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야 다이스케/일본/2025/102분/경쟁
9.20 BH 15:00 / 9.21 B2 14:00 / 9.23 L7 12:00
이야기는 단출하다. 음악을 만드는 남편 모리, 사진을 찍는 아내 마이코가 바지런히 생활하고 창작하는 모습이 시나브로 화면을 뒤덮는다. 마이코는 꽤 성대한 개인전을 열 만큼 사진작가로서의 훌륭한 경력을 쌓고 있다. 반면에 모리는 마땅한 결과물을 내지 못하며 정체해 있다. 음향 효과 제작 같은 부업으로 근근이 벌이를 유지하는 중이다. 특별히 나쁘지 않아 보이던 둘의 감정선은 서서히 균열의 장으로 들어선다. 부부인 동시에 예술가 동료인 두 사람은 서로의 창작 과정에 조금씩 개입하고 미묘한 불편함을 유발한다. 서로 다른 생활 습관 탓에 둘만의 애틋한 시간은 점차 줄어들기만 한다. 언뜻 보면 밋밋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양이를 놓아줘>는 한순간도 화면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기묘한 연출을 선보인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밤늦은 시간 모리가 기타를 연주하며 작곡 중일 때 마이코가 방에서 나온다. 맥주 한 캔을 집어 든 뒤 주방에 서서 남편에게 말을 건다. 이때 마이코의 모습은 모리의 뒤에 있는 창문에 비치어 그림자처럼 보인다. 몇 차례의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은 뒤, 남편은 눈부시다며 주방의 불을 꺼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내의 형체는 마치 유령처럼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감정의 어두움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시각화하는 작법에 더해, 그들의 정신적 관계가 뚝 끊어져 버릴 땐 인물의 물리적인 상을 과감하게 지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요컨대 <고양이를 놓아줘>는 무척이나 정교하고 세밀한 시각적 구성을 통해 이야기를 뛰어넘는 장면 자체의 강세를 획득한다.
소소해 보이던 이야기마저 흥미로운 변화의 국면을 맞이한다. 모리가 전 연인 아사코를 우연히 만나면서다. 청춘을 함께했던 둘은 서로의 과거를 회상하며 산책한다. 자칫하면 상투적 멜로드라마의 서사로 이어질 수 있는 이 삼각관계의 역학 역시 <고양이를 놓아줘>는 평범하게 다루지 않는다. 둘의 과거를 촉발하는 물리적 접촉의 순간이 그간 펼쳤던 영화의 리듬을 보란듯이 배신하면서 색다른 긴장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과거의 이야기도 즐거운 구조로 전개된다. 뼈대가 비슷해 보이는 모리와 아사코의 추억이 모종의 후각적 심상에 따라 이질적인 기억, 꽤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또한 인물들의 특정한 감정적 충동이 드러날 때 영화는 거센 흔들림을 화면에 불어 넣어 동시대 일본 영화가 공유하는 지진의 모티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환기한다. 이처럼 유기적이고 다양한 영화적 감각의 전이, 충돌, 완급 조절을 통해 <고양이를 놓아줘>는 관객을 홀릴 듯한 흡입력을 선보인다. 근래 일본 영화들의 작지만 예리한 연출적 묘를 마주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만족스러운 발견이 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