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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4호 [경쟁] 부드러운 해방의 순간, <고양이를 놓아줘> 시가야 다이스케 감독 인터뷰
이우빈 2025-09-20

놀라운 데뷔작이다. 시가야 다이스케 감독의 <고양이를 놓아줘>는 외면적으로 적은 부피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무척이나 높은 밀도를 지니고 있다. 이야기는 예술가 부부인 모리와 마이코가 이어가는 일상, 그리고 모리가 옛 연인 아사코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로 구성돼 있다. 이 속에서 모리와 마이코의 예술 작업은 그들의 감정과 공명하며 여러 심상을 촉발한다. 모리와 아사코의 기억이 교묘하게 흩어지고 합쳐지는 과정에선 대담한 영화적 구조가 드러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고양이를 놓아줘>는 과하지 않게 우리의 온갖 감각을 자극한다. 삶을 통과하며 으레 겪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이 내러티브의 모티프로 작용하면서 공감각적인 감상을 유도한다. 그의 답변 역시 무척이나 섬세하게, 영화가 주었던 상쾌한 감각들을 상기하게 했다.

-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단편 <창문>에 이어 <고양이를 놓아줘>에서도 관계의 정체를 겪고 있는 커플이 극의 주인공이다.

의도적인 반복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만든 뒤에 되돌아보면 항상 그런 관계의 인물들을 그리게 되더라. 아마 모든 사람이 겪을 법한 보편적 경험을 다루고 싶은 것 때문인 듯하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기쁨은 관객이 본인의 경험이나 기억을 영화에 투영하여 감상하는 순간에 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을 늘 지니고 있다. 한편 타인과의 관계가 정체될 때 우리는 외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직시하게 된다. 그런 시기에 일어나는 조용하고 내적인 감정의 변화를 조심스레 포착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 주인공 모리와 아사코는 뮤지션, 사진작가다. 부부인 동시에 예술가 동료이기도 하다. 음악과 사진이라는 두 개의 예술 매체를 인물의 직업에 빗대어 병치한 배경은.

음악과 사진, 두 개의 예술이 가진 시간성의 차이에 매료됐다. 음악은 시간 속에서 흘러가며 진행되지만, 사진은 특정한 순간을 고정해 시간 밖에 남겨둔다. 즉 모리와 마이코는 다른 방식의 예술을 수행하는 한편 결국 ‘시간’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두 개의 시간 축을 기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관객들은 작중 인물들이 놓쳐버렸던 시간의 공백까지도 더 선명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고양이를 놓아줘>는 보편적이고 소박한 이야기를 택하되 영화의 모든 장면이 놀라울 만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연출에 있어 어떤 방향성을 택하려 했나.

집중했던 중심 과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평범하게 이뤄지는 ‘회상’의 행위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바는 이 표현이 실제의 삶과 분리되지 않게, 너무 이질적인 순간으로 드러나진 않아야 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중요했던 임무는 눈앞의 작은 현상들에 시선을 건네는 태도였다. 예를 들어 도쿄의 시부야처럼 무척 번잡한 장소에 서 있으면 주변의 많은 사람이 나처럼 자기만의 의식과 시점을 지니고 있단 사실을 번뜩 깨닫게 된다. 한 명 한 명, 각자가 고유한 시간의 흐름과 경험을 지니고 살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나란히 존재하는 많은 삶, 많은 시간의 흐름을 영화에 기입하고 관객이 인식하길 원했다.

- 모리가 옛 연인 아사코를 만날 때 ‘회상’의 영화적인 표현이 급진적으로 일어난다. 서로 이야기하며 과거의 일을 떠올리지만, 추억의 상세는 각 인물의 시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모리와 아사코의 관계를 ‘기억의 미로’라고 부르고 싶은 공간에서 탐구하고 싶었다. 인간의 기억이 발생하기 전과 후의 어떤 경계선을 묘사하려는 목적이었다. 두 사람의 주관적 회상을 맞부딪치게 함으로써 관객에게 “결국 기억의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물론 진실이란 것이 존재하는지는 늘 불확실하다. 그렇기에 이 물음은 내가 나에게 던지는 고심을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모리와 아사코의 기억을 불러오는 계기가 신체적 접촉과 특정한 향기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러한 비시각적 감각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유는.

