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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6호 [경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용감하다, <허락되지 않은> 하산 나제르 감독 인터뷰
남선우 사진 최성열 2025-09-22

“영화인이라면 언제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란 정부의 검열과 제작 금지 처분에도 창작을 지속한 여정을 한 마디로 압축했다. 역시 이란 출신인 하산 나제르 감독은 거장의 묵직한 격언을 내면화한 신작 <허락되지 않은>으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재된 이 작품은 어린이들이 출연하는 한 편의 영화 촬영 과정을 따라간다. 아이들이 그린 찬란한 꿈 사이로 어른들이 처한 현실이 고개를 들 때, 이 금지된 프로젝트의 맥박은 조용히 그러나 선명히 뛰기 시작한다.

- 이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기리는 문구로 시작한다. 그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내게 단순함의 아름다움, 세심한 관찰법, 그리고 판단 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그의 정신을 받들어 <허락되지 않은>에도 이란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담아 그들의 꿈과 두려움, 그리고 고군분투를 포착하고 싶었다. 영화로써 세상에 용기 냈고, 인간을 향한 깊은 공감을 보여준 키아로스타미에게 이 영화를 바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키아로스타미의 작풍을 연상시키는 요소들도 활용했다. 차 안 대화 신이 많은데, 인물들의 얼굴보다는 차창 밖 풍경을 더 적극적으로 비췄다.

관객이 멀리서나마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상상하게 하고 싶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때로 푸르고, 황금빛이다가, 먼지가 자욱해지기도 한다. 이것은 인물들이 지나온 여정과 운명을 상징한다. 한편, 아이들의 인터뷰 장면은 한쪽에만 조명이 비치는 어두운 방에서 찍었다. 그 빛으로 제약 속 희망을 말하고자 했다. 영화 속 모든 장소, 조명, 음향은 이렇게 의도적으로 설정했다. 관객이 이 영화가 바탕을 둔 환경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험이 따르는 현장이었지만 친밀하고 진정성 있는 영화적 경험을 창출할 수 있었다.

- 영화를 채우는 다양한 출신과 배경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만났나.

캐스팅은 이 영화의 핵심이자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영국에 거주하는 외부인으로서 공식 촬영 허가 없이 이란 전역을 오가는 일은 상당히 위험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성격과 참여 의사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에서 짧은 인터뷰를 몇 차례 진행했다. 이후 소규모 그룹을 선발해 그들을 3일간 모았고, 그 자리에는 항상 영화의 취지를 이해한 보호자들이 동석했다. 비밀리에 촬영할 때는 그 장소가 외부에 노출되면 안 되었기에 상호 간의 철저한 신뢰, 준비, 안전 관리가 필수적이었다. 다행히 마지막까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모을 수 있었다.

-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코 준비된 시나리오 같지 않았다.

맞다. 영화 속 제작진이 묻는 말에 대한 아이들의 답변은 완전히 즉흥적이었다.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끼며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특정한 내용을 말해달라고 절대 지시하지 않았다. 그들이 한 말은 모두 질문을 들은 순간 나오는 진솔한 반응이었다. 그게 이 영화가 추구한 이야기 구조를 비껴갈 여지가 있었음에도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줬다. 필요하다면 질문을 조정해 가며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려 했다.

- 아이들은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노란 꽃밭 신을 포함해 영화 속 영화를 이질적 화면비, 색감, 질감으로 구현한 목적은.

영화 속 영화가 그 자체로 독자적이면서도 본편 서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신중히 차이를 만들고자 했다. 아이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중심에 두되 그들이 상상하는 세계로의 전환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의 내면을 다차원적으로 탐구하는 데는 색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한 소녀는 여러 색상이 어우러진 칵테일과 함께 등장하는데, 이는 그녀가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는 삶을 위해 이란을 떠나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바람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 <허락되지 않은> 속 감독 캐릭터가 완성하고 싶었던 영화에 관한 힌트도 듣고 싶다. 혹시 그것이 언젠가 당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인가.

<허락되지 않은> 속 감독의 삶은 내 삶과 여러모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가 곧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직접 그 인물을 연기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여정이 진정성 있게, 이야기에 충실하게 보일 수 있게 연출하는 일에 더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추측한 대로 그가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의 각본은 언젠가 내가 해내고 싶었던, 그러나 허가받지 못한 프로젝트의 면면과 닮아있다. 나는 이란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길 때마다 두렵다. 이 작품이 과연 국경을 넘을 수 있을지, 안전하게 상영될 수 있을지 긴장한다. <허락되지 않은>에도 표현의 자유를 향해 투쟁하는 동안 느낀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난 용기가 묻어있다.

- <허락되지 않은>에는 흥미로운 레이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여성 조감독 캐릭터가 겪고 있는 남편과의 갈등이다. 판사 앞에서 조정을 거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파편적으로 보여줬는데, 이를 아이들의 오디션 장면과 계속해서 교차시킨 까닭은.

영화 속 한 대사가 말하듯 “우리 삶이 어린 시절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 것이다.” 어른들은 과거의 영향으로 삶에 이런저런 제약을 겪는 반면 아이들은 여전히 꿈꾸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한다. 관객이 교차 편집된 화면을 통해 세대 간의 대조와 연속성을 동시에 목격하기를 바랐다.

- 이 ‘허락되지 않은’ 작업을 거쳐 영화를 공개하는 소감은.

이 영화를 만들면 앞으로 다시는 이란에서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만 이 작업은 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고, 내게 중요한 주제를 탐구할 기회를 줬다. 나처럼 ‘허락되지 않은’ 작업을 하는 창작자들은 창작에 따른 위험보다 발언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란에 거주하면서 허가 없이 영화를 만드는 존경받는 감독들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창의성과 용기를 발휘해 계속해서 영화를 제작할 방법을 찾아내 왔다. 그들을 깊이 존경한다. 나는 이란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조금은 다르다. 내 경우 이란에 입국할 때마다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다. 그 현실이 내 영화에 드러난다. 그런데도 목소리를 잃은 이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줘 진실을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움직인다. <허락되지 않은>은 이란과 이란 아이들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유, 정체성, 용기,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길 바라는 욕망이라는 주제는 보편적이다. 한국 관객들도 이 영화의 조용하고 관찰자적인 스타일에 공감하며 사회적·개인적 제약을 헤쳐 나가는 젊은이들의 삶을 되돌아보기를 희망한다.

Director’s Box

1979년 이란에서 태어난 하산 나제르 감독은 열아홉부터 영국에 살고 있다. 그는 애버딘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며 작업을 신작했고, 실제 현실을 바탕으로 한 사회비판적 드라마를 그리는 데 능숙하다. 그가 떠나온 이란도 자주 그 배경이 된다. 그의 인물들은 구조적 모순 앞에 무너지다가도 개인성을 회복하려는 욕망을 안고 있다.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건 <위너스>(2022). 이란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는 어린이들이 주인 모를 트로피를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주목받았으며, 영국이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영화상 부문 공식 출품작으로 선정한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