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우스칭 / 대만, 프랑스, 미국, 영국 / 2025년 / 108분 / 경쟁
9.22 BH 12:30 / 9.23 B3 12:20 / 9.25 CX 12:30
린 시절은 흔히 단순함과 순수, 장난기와 모험심, 경이와 발견의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과 보살핌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대만계 미국인 감독 쩌우스칭의 <왼손잡이 소녀>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담아낸다. 어른들의 얽힌 관계, 무거운 책임, 그리고 경제적 곤란 속에서 자라나는 성장의 단면을 비춘다. 싱글맘 수펀(차이젠얼)과 두 딸, 20대의 이안(마스위안)과 다섯 살 이칭(예니나)은 시골에서 타이베이로 상경해 야시장에 작은 음식 가판대를 차린다. 새로운 삶의 기반을 마련하려 애쓰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은 번번이 그들을 가로막는다. 생계를 꾸려가야 할 뿐 아니라 친족들의 시선과 평가까지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왼손잡이인 어린 이칭은 할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악마의 손’을 쓰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그 말은 이칭의 마음속에 혼란으로 번져, 결국 왼손이 자신을 나쁜 길로 이끈다고 굳게 믿게 만든다.이번 작품에는 감독의 오랜 동료 션베이커가 공동 각본, 편집, 제작으로 참여했다. 그런 만큼 영화에는 특유의 리얼리즘적 감각이 스며들어 있다. 타이베이 사회·경제적 변두리의 삶을 넓고도 세밀하게 담아내면서도, 다섯 살 소녀의 감각과 경험에 시선을 맞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속 아이처럼, 카메라는 이칭을 핸드헬드로 앞뒤에서 따라가며 그녀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기록한다. 야시장의 화려한 골목을 누비는 모습은 마치 원더랜드의 앨리스를 보는 듯하다.
영화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생생하게 호흡한다. 붐비는 시장의 허름한 음식 가판대, 이안이 일하는 삭막한 빈랑 가게, 물건으로 가득한 조부모의 집, 그리고 좁고 어두운 방. 영화 미술은 이 공간들을 세밀히 구축하고, 카메라와 사운드는 네온 불빛과 어지러운 소음까지 놓치지 않는다. 편집은 여기에 리듬을 더해 이야기에 추진력을 싣는다.
<왼손잡이 소녀>의 중심에는 늘 여성들이 있다. 제각기 고단한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며, 무너지는 가족을 붙들고 버텨낸다. 남성들은 주변부에 머문다. 악하거나 무책임하거나, 혹은 선하지만 무기력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단단히 떠받치는 건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는 어린 배우 예니나다. 호기심 어린 얼굴, 사랑스럽고 천진한 몸짓은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작은 웃음을 피워 올린다. 그녀의 천진함은 끝없는 피로와 슬픔을 짊어진 엄마,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언니의 불안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나아가 수많은 여성 배우들—권모술수에 능한 할머니 역의 차오신옌까지—모두가 설득력 있게 억눌린 긴장과 비밀, 거짓말을 드러낸다. 이로써 영화는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고, 평범함의 외피 아래 추한 진실이 도사리는 사회와 가족, 문화를 비춘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는 이전의 진심 어린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처럼 다가온다. 극적 클라이맥스로 끼워 넣은 듯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며, 영화가 지닌 잔잔한 울림에 어울리지 않는 멜로드라마를 덧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