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재능이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단편으로 영화제에 초청되는 성과를 냈던 손경수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진학한 뒤 기나긴 좌절을 겪었다. 그에게 지난 시간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7년간 찍은 단편이 타인의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더라.” “마지막이어도 좋겠다”는 심정으로 만든 첫 장편 연출작 <아코디언 도어>에는 창작의 문제를 고민하던 자화상이 비쳤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현주(이재인), 순수한 과학소년 종윤(김건) 그리고 기억상실을 댓가로 미지의 생물에게 글쓰기 재능을 얻은 지수(문우진). 세 아이의 일면은 전부 손경수 감독의 것이었다. “재능만을 믿던 지수의 나태함과 재능의 소중함을 알던 현주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해내던 종윤은 영화를 향한 나의 시간과 닮았다.” 하지만 풋풋함처럼 보이던 청춘의 한 꺼풀을 벗겨내면 “물속에 푹 잠긴 듯한” 몽환적인 혼란이 자리한다. 수포음과 여울치는 물의 속성이 도처에 깔린 가운데 하늘로 솟구치는 발칙한 이미지와 함께 영화는 급격한 전환을 맞이한다. 이는 “일상의 낯선 순간과 이질감을 이미지로 이어 붙이던 영화적 실험”에 몰두한 단편 시절의 흔적이 영화에 스며든 덕이다. 그렇게 완성된 기묘하고 신비한 “슬픔의 성장물”은 평범함을 예찬하지 않음으로 빛을 발한다. “우리가 도약하는 것이 날갯짓인 줄 알았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혀 보니 결국 점프였을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가 떨어진 것은 어쩌면 추락이 아니라 착지가 아닐까.” 사회의 벽을 마주한 나와 당신과 같은 보편의 재능에게 아리지만 단단하게 다가올 이야기다.
BIFF #5호 [인터뷰] 도약, 착지, 그리고 성장, <아코디언 도어> 손경수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