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봉 명칭에 따라 1993년 리안 감독의 영화는 <결혼피로연>으로, 앤드루 안 감독의 작품은 <결혼 피로연>으로 표기합니다.
<결혼피로연>과 <결혼 피로연> 사이엔 32년의 시차가 있다. 그렇다면 앤드루 안의 <결혼 피로연>은 다시 만들어질 필요가 있었을까? 질문에 답하자면 ‘앱솔루틀리 예스’다. <결혼 피로연>은 강산이 세번 바뀔 32년의 시간이 이룩한 퀴어 커뮤니티 외, 내부의 인식 변화를 각색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소수자의 포용적 사회통합에 필요한 요건을 이야기에 교차하며 2025년만이 할 수 있는 유의미한 퀴어 담론을 건넨다. 영화를 통해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신예 한기찬이 해사하게 빛나고, 무엇보다 이름 세 글자로 모든 게임을 끝낼 배우 윤여정이 있다. 개봉을 앞두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팀 <결혼 피로연>과 나눈 영화 수다를 전한다.
- 원작의 각본을 쓴 제임스 샤머스가 이번 영화의 각본에도 참여했더라. 어떻게 성사된 리메이크인가.
앤드루 안 프로듀서인 아니타 구가 발단이었다. 아니타의 제작사인 킨드레드 스피릿이 리안 감독님의 초기작 판권을 가지고 있다. 아니타가 제임스에게, 제임스가 리안에게 <결혼피로연>의 리메이크에 관한 생각을 물었고 제임스와 리안은 이 작품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구체적 비전이 있다면 리메이크를 해도 좋다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후 제임스가 내게 <결혼피로연>의 리메이크 연출을 제안했다. <결혼피로연>은 내가 처음으로 본 게이 영화이자, 미디어에서 아시안 게이를 처음 본 작품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두 원작자로부터 큰 지지를 얻었다. 리안은 온전히 나만의 <결혼 피로연>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 과정에 간섭하지 않았고, 잊지 못할 메시지도 선물했다. 그들 덕분에 내 삶과 최대한 맞닿는 개인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 윤여정 선생님은 민(한기찬)의 어머니로 캐스팅 제안을 받았지만 배역의 설정을 할머니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직접 제안하셨다고.
윤여정 처음엔 민 역할에 다른 배우가 물망에 올랐다. 이전에도 내가 어머니를 연기한 적 있는 배우라 괜찮았는데 이후 기찬이가 최종 캐스팅됐다. 내가 양심이 있지. 촬영 당시 기찬이가 27살이었다. 내가 엄마라면 대강 셈해봐도 쉰몇에 이 아이를 낳았다는 얘긴데… 50대에 임신과 출산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더라. (일동 폭소) 그래서 할머니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할머니와 손자 관계라면 드라마적으로도 보다 많은 레이어가 생길 것 같았고.
- 한기찬 배우는 이번 작품이 첫 영어 연기 도전작이자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한기찬 감독님과 줌을 통해 최종 오디션을 보았다. 감독님이 대뜸 본인 이메일을 알려주시더라. 그리고 줌이 종료됐다. 결과를 모르니 무척 답답했다. 고민하다 감독님께 “저도 합류하나요?”라고 메일을 썼고 “물론이죠. 함께 영화를 만들어봐요.”라는 회신을 받았다. 감독님께서 내 이전 출연작을 보셨다고 하더라. 운이 좋았다. 내가 작품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캐스트인데, 한달 만에 촬영에 들어갔다. 앞의 선생님 말씀으로 돌아가자면 한달만에 어머니를 할머니로 바꾸신 거다.
- 자영(윤여정)이 민에게 건네는 마지막 대사가 울림이 크다. 윤여정 선생님이 감독님과 논의하며 직접 대사를 쓰셨다고.
윤여정 일생을 같이 보내고 싶은 동반자를 만난 게 중요하지. 사랑 앞에 성적 지향이 무슨 상관인가. 더군다나 사랑하는 손자의 정체성을 재단하는 건 가족이 할 일은 아니라고 봤다. 내 가슴에서 나온 대사고 이에 관해 앤드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앤드루 안 사실 초고의 대사는 거친 편이었다. 민과 자영 모두에게 중요한 순간이라 선생님과 함께 대사를 다시 써갔다. 자영은 언제나 민을 사랑했기 때문에 손자를 미국으로 보내 보호하려 했다. 그리고 자영의 사랑은 한결같이 이어져 민이 장성한 다음엔 손자의 존재를 오롯한 성인이자 예술가로서 바라본다. 개인적으로는 할머니 두 분 모두 내가 커밍아웃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이 대사가 선생님의 목소리를 통해 전세계에 울려 퍼지는 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결혼 피로연>에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 원작이 나온 1993년과 달리 2025년은 적어도 미국 내에서 동성애자의 사랑할 권리가 보장이 되고, 미국 50개 주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지 10주년을 맞이한 해다. 2025년의 관객에게 새로 탄생한 <결혼 피로연>이 어떻게 가닿았으면 하나.
앤드루 안 동성 부부가 결혼은 할 수 있으니 결혼 선택 여부에 관한 당사자들의 부담을 퀴어 커플도 말할 수 있게 됐다. 퀴어 당사자의 ‘나는 정말 하고 싶은가?’ 혹은 ‘나는 결혼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자문은 2025년이므로 건넬 수 있다. 아이를 갖는 문제도 마찬가지 다. 안젤라(켈리 마리 트란)는 아이에 대해 “생기면 생기는 거지”라고 말하지만, 게이 커플은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우연히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계획과 의도하에 움직여야 하다 보니 작은 망설임도 장애물이 된다. 그래서 <결혼 피로연>은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안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내리고 성장하는가에 집중하는 영화다.
한기찬 <결혼 피로연>을 찍기 전까진 원작의 존재를 몰랐다. 영화 출연을 계기로 원작을 알게 된 셈인데 민으로서 이 작품을 볼 때 공감이 가는 구석이 많았다. 아직 대한민국은 퀴어 담론에 대해 조심스럽지 않나. 그 조심스러움을 갖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지금 시점에 새로이 다루는 게 좋더라. 유머와 감동을 곁들여 가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가족과 함께 추석에 극장을 찾아달라.
윤여정 이 작품이 추석영화였나. (웃음) 어떻게 봐달라고는 답을 못 하겠다. 영화의 의미는 수용자 몫으로 남겨둬야지. 그래도 대본을 처음 받아봤을 땐 가족을 갖는 방법을 앤드루가 예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자영이 민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뤄서 좋다고 말하지 않나.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