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확연한 변화는 정한석 신임 집행위원장의 집요한 행정 아래 굴러간다.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로 6년간 뚝심 있는 선정을 이어온 그는 올해 한국영화 프로그래밍 실무까지 겸업하며 사실상 최장수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에서 집행위원장으로 거듭났다. 30년 조직의 관성을 깨고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영화제 전반에 스민 가운데, 정 집행위원장은 관객과 축제를 위한 실용주의적 선택, 그리고 아시아 창작자들을 위한 대형 플랫폼으로서의 도약을 역설했다.
- 올해 영화제의 변화 중 역점은 경쟁부문의 신설이다.
= 그동안 영화제를 대표하는 섹션으로 여겨온 뉴커런츠(신인감독 데뷔 섹션), 그리고 지석(제작 편수 3편 이상 감독 섹션)의 분리 운영으로 도모한 역할을 새 경쟁부문으로 극대화할 수 있길 바란다. 즉 신인과 기성·거장 감독을 분리하기보다는 이들 작품의 상호작용을 이끄는 대형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시절의 경험들이 바탕이 됐다.
- 나홍진·코고나다·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 배우 양가휘·난디타 다스·한효주, 프로듀서인 율리아 에비나 바하라까지 경쟁 심사위원단의 구성이 다채롭다.
= 마음에 드는 심사위원 라인업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절대 발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 다. 우리가 보기에 ‘정말 좋다’고 느껴질 때까지 한분 한분 초청했다. 출신 국가, 전문 분야, 작품의 패기와 용기를 알아볼 안목 등 여러 면모를 셈하고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다. 과거 뉴커런츠 섹션 시절에 심사위원단이 5명이었다. 영화제 운영 면에선 심사위원이 2명 늘어나는 것이 큰 차이다. 더 넓고 새로운 논의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 ‘아시아영화의 결정적 순간들’은 특히 올해 30주년의 의미와 어울리는 기획이다.
= 고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의 주도로 마련되어, 아시아영화의 흐름을 재조명하고 그 영화 사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아시아영화 100’의 세 번째 프로젝트다. 올해는 1996년 이후 작품 중 10편을 택했는데, 관객이 영화인과 만날 수 있도록 만든다는 데 방점을 두고 게스트 참석 여부에 실용적으로 주목했다. 이창동, 두기봉, 지아장커, 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 등이 찾는다.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은 화제와 함께 의외라는 반응도 많았다.
= 집행위원장으로서 OTT가 가진 긍정적인 흐름을 외면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게스트 중 한명인 기예르모 델 토로도 넷플릭스 작품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온다. 영화제의 수용과 별개로 OTT가 영화계와 충돌하는 정책 적·제도적 문제는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 앞으로도 국내외 OTT와 긴장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 영화 애호가들을 위해 보다 집중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 알렉산드레 코베리제 감독과 동생이자 음악가인 조르지 코베리제의 클래스 등 총 4개의 씨네클래스가 열린다. 축제의 화려함 속에서도 영화 애호가들이 듣고 싶어 하는 강연은 무엇 일까를 고민하면서 직접 기획했다.
- 종합하자면, 예술성과 대중성, 지역 축제로서의 힘의 안배에 있어 올해 영화제가 어떤 밑그림 보여주기를 바라나.
= ‘동네방네 비프’를 지난해 9개소에서 올해 15 개소로 늘렸다. 부산 시민들이 곳곳에서 영화제 분위기를 느끼고 게스트도 만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아시아의 시네필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빨리 찾아보고 싶어 할 만한 영화를 가능한 한 풍성하게 제공하고자 아이콘 섹션을 지난해 17편에서 33편으로 두배 가까이 늘렸다. 경쟁 부문에 대해서는 눈밝은 관객분들께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경쟁부문을 치열하게 봐주시고, 장단점을 논평해주시면 그것이 곧 이 영화제의 거름이자 성장이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