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언으로 상징되는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 이후 주류 영상 콘텐츠에서 부유층 이미지로 과대 대표되는 경향도 보이지만, 이 나라의 진짜 모습은 다양성과 저항의 에너지에 있다. 싱가포르의 권위주의적인 여학교를 다니는 열여섯 살 추(래니스 테이)와 친구들이 한여름에 벌이는 저항을 그린 영화 <아메바>를 만든 탄쓰유 감독, 래니스 테이 배우를 통해 변화와 자유를 갈망하는 싱가포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장편 데뷔작 <아메바>와 함께 걸어온 여정을 소개한다면.
탄쓰유 <아메바>는 2019년 부산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에서 처음으로 피칭했던 작품이다. 미국에 사는 싱가포르인으로서 늘 아시아 영화 제작자들과 연결될 방법을 찾아왔기에 AFA에 지원했다. 소녀 넷, 유령 하나, 갱, 그리고 아메바라는 제목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유령은 숙주를 찾고, 우리는 갱을 이룬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 싱가포르의 어떤 조각들이 영화에 녹아있나.
탄쓰유 해외에서 사람들이 “싱가포르에서 왔구나”라고 하면, 나는 싱가포르가 얼마나 파편화되어 있고 혼란스러운지 설명하려고 한다. 영국 식민지 문화, 토착 문화, 이민자, 중국 정착민 등 많은 문화가 섞여 있다. 그중 <아메바>의 중심이 되는 곳은 싱가포르의 ‘중국식 학교’다.
래니스 테이 12살 때 시험을 봐서 성적 상위 5% 정도의 학생들이 중국식 학교로 나뉘어 들어가고, 이 중 상당수는 중국계 민족만 다닐 수 있다. 그곳은 우리가 졸업해서 싱가포르의 미래 정부, 미래 지도자가 될 것이라 말한다. 내가 자랄 때는 다도, 서예, 중국 역사를 공부하고 공자의 말씀을 암기해야 했다. 영화에서도 이런 엄격하고 권위적이며 유교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 그러한 사상과 분위기로 조직된 공간이 주인공을 더욱 반항적으로, 심지어 주변 친구들까지 감화시켜 하나의 갱을 이루게 한다.
탄쓰유 학교에서 ‘중국다움’은 교화와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위계질서, 어른에 대한 복종, 순종의 문화를 강요하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래니스 테이 우아함, 겸손함, 덜어냄의 미학처럼 내가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던 중국다움에는 다른 측면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학교에서 강요되는 그것에 주인공처럼 항상 분개할 수 밖에 없었다.
- 귀밑 3cm 머리, 치마 길이, 브래지어 색깔까지 강요하는 모습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전에 학교를 다녔던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풍경일 듯하다. 이러한 풍경이 토론토국제영화제(TIFF)의 관객들과 마주했을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탄쓰유 TIFF에서는 많은 아시아 디아스포라 관객들이 “드디어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를 보네요”라고 말해주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서구권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가 단지 싱가포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통제 시스템과 제도적 폭력에 대한 것이라는 게 잘 전달된 것 같았다.
- 결국 추의 여정을 통해 질문하게 되는 것은 이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 중 누가 반항하고 누가 그곳에 순응하며 머무는가에 대한 것이다.
탄쓰유 어디를 가든 현 상태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는 종류의 사람일 것이다. 만약 옳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에 대해 무언가를 하려 할 것이고, 그중 일부는 나처럼 그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곳을 벗어나는가?”라는 질문은 특권, 접근성, 그리고 기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래니스 테이 억압의 반대말은 ‘도피’가 아니라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안전해지고 싶다거나, 실패를 피하고 싶다는 변명은 기어코 표현하려는 자들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