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끝에는 우리조차 알지 못하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 꾸준히 멜로 드라마와 청춘물을 제작하던 연출자 나가타 고토 감독이 니시오 준의 원작 소설을 접한 뒤 도쿄의 그림자를 향해 카메라를 든 이유다. 범죄조직의 말단 조직원 마모루(하야시 유타)와 그의 의형제 다쿠야(기타무라 다쿠미)는 사회의 끄트머리 중에도 가장 아랫자리에 속한 이들이다. 홀몸으로 정글 같은 범죄의 수렁에 내던져진 청춘을 향해 관심을 쏟은 나가타 고토 감독이 바라본 암흑가는 어떤 풍경이었을까.
- 일본 청년층의 조직범죄에 대한 흥미를 수년 전부터 지니고 있었다고.
20대 초반의 지인이 경찰에 연루되는 일을 겪었다. 당시 주변에서는 그를 돕지 않은 채 등을 돌려 엮이지 않고자 했다. 의지할 사람도 없는 그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성격상 간사이 지방 특유의 오지랖이 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다. 동시에 오늘날의 청년들이 이런 식으로 삶을 망쳐가는 현실에 답답함도 밀려왔다. 그 사건을 계기로 젊은이가 범죄로 치닫는 계기와 심리 그리고 재기의 가능성에 관심을 두게 됐다. 다수의 관련 서적을 읽고 실제 인터뷰도 진행하면, 청년 빈곤과 범죄의 관계성 그리고 그 이면에 숨은 소중한 것들을 영화로 담아내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 <한 남자>, <린다 린다 린다> 등으로 주목받은 각본가 무카이 코스케가 이번 작품의 각색을 맡았다. 함께 협업하면서 어떻게 각색의 방향성을 잡았나.
소년들의 군상극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남성 각본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남성 간의 대화를 사실적으로 보강할 부분이 필요했다. 무카이 작가님은 첫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원작의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복잡하게 얽혔기에 영화에 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내가 “세 명의 남자를 중심에 두고, 때로는 한 사람의 인간처럼 보이게 그리고 싶다”라고 말씀드리자, 흥미를 느끼시고 작업이 시작됐다. 시나리오 과정에서 작가님은 회상 장면을 넣고 싶지 않다고 하셨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따라서 과거를 어떻게 보여줄지 함께 고민했다.
- 도주극은 쫓기는 자의 다급함과 쫓는 자의 위협이 맞물려 직선적인 구조를 지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는 세 인물의 시점으로 나눠 장을 구성한 점이 흥미롭다.
원작 소설도 인물의 이름을 따라 장이 나뉘어 있다. 다만 주인공 다쿠야는 원작에서 따로 장이 없다. 원작은 그의 행적을 대부분 이면에서 묘사하고 있지만, 나는 별도의 장으로 구성해 세 인물 각각의 감정선을 뚜렷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인물별로 장을 구성하면서 서로의 행적 사이에 공백이 생기는데, 오히려 그 빈틈을 활용해 몰입감을 높였다. 아울러 이야기의 축으로서 ‘사라진 다쿠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미스터리를 전반부에 남겨두고 후반부에서 풀어내는 구성을 택했다.
- 막 신참내기를 벗어난 마모루, 조직에 익숙해져 가는 다쿠야, 베테랑에 가까운 카지타니까지. 세 청춘은 나이만큼이나 범죄에 발을 걸친 기간도 각기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설정한 이유가 있나.
세 사람이 마치 한 인물의 과거-현재-미래처럼 보이는 구조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도주를 결심하는 장면 속에 비록 범죄에 발을 들였을지라도 그대로 계속 가담하는 삶이 아니라 언젠가 깨달음이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 신주쿠 가부키초를 기반으로 한 도쿄의 범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 때문에 도쿄도 마치 하나의 인물처럼 작동하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도 신주쿠 가부키초는 반사회적 세력만이 모여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장소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집에서 안식처를 찾지 못한 미성년들이 친구를 찾아 모여드는 곳 도요코라 불리는 구역이 됐다. ‘도요코 키즈’로 불리는 아이들은 가부키초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으려 한다. 이 영화에서도 가부키초는 두 인물에게는 마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다. 언제나 밝은 조명 아래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 가면 마음을 채워줄 무엇인가가 있는 곳. 그런 오아시스로 표현하고 싶었다. 다만 진정한 의미의 오아시스인지는 영화를 통해 직접 느껴 주셨으면 한다.
