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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5호 [인터뷰]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르누아르> 하야카와 치에 감독
조현나 사진 박종덕(객원기자) 2025-09-21

<플랜75>에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죽음을 권장하는 국가 정책을 두고 고민하는 한 70대 여성에 주목했다면, 제7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르누아르>에선 아버지를 바라보는 후키(스즈키 유이)의 시점으로 아이와 가족의 삶을 두루 살핀다. 타인의 죽음을 궁금해 하고, 마침내 받아들이는 아이의 시선엔 서늘함과 애틋함이 동시에 어린다.

- 10대 때부터 <르누아르>의 소재를 영화화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11살 무렵부터 영화 연출의 꿈을 꿨다. 어릴 때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보고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라는 생각을 한 것이 계기였다. 언젠가 나도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서,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 한 아이가 ‘이 영화가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길 바랐다.

- 영화는 후키가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며 쓴 에세이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 나의 죽음에 관해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내 장례식에 많은 사람이 와서 우는 걸 상상하면 쾌감이 느껴진 달까, 비극의 여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초등학생 땐 선생님과 부모님이 ‘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하셨는데 그런 경험이 영화에 반영됐다.

- “우리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슬퍼하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를 잃는 자신을 위해 슬퍼하는 건지”라는 후키의 대사가 와닿았다. 개인적으론 후자에 무게를 실은 말이란 인상을 받았는데.

그 대사가 이 영화의 핵심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오랜 기간 암 투병을 하셨다. 아버지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나는 아프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큰 슬픔을 느끼지도 않았다. 가족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상당히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내 안엔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에 관한 테마가 자리 잡게 되었다. <르누아르>에서도 한 사람이 인간의 고통을 어디까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다루고 싶었다.

- 후키는 순수한 아이지만 한편으론 그 순수함으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순간이 있다.

아이들은 결코 쉬운 존재가 아니다. 그 내면은 복잡하고 때로 잔인하다. 그걸 후키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 후키 또래의 딸이 있는 지인이 영화를 보고 들려준 감상이 있다. 아이들이 많은 생각과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느꼈고 아이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데 나로선 상당히 기분 좋은 말이었다.

- 후키의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게 표현됐다.

어린 시절은 상상과 현실의 세계가 뒤섞여 있는 시기다. 그래서 그걸 모호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때문에 사실 후키는 죽은 것이 아닌지, <르누아르>가 사실은 후키의 꿈이 아닌지에 관한 질문을 듣기도 했다.

- <플랜 75> <르누아르> 모두 죽음을 겪고 바라보는 인물의 태도가 차분하다. 이때 감정을 발산하는 연출도 충분히 가능하고, 어쩌면 더 손쉬운 일일 수 있는데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이유는.

<플랜 75>를 연출하고 왜 인간의 죽음에 관심을 갖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당시엔 인지하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어릴 때부터 항상 가까이서 죽음을 느끼던 아버지와 살면서 그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미디어에서 죽음을 극적으로 묘사할 때가 많지만 내가 경험한 죽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작고하신 날도 날씨가 좋았다. 아버지는 더 이상 세상에 없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죽음은 우리의 일상에 가깝게 자리한다. 행인을 보며 ‘저 사람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어쩌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어린 시절 생각한 것들이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그런 기억들이 영화에서의 죽음의 표현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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