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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6호 [씨네초이스] 사일런트 프렌드 Silent Friend
김소미 2025-09-22

일디코 에네디/ 독일, 헝가리, 프랑스/ 2025년/ 147분/ 아이콘

9.24 B2 15:30 / 9.25 B1 19:30

일디코 에네디 감독의 <사일런트 프렌드>가 비추길, ‘식물들의 사생활’은 인간이 범접하기 힘든 연대기로 흐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인간이 아니라 독일 마르부르크 지역에서 수 세기 이상 살아남은 어느 은행나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식물의 시간관으로 축조된 영화답게 <사일런트 프렌드>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유유히 넘나들면서 인간, 그리고 식물의 생애를 기묘하게 엮어나간다.

일디코 에네디는 긴 공백기를 뚫고 발표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에서처럼 식물적 기질과 자태를 지닌 인물들을 이번에도 불러들인다. <사일런트 프렌드>로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양조위가 대표적이다. 때는 2020년 팬데믹, 독일 대학에 초빙된 홍콩 신경과학자 토니 웡(양조위)은 캠퍼스의 고독 속에서 어느 프랑스 과학자와 화상 채팅을 통해 서로의 진심을 탐닉한다.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20세기 초입에 식물학에 뛰어든 한 젊은 여성의 탐구열을 관찰하고, 1970년대 여름철을 배경으로 식물 연구와 연애 감정을 키우는 청춘의 날들까지 지켜본다.

<사일런트 프렌드>는 인과적 의미를 도출하려는 강박으로부터 태연히 물러나 세 이야기를 병렬한다. 분명한 것은 분리된 시공간을 꿈결처럼 펼치는 에네디 감독의 영화가 대단히 촉각적인 매혹을 내보인다는 점이다. 로이 안데르손 감독과의 협업으로 잘 알려진 게르겔리 팔로스의 촬영 역시 16mm와 35mm, 그리고 디지털 이미지를 횡단하며 영화의 층위를 섬세히 쌓는다. 범상함에 그쳤던 전작 <내 아내 이야기>를 지나 엔예디의 주요작들이 지닌 비밀스럽고 내면적인 지대로 돌아온 <사일런트 프렌드>는 식물학과 시네마의 독특한 상호작용 속에서 종국에는 환희를 자아낸다. 교훈적 생태주의가 아니라 흙과 뿌리, 잎과 줄기의 생명력으로 인간 중심적 내러티브를 해체한 일디코 에네디의 완숙한 손길에 스며드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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