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올해 상반기에 발표한, 영화제 운영에 관한 주요 기조 중 하나는 ‘아시아영화의 연대를 기억하고 현안을 돌아보며 미래 발전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된 변화가 바로 30주년을 맞이해 신설된 ‘경쟁부문’이다. 경쟁부문은 아시아의 시선으로 아시아영화를 바라본다는 목표 아래 총 14편 상영작을 최종 선정했다. 아시아영화 중심의 비경쟁영화제로서 출범한지 30회에 이르러 부산영화제가 경쟁부문을 신설하게 된 의의는 무엇이며, 초청된 14편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정리해보았다.
작품의 화제성 견인, 신인 발굴을 동시에
부산영화제는 그간 신인 연출자의 첫 장편을 소개하는 뉴커런츠 섹션과 세 편 이상의 장편을 제작한 감독작을 상영하는 지석 섹션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두 섹션을 분리해 운영하는 것의 실효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또한 상영 작이 고유의 작품성을 지녔으며 국내 관객에게 호평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의 주목 도가 낮은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정한석 부산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전한다. (<씨네21> 1523호 인터뷰 참고) 현재와 같이 경쟁 섹션을 만들어 괄목할 성과를 보인 아시아 영화들을 초청하고 수상한다면 국내외의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신인 감독 발굴에 의의를 뒀던 뉴 커런츠 섹션의 목적을 충족하면서도 자연스레 부산영화제에 대한 해외 감독들의 관심까지 높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관객이 다채로운 작품을 영화제 기간 동안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난다. 서른 해의 역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부산영화제는 국내외 연출자와 관객을 다각도로 만족시킬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경쟁부문 심사가 치러지는 첫해, 심사위원은총 7명이 선정됐다. 심사위원장 나홍진 감독을 필두로 배우 양가휘, 배우 겸 감독 난디타 다스, 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 코고나다 감독, 프로듀서 율리아 에비나 바하라, 배우 한효주가 영화제 기간 동안 14편의 경쟁작을 감상한뒤 심사를 진행한다. 수상도 다양하게 치러진다. 경쟁부문에서는 가장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에게 주는 대상을 비롯해 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배우상(2인), 예술공헌상 등 5개 부문에서 ‘부산 어워드’를 시상한다. 수상 자에게는 태국의 감독이자 설치미술가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디자인한 트로피가 수여될 예정이다. 또한 예년과 다르게 폐막식 당일, 시상자에게 이름이 불리는 순간에야 수상자들은 자신이 어느 부문의 상을 거머쥐게 될 것인지 알게 된다.
거장과 신인의 신작이 모두 모였다
지난 8월26일 부산영화제 개최 기자회견에서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경쟁부문의 초청작을 “공인된 거장의 작품, 화제의 작품, 화제가 되고 있는 감독의 작품, 신인 감독의 도발적인 작 품” 등 크게 네 개의 범주에서 선정했다고 전했다. 또한 칸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상영된 4편을 제외하고서는 전부 월드 프리미어 상영작이다. 이미 잘 알려진 수상작·상영작과 더불어 최초로 공개되는 신인·거장의 작품을 부산에 만나볼 수 있다.
14명의 감독은 저마다의 인상적인 연출과 의미를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루오무의 황혼> 에서 장률 감독은 중국의 한 작은 마을 ‘루오무’를 배경으로 헤어진 전 애인의 흔적을 좇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른다. 비묵티 자야순다라 감독의 <스파이 스타>는 ‘일바이브’ 감염 위험에 노출된 이가 격리 시설을 벗어난 뒤 벌어지는 일을 그린 근미래 배경의 SF영화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비간의 <광야시대>도 부산을 찾는다. 여러 시간대을 오가며 혼돈을 일으키는 ‘판타스머’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빅 아더’의 행보를 경유해 비간 감독은 영화의 부활 혹은 영원성에 관해 논한다. 미야케 쇼는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 <해변의 서경> <혼야라동의 벤상> 두 편을 엮어 영화 <여행과 나날>을 완성했다. 심은경 주연작으로 제78회 로카르노 영화제 국제경쟁부문 황금표 범상, 심사위원상 – 환경상 수상작이다. 쩌우스칭 감독의 첫 단독 연출작인 <왼손잡이 소녀>에선 대만의 야시장을 배경으로 각자의 고민과 갈등을 끌어안은 세 모녀가 등장한다. 션베이커 감독이 공동 각본, 편집, 프로듀서를 담당했다.
이제한 감독이 <환희의 얼굴> <소피의 세계>에 이어 발표한 세 번째 영화 <다른 이름으로>에는 시한부 영화감독이 아내 몰래 마지막으로 영화 제작을 시도하는 비밀스러운 과정이 묘사되어있다. 한편 임선애 감독은 자신의 세 번째 장편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서 제목처럼 이별을 겪은 이들이 조찬을 먹고 각자의 사연을 나누는 시간을 들여다본다.
나가타 고토 감독은 영화와 TV드라마 부문을 오가며 다양한 영상물을 연출해 온 감독이다.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에서 나가타 고토 감독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뒤 도망친 세 남자의 초상을 직시한다. 하산 나제르 감독의 <허락되지 않은>은 매체를 검열하고 히잡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이란에서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꿈과 현실, 미래에 관해 묻는다. 이저벨 칼란다 감독은 타지키스칸의 아름다운 협곡을 배경으로 가족과 여성의 삶에 관해 다룬 <또 다른 탄생>을 내놓았다. 배우 서기의 감독 데뷔작인 <소녀>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서로를 지키 고자 하는 모녀의 관계가 그려진다. 그밖에도 2021년 단편 <창문>으로 한국에 소개됐던 시가야 다이스케 감독의 장편 데뷔작 <고양이를 놓아줘>, 온라인 환경이 익숙한 10대의 경험을 옮긴 한창록 감독의 <충충충>, 담임 선생님 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 고등학생이 임신 중지를 시도하게 되는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 등 신인의 도전적인 작품들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