이기도 하다. 결국 다큐멘터리 역시 영화를 만드는 이의 해석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다큐멘터리엔 특정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 군중을 주인공으로 둔다. 타인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고 싶기도 했고,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봉쇄>에서 다룬 레닌그라드 포위전으로 실제 수백만 명의 사람이 잔혹하게 죽었다. 그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는 ‘이런 전쟁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승리했다’라는 식의 양상을 드러냈다. 대신 나는 친구가 보여준 6시간짜리의 영상을 보고 3년 동안 고민했으며, 결국엔 그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영화로 만들고자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영하 30도의 사회가 어떻게 파괴됐는지를. 다만 기존 푸티지에 없던 소리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영화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죽은 아이를 안고 오는 장면에서 난 사람의 울음소리를 맞춰 넣지 않고, 바람 소리를 추가했다.
희망은 영화 바깥에 있다
내가 만든 영화들 속에 희망이 존재할 순 없다. 홀로코스트를 보여줄 때 대체 어떤 희망을 말할 수 있겠는가. 대신 그 영화 안팎에 어떠한 희망이 있다면 그건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두 검사>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를 만들어 나를 포함한 우리가 성찰할 수 있고, 지금 우리의 사회에 과거의 악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면, 바로 그곳에 희망이 있다. 다행히 영화를 만드는 동력이 떨어지진 않는다. 어떤 영화를 만들 땐 이미 다음 영화의 주제가 정해진다. <두 검사>의 아이디어는 이전에 만든 다큐멘터리 <재판>에서 시작됐다. 국가에 저항한 일련의 지식인들에 대해 스탈린 체제가 어떤 방식의 재판으로 사회를 분열시켰는지를 더 말하고 싶었다. 때론 하늘이 영화 만들기를 도와줄 때도 있다. 꿈속의 누군가가 “어디에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푸티지가 있다”라고 말했고, 그 꿈을 따라갔더니 실제로 소련이 남긴 네거티브 필름을 찾은 적도 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칼 융이 말한 ‘동시성’(synchronicity)의 이론 같다고 느낀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 다만 내가 특정한 방향을 잡고 항해한다면 결국엔 그에 맞는 파도가 온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