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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6호 [인터뷰] ‘다른 할리우드 영화’이자 ‘다른 한국 영화’가 되기를. <프로텍터> 배우 밀라 요보비치, 애드리언 그런버그 감독
남지우 사진 최성열 2025-09-22

매일 밤 자정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상영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미드나잇 패션’은 밤샘마저 각오한 가장 열정적인 영화 팬들이 모이는 자리다. <프로텍터>의 월드 프리미어를 앞두고 마주 앉은 밀라 요보비치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후 편집 과정에서 부산 관객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싶다”라며 “영화를 위해 개선할 점 세 가지만 말해달라”는 이례적인 요청을 건넸다. 데뷔 40년 차. 틴에이지 모델로 시작해 <제5원소>(1997)의 히로인이 되었고,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15년간 이끌어온 배우에게 신작 <프로텍터>는 또 다른 분기점이다.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시험하고, 한국 제작진과의 협업을 통해 가능성을 모색하며, 동시대 여성 액션의 현실적인 의미를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린 밀라 요보비치의 진솔한 목소리를 전한다.

밀라 요보비치, 애드리언 그런버그(왼쪽부터).

- 부산에 온 소감은.

밀라 요보비치 정신없지만 흥미진진하다. 우리가 마음과 영혼을 쏟아부은 이 작은 영화를 부산에서 처음 소개할 수 있어 큰 영광이다.

애드리언 그런버그 베니스나 베를린보다 더 흥분되는 면이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한국 콘텐츠의 팬이다. 축구 광팬으로서 2002년 월드컵을, 토트넘 홋스퍼 팬으로서 손흥민 선수도 좋아한다. 삶에 우연히 스며든 한국적인 요소가 많다.

- 한국 작가의 각본으로 한국 제작사가 제작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국내 관객들이 의외의 앵글에서 흥미를 느끼게 될 것 같은데. 무엇이 이 작품으로 당신을 이끌었나.

밀라 요보비치 주제에 깊이 공감했다. 인신매매는 전 세계적인 문제지만 17살 딸을 둔 부모로서 개인적으로도 다가왔다. 내 딸이 납치된다고 상상하는 건 부모가 꿀 수 있는 최악의 악몽 아닌가. 영화의 폭력은 강렬하고 날것 그대로지만 불필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여성이 거대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현실성을 느끼게 한다. 아이를 위해 포기하지 않는, 모든 엄마가 공감할 정서가 문봉섭 작가의 시나리오에 아름답게 녹아있었다.

애드리언 그런버그 멕시코에서 TV 시리즈를 막 끝냈을 때 시나리오를 읽고 즉시 매료됐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많이 갖췄고 밀라가 이미 캐스팅된 상태라 그녀의 모습을 그리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와 한국의 조합이지만, 그 안에 참여한 사람들의 내면이 담겨있다. 밀라와 내가 가져온 내면은 할리우드도, 한국도 아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다른 할리우드 영화’이자 ‘다른 한국 영화’로 봐주길 바란다.

- 밀라 요보비치가 주연 배우를 넘어 프로듀서로서 영화에 깊이 관여했다.

밀라 요보비치 이제 아이가 셋이고, 원한다면 언제든 은퇴할 수도 있다 (웃음). 하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이 프로젝트에서는 예술가로서의 나를 최대한 표현하고 싶었다. 첫날부터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수정했고, 음악과 색 보정 등 후반 작업 과정에도 전방위적으로 참여했다. 80년대 찰스 브론슨이나 <람보>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처럼 느껴지길 바라며 영화에 거친 질감을 더하고 캐릭터마다 고유의 색깔을 부여했다. 경력을 통틀어 프로듀서로서 작품에 이렇게 깊이 관여한 건 처음이었지만,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 멜 깁슨실베스터 스탤론 등 20세기 할리우드의 마초적 액션 아이콘들과 작업해 왔다. 밀라 요보비치를 리스트에 더하는 건 연출자로서 흥분되는 일이지만, 동시에 대중에게 각인된 기존 이미지를 넘어서는 차별점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겨준다.

애드리언 그런버그 밀라의 오랜 팬으로서 <제5원소>(1997)는 내게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그는 멜 깁슨이나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액션 영웅이지만, 거기에 여성적 관점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 역시 여성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에 남성 영웅과 여성 영웅의 차이와 유사점을 탐구하고 그들을 더 믿음직하게 만드는 과정은 멋진 경험이었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처럼 양식화된 세계관이 아닌 평범한 도시의 평범한 여성을 현실적으로 그리는 데 집중했다. ‘비범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하는 것’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밀라 요보비치 화려한 할리우드식 무술이 아닌 현실적인 액션을 원했다. 나 같은 사람이 세 배는 큰 남자를 쓰러뜨리는 걸 설득력 있게 보이고 싶었다. 주인공 ‘니키’와 같은 최정예 군인은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법을 알고 있고, 훈련된 여성이라면 기습을 통해 누구든 제압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재밌는 건, 테스트 상영 때 여성 관객들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한 반면, 남성 관객들은 믿기 힘들다고 하더라. 남성들은 <람보>를 보며 ‘나도 할 수 있어!’라고 하지만, 여성이 하면 ‘저건 좀…’ 하는 식이다. (웃음) 이 영화는 여성 관객들에게 확실히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 기대한다.

- 영화 속 니키 모녀에게 닥쳐오는 무자비한 폭력은 현실 세계에서 여성과 소수자가 이유없이 겪는 일상적인 폭력과 부조리와도 공명한다. 이에 어떻게 저항하고 행동하고 싶은가.

애드리언 그런버그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나라(멕시코)에 살고 있기에 관련 뉴스를 더 자주 접한다. <람보 : 라스트 워>(2019)도 젊은 여성이 멕시코인에게 납치되는 줄거리였고, 넷플릭스 시리즈 <반디도스>(2024~2025)에서도 아동 성매매를 다루면서 많은 조사를 했다. 17살 딸을 둔 아버지로서, 나와 밀라, 문 작가 모두가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어떨까?’라는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며 예술가로서 ‘현실적인 반응은 무엇일까?’를 상상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밀라 요보비치 딸들에게 자기방어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가르치는 편이다. 큰딸(배우 에버 앤더슨)에겐 발레가 아닌 태권도를 ‘억지로’ 시켜 검은 띠까지 따게 했다. “우리는 남자들이 우리를 억누르려는 세상에 사는 여성들이야. 너희는 강해져야 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해”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왔다. 세상은 불평등하고 그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세상 대부분의 곳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이 책 읽는 것을 원치 않고, 맞서 싸우는 것을 원치 않고,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순종하고, 자신들을 돌보고, 자신들 아래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럴수록 여성들은 더 똑똑하고, 빠르고, 허를 찌를 수 있어야 한다. 무술이 바로 그것을 가르쳐주며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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