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특별 기획 프로그램 ‘까르뜨 블랑슈’는 동시대 각계 명사들이 사랑하는 영화를 직접 선정해 관객과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다. ‘까르뜨 블랑슈(Carte Blanche)’. 무한한 자유를 허락한다는 의미의 ‘백지수표’가 영화감독 봉준호, 매기 강, 배우 강동원, 언론인 손석희, 그리고 소설가 은희경에게 건네졌다. 이 다섯 명의 안내자가 고른 영화들이 9월 18일부터 23일까지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된다. 상영 후에는 작품과 그들의 인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길어 올린 통찰을 관객과 나눈다.
이 첫 여정의 안내자로 나선 소설가 은희경을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오래 머물며 영화를 마음껏 보고 싶다는 꿈이 있다” 말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빛의 과거』를 쓴 한국문학의 거장에게 마감후 영화를 보는 일은 오랜 의식이다. 소설가의 서재에서 스크린으로 건너온 그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은희경이 선택한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오는 22일 16시 30분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된다.
- 작가 은희경에게 부산은 어떤 도시인가.
=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글을 쓰러 방문한 적도 있고 최근에는 친구들과 주류 박람회를 즐기기 위해 다녀오기도 했다(웃음). 내 소설의 배경으로도 종종 등장하기도 하는 수도권 신도 시(일산)에 오래 살아서인지 획일적이지 않은 부산의 지형에 특히 마음이 간다. 골목 골목을 헤매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다 우연히 발견한 카페에서 머무는 시간, 예기치 못한 풍경과 마주하는 의외의 순간들이 소중하다. 부산에서 걷다 보면 발걸음은 어느새 바다로 향하게 된다.
- ‘까르뜨 블랑슈’의 첫 여정에 동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영화와 부산, 그리고 축제를 모두 사랑하기에 제안을 받자마자 덥석 수락했다. 긴장감이 몰려온 것은 라인업이 발표된 직후였다. 영화인들 사이에 껴있는 내 모습을 보고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웃음). 영화 전문가가 아니기에 이 영화를 분석하거나 설명하기보다는, 영화가 주는 고유의 느낌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임하기로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답게 하자’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 소설가의 삶에 들어선 영화의 모습은 어떠한지 궁금한 독자들이 많을 테다.
= 마감을 끝내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몰두했던 내 세계에서 벗어나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과 표현 양식을 마주하고 싶은 갈증을 느껴서다. 하나의 세계를 닫고 나오는 마감의 순간에 영화를 보면서 다른 세계의 문을 연다. 이번에 소개할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역시 막 마감을 끝낸 어느 날 왓챠에서 운명처럼 만난 작품이다.
- 미야케 쇼 감독의 장편 영화가 한국에 정식 개봉한 건 2020년이 처음이다. 낯선 이름이었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 영화에 끌렸나.
= 몇 줄의 시놉시스를 읽었을 뿐인데 ‘이 이야기는 나를 상처 주지 않겠구나’ 하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영화가 시작되고 화면의 질감과 청각적 풍경에 매료됐다. 청각장애인 복서가 주인공이기에 샌드백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도, 어느 순간 영화 전체가 침묵에 집중하고 있 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감독은 세계를 냉정하고 날카롭게 베어버리고 끝내는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긴 순간이었다.
- 그 독특한 청각적 경험 때문에 꼭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 관객들 역시 ‘침묵에 집중한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는 권투 동작은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계속해서 말을 거는 행위, 허공에 글을 쓰는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핍 때문에 더 깊이 집중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다.
- 그렇게 만나게 된 미야케 쇼의 세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나.
= 작고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는 세계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제안했던 세 편의 영화 중 두 편을 그의 영화로 채워 넣을 만큼 팬이 되었는데 그가 모든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 특히 좋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따스함을 강요하기 보다는 저마다의 유연함과 열린 태도를 지닌 채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갈 뿐이다. <새벽의 모든>에도 결핍을 지닌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나.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구석과 소수자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런 상대를 향해 ‘너는 왜 그것만 먹어?’라고 묻는 대신 ‘그래? 그럼 나도 한 번 먹어볼게.’라고 말하는 태도가 자주 포착된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미야케 쇼의 영화에 조용히 흐르며 마음을 울린다.
-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들을 미화하지 않고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세상을 존속시키는 은희경의 작가 세계와 공명하는 지점으로도 이해된다.
= 그렇다. 나는 인간이 저마다의 개별적인 자아를 가졌기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 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냉소적이나 비관적이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나는 상대에게 개입해 내 방식대로 바꾸려는 태도보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며 함께하는 연대를 말하고 싶다. 그것이 내 소설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방식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에서 바로 그 지점을 발견했고 깊이 공감했다. 우리는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도, 타인에게 완벽히 이해 받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연대가 필요하다. 그 전제는 바로 다른 세계에 대한 존중이다.
- 소설가의 뇌로 영화를 감상하는 경험은 어떤 것인가. 마감이라는 치열한 몰입 상태의 뇌와 영화로 이완하는 뇌는 어떻게 서로를 길어 올리는지.
= 마감에 임박하면 내가 쓰는 글의 질서에 온전히 몰입하게 된다. 그 세계에 갇혀 다른 모든 것을 튕겨내는 상태가 된다. 그 몰입에서 나를 끄집어내려면 웬만한 자극으로는 어림도 없다. 영화는 그럴 힘을 가진, 또 하나의 완성된 세계다. 그 세계로 온전히 건너가면서 비로소 내가 쓰던 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물론 마감 후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나에게는 뇌를 통째로 다른 뇌로 옮겨가는 듯한 이 느낌이 좋다. 나를 설득할 만한 미학적 자극과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작가로서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면서 동시에 새롭고 합당한 질문을 던져 주는 것이 영화다. 결국 ‘내 이야기를 실컷 했으니 이제 남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 ‘다른 세계의 아름다운 질서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 영화제 기간 동안 당신의 ‘다른 세계’가 되어줄 영화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나.
=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여행과 나날>은 당연히 궁금하다. <왼손잡이 소녀>도 보고 싶다. 평소에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의 동료인 대만 여성 감독(쩌우스칭)이 그려낼 섬세한 세계라던가, ‘왼손잡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아이들과 시장이라는 소재의 조합이 흥미로웠다. 타이베이 시장에 여러 번 가본 경험이 있어 익숙한 공간이 주는 재미도 클 것 같았다. 예매를 도전했다가 완전히 실패하긴 했지만 현장에서라도 표를 구해 꼭 보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