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에서 <지난 여름>을 찍고 돌아온 서울. 최승우 감독은 전작의 깨달음이 “일상에 들어서니 무색할 정도로 감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신 그의 눈에는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바쁘게 반복적인 일상을 살면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서울의 초상이 들어왔다. 전작의 시공간을 완벽히 대비시킨 신작 <겨울날들>은 아무 말조차 할 수 없는 한기만이 맴돈다. 무언의 영화. 이는 “말하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면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최승우 감독의 확고한 선언이다. 언어가 유실된 자리에는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영화를 만들며 가장 먼저 떠올렸던 “철거 현장에서 해체되고 부서지는 파열음”을 비롯해 모두가 시체처럼 침묵을 지키는 출퇴근길이 그러하다. “언젠가 한 번 사람들이 모두 휴대폰만 보고 귀를 막고 있는 출퇴근길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목적지만 설정해 둔 채 한 곳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현실의 지침이 턱끝까지 느껴졌다.” 영화 속 침묵만큼이나 더 거칠게 다가오는 것은 일상의 반복이 자아낸 무게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은 그 중력을 가중한다. “무거운 발을 이고 다음 날 새벽이면 또 내려가야 하고, 밤이면 또 올라와야만 한다.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가 서울의 일상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어느 인물도 서로를 대면하지 못한 채 홀로 존재하는 황량함의 이미지들. 하지만 최승우 감독의 영화에는 새로운 변화가 감지될 예정이다. “그간의 영화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뿐이었는데 다음에는 타인이 생길 것 같다. 나 자신과 비슷한 한 생명을 드디어 만들 용기가 생겼다.”
BIFF #6호 [인터뷰] 침묵의 무게, <겨울날들> 최승우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