촉각과 후각은 우리의 기억을 강하게 불러오는 촉매제다. 여기엔 내 개인적인 경험이 깔려 있기도 하다. 10년 전쯤 맷 데이먼 주연의 <마션>이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적이 있다. 화성에 불시착한 탐사대원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이어가는 이야기다. 그 끝에서 결국 주인공이 지구로 탈출하려는 클라이맥스의 순간에, 옆의 관객에게 왠지 익숙하고 달콤한 향기가 풍겨왔다. 옛 연인이 쓰던 향수의 냄새였다. 그때부터 내 의식은 영화가 아니라 옛 연인과의 기억으로 끌려가 버렸다. 눈은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영화 속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스크린의 시각적 자극조차 후각이 매개한 기억의 발로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 기억이 <고양이를 놓아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후각과 기억의 밀접한 연관성을 절실히 일깨워준 경험임은 틀림없다.

- 영화가 선사하는 또 하나의 감각이 있다. 인물들의 감정이나 행동이 전환점을 맞이할 때 스크린은 지진이 난 듯이 흔들린다. 이 진동은 어떤 의미인가.

영화 속의 진동으로 지진의 이미지를 환기하려 의도하진 않았다. 그런데 질문을 듣고 나니 무척 흥미로운 측면이라 재고하게 된다. 아마 의도보다 더 깊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지금의 일본인에겐 진동의 감각에 대한 잠재적 두려움이 내재해 있는 것 같다. 지적한 해석이 바로 영화를 해외 관객에게 선보이는 의미와 직결된다고 느낀다. 어떠한 문화권 내부에서 태어난 작품을 외부의 시점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영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늘 열어주기 때문이다.

- 카메라가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이를테면 전작 <창문>의 주요 모티프였던 ‘창문’이 이번에도 자주 등장한다. 모리의 작업실 창문을 통해 인물들의 모습을 흐릿하게 찍는 등 창문을 통해 공간의 전반적인 정서를 강조하는 듯하다.

영화 속의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아주 강력한 이야기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창문>에서는 창문이란 물리적 구조물이 인물들의 감정을 가로막거나 연결하곤 했다. <고양이를 놓아줘>에서 모리의 작업실은 그가 음악을 만들거나 타인과의 기억을 상기하는 개인적 장소다. 즉 이곳은 모리에게 가장 친밀하면서도 고립된 공간이다. 이 속의 모든 요소도 모리의 내면과 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카메라를 통해 공간의 숨결, 예컨대 이곳이 실제로 생동하는 환경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작업실의 책상, 흩어진 악보, 벽의 질감,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까지가 모두 모리의 정신적 풍경이 가시화된 것들이다.

- <고양이를 놓아줘>라는 제목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제목이 이렇지만, 막상 영화에 고양이는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고양이를 내버려둬’라는 맥락의 문장이 떠올라서 노트에 적어 둔 적이 있다. 당시엔 이게 어떤 의미인지 나조차 잘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다루려는 모종의 감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느꼈다. 내 머릿속에 고양이(특히 검은 고양이)는 변덕스럽고 독립적이면서, 때로는 다가오고 때로는 훌쩍 떠나는 존재의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잠깐 스치는 기억의 모호함 같기도 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린 욕망의 틈인 것 같기도 하다. 고양이가 영화 속에 나타나진 않지만, 이는 관계의 핵심이 서로를 통제하거나 억지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란 영화의 핵심을 은유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자꾸만 상대를 바꾸려 하거나 억지로 붙잡으려 한다. 다만 때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 큰 사랑의 방식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마이코가 모리의 곡에 지어준 마지막 가사 역시 유사한 뉘앙스라고 느낀다. 겉보기엔 작별 인사 같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외려 인생의 흐름에 유유히 몸을 맡기고 삶을 평온하게 수용하자는 의미인 셈이다. 물론 이런 태도가 부부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 사회는 너무 다양한 정보와 정체로 가득 차 있다. 지나치게 많고 깊은 생각을 요구한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볼 때만큼은 잠깐이라도 부드러운 해방의 순간을 느끼길 바란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시가야 다이스케

1994년생의 일본 영화감독. 그는 10대 시절부터 작은 비디오카메라로 주변의 사건을 기록하며 영상에 대한 감각을 키웠고, 니혼대학교 예술학부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배웠다. 그는 “친구들끼리 결성한 밴드‘처럼 이어가는 작업 방식을 이상적인 영화 연출론이라 생각한다. 자그마한 집단을 유지하며 함께 창작하고 호흡하며, 자기들만의 자연스러운 리듬과 스타일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도 독특하다. 그는 일상의 파편, 일기, 심지어 그날의 장보기 목록 등을 매일 조금씩 기록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상의 패턴이나 핵심적인 문장을 발견하면 그것으로부터 시나리오를 쓴다. 이렇게 태어난 단편 <봄 같은 여인>(2017)이 일본 피아영화제 경쟁부문에 소개되고, <창문>(2021)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되며 경력을 쌓았다. 첫 장편인 <고양이를 놓아줘>는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월드 프리미어로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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