- 다쿠야와 마모루는 수십 개의 휴대폰을 활용해 로맨스 스캠을 펼친다. 이들의 범죄는 신분 매매에도 활용된다. 나를 타인으로 둔갑하고, 타인의 이름을 다른 이에게 사고파는 정체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불교 사상에 ‘이름은 그 몸을 나타낸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자기 이름에 걸맞은 존재가 되려는 마음을 지닌다. 즉 이름은 곧 정체성의 근거이자 무의식의 핵심이다. 그것을 잃게 되면 처음에는 직장이나 집세 같은 실질적인 어려움에만 사로잡히지만, 결국에는 내면의 중심이 뽑혀 나간 듯한 상실감을 자각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에가와 하루토는 다쿠야에게 속은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종에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그는 다쿠야를 원망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에가와였던 시절’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깊숙한 부분을 공유하는 상대로 여긴 것이다.
- 정체성의 문제는 곧 자신과 타인이 관계를 맺는 일로 이어진다. 영화 속 다쿠야와 마모루, 다쿠야와 카지타니(아야노 고)의 관계가 마치 대안 가족의 형식으로 제시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존재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아이는 종종 뒤돌아보며 부모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부모가 있으면 안심하고 달려갈 수 있지 않나.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안심할 수 있는 존재를 그리고 싶었다. 다쿠야나 마모루처럼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 역시 누군가 신뢰할 수 있는 존재, 자신을 받아들일 존재를 원한다.
- 캐릭터들의 성격이 극의 밀도를 이끄는 영화다. 각 배우에게 특별히 주문하고자 한 부분이 있었나.
우선 배우들에게 자기 역할의 이력서를 준비했다. 생년월일과 별자리까지 세세히 써 두었기에 인물 형성의 큰 틀은 잡을 수 있게 했다. 하야시 유타 배우는 두 배우에 비해 경험이 적었기에 촬영 전에 장면마다 연출 의도와 인물의 동기 등을 꼼꼼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타무라 다쿠미 배우의 다쿠야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인물이다. 마모루가 강하게 맞서 나가면 자연스레 형 같은 위치에 서게 되는 구조기에 마모루 쪽에 더 집중해서 만들어간 감이 있다. 기타무라 배우도 자신의 역할을 잘 이해해서 하야시 배우에게 식사 자리를 제안하는 등 관계를 쌓아주었다. 아야노 고 배우는 철저하게 연기플랜을 세우는 타입이다. 그 부분을 존중하면서 작품 톤을 유지하는 태도로 임했다.
- 보편적인 범죄물은 욕망에 눈먼 이들의 파국을 그려내지만, 이 영화에는 그 바깥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다.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를 꼽자면.
관객마다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면 가장 좋겠지만, 굳이 꼽자면 쓸쓸함이 아닐까. 욕망과 죄의 이면에 자리한 고독과 상실감의 감정을 관객들이 느끼길 바란다.
나가타 고토
1971년생 오사카 출신의 나가타 고토 감독은 프로덕션 윌코와 이와이 지 감독의 조감독을 거쳐 20년간 TV 드라마와 영화계를 오가며 다수의 멜로와 로맨스를 제작한 베테랑 연출자다. 각자의 결핍과 아픔을 보듬으며 전진해 가는 그만의 드라마적 장기가 도쿄의 그늘진 이면을 묘사하는 범죄 드라마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에서도 빛을 발한다. “지금이야말로 도전할 때다”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소재를 찾아 오랜 기간 일본의 청년 빈곤 범죄를 취재해 온 나가타 고토 감독의 필모그래피 속 변곡점을 마주할 기회기도 하다. 이번 경쟁 부문의 유일한 범죄물로서 그간 장르 안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회한의 정서를 발굴한 감독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