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라이프> <하모니움> 등 사회적 이슈를 꾸준히 극에 끌어들이는 후카다 코지 감독이 <연애재판>에선 아이돌 업계로 눈을 돌렸다. 극중 걸그룹 '해피 팡파르'의 센터 마이(사이토 교코)는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그가 계약 조건을 어기고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생활'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과한 헌신을 요구하는 아이돌 세계에서 후카다 코지 감독은 그들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바라보고자 한다.
- 2015년 아이돌에 관한 기사를 읽은 게 신작 작업의 계기가 됐다고.
두 명의 젊은 여자 아이돌이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소속사에서 고소를 당했다는 짧은 기사였다. 아이돌은 연애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이것을 계약서에 명시해 두고 이를 위반했다며 법정에 서게 한 것에 놀랐다. 특히 여자 아이돌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측면에서 이건 젠더 차별 문제이자 인권 문제다. 때문에 특정 업계가 아닌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보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실제로 재판을 했을 때 연인이던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지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연애라는 말랑한 주제와 재판이라는 딱딱한 과정의 마찰이 흥미로워서 이를 영화화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부터 미타니 신타로 각본가와 현역 아이돌, 프로듀서들을 취재했다.
- 취재한 내용 중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나.
가장 놀랐던 건 역시 계약서에 연애 금지 조항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일본과 한국의 아이돌에 관한 다큐멘터리들을 봤다. 한국의 아이돌은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택해 행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일본의 아이돌은 스스로 판단하는 순간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판단할 기회마저 박탈된 일본 아이돌의 상황에 관해 들여다보고 싶었다.
- 스캔들에 휩싸인 아이돌의 상황이나 아이돌과 매니지먼트의 관계를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취재하면서 정신적 학대라 여겨질 정도로 심각한 사례를 많이 접했다. 유럽 영화제에서 수상할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런 자극적인 내용을 넣어 ‘동아시아 아이돌은 이렇다’고 설명적으로 연출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이 영화를 보여줄 것인지 고민했을 때 떠오른 것은 현역 아이돌, 아이돌 지망생, 나아가 업계 관계자들과 팬들이었다. 단순히 스캔들에 관해 추궁하고 추궁받는 아이돌과 매니지먼트의 관계 묘사에 그치는 대신 다양한 관객이 이를 보며 자신의 문제처럼 여겨주길 바랐다.
- 사이토 교코를 비롯해 극중 걸그룹 멤버를 전부 아이돌 출신으로 기용했다.
그들이 실제 자기 일처럼 영화를 찍길 바라서다. 내용도 알려주지 않고 ‘너희들의 혼을 뺏을 거야’라는 식으로 캐스팅한 게 아니라 영화의 내용과 주제에 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눈 상태에서 배우들도 출연을 결심했다.
- 아이돌과 팬의 관계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극중 한 팬이 스캔들이 터진 해피 팡파르 멤버를 상대로 테러를 벌이는데, 아수라장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아이돌을 돕는 것도 결국 팬들이다.
뮤지션도, 예술가도 팬이 있다. 그런데 아이돌과 팬의 느낌은 그들과 다르게 굉장한 상호성을 지닌다. 아이돌과 팬의 유사 연애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가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연애 금지 조항이 있는 “계약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팬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대사도 나온다. 그만큼 아이돌과 팬의 독특한 관계를 조명하고 싶었다.
- 마이와 다르게 연애를 포기하고 계속 아이돌 활동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아이돌에게 곡을 제공하는 인물 등 다양한 선택을 하는 아이돌들이 등장한다.
어깨 너머로 아이돌 세계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를 고발하는 건 교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택하는 아이돌 멤버들을 등장시켜 그들도 이처럼 여러 삶을 택할 수 있다는 걸 드러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