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이 첫 산문집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을 냈다. ‘열심히’와 ‘대충’이 어떻게 한 문장에 있는지 의아하다가도 윤덕원의 가사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납득하고 만다. 그의 가사를 흠모해 이게 내가 쓴 글이면 좋겠다고 욕심내기도 했던지라 윤덕원의 ‘쓰기'의 과정이 궁금했다. 브로콜리너마저 4집 수록곡이자 이번 책에도 실린 노래 <되고 싶었어요>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완벽한 노래를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무엇도 남기지 않았어야 해요.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그래도 해야 해요.” 정말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은 할 수도 전할 수도 없다면서, 그럼에도 말해지는 가사들. 체념과 염원이 제자리에서 조응하는 윤덕원의 문장을 탐구해봤다.
- <씨네21>에서 연재됐던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 만’을 챙겨 읽었던 이에게는 익숙한 글들이다. 산문집으로 묶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 2년에 걸쳐 2주에 한번씩 쓰다 보니 연재 특유의 호흡 같은 게 글에 생겼다. 연재 기간이 정확히 코로나19 시기와 겹쳤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시기였는데 지면에 에세이를 쓰는 기회가 되게 소중했다. 이전에는 출간 제안이 왔을 때 남들에게 책으로 보여줄 정도는 아니다 싶은 부분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출간을 생각하게 된 것은 출판사 미팅 후였다. 기존 글로 소책자를 만들어 보여주셨는데 느낌이 다르 더라. 인쇄된 글로 보니까 괜찮게 느껴졌다. (웃음) 책으로 엮으면서 새로운 글을 조금 더 쓰고 이전 글을 수정하고 출판사와 주고받는 기간이 8개월 정도 있었다.
- 첫 산문집이라니 오히려 늦은 감도 있다. 이번에는 어떤 용기로 책을 내게 된 것인가.
= 이번 글이 특별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내가 큰 성장을 해서도 아니다. 다만 나의 마음 상태가 조금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일단 만들어놓은 원고가 있어서 부담이 덜했고, 이제 내 마음도 느슨하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 스튜디오브로콜리에서 앨범을 직접 제작하면서 여러 시도를 해왔다. 이번 책을 낼 때에는 출판사 편집자들이 코러스를 한 동명의 음원을 발표했다. 먼저 아이디어를 냈다고.
사실 책의 O.S.T라는 개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닌데 그걸 실행하려면 막막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내가 음악을 하고 있으니 좀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책 한권을 만들 때에도 대단히 많은 분들이 함께하는데 이게 팀 단위더라. 대단한 악기나 편곡 없이 소박한 곡으로 갈 때 가장 진심 어린 게 다 같이 노래를 불러서 볼륨감을 높이는 것인데 편집자들이 합창을 해보면 어떨까 해서 출판사에 찾아가서 녹음했다. (웃음)
- 연재 시에는 글 뒤에 노래 가사들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사는 중간중간 들어가고 노래의 소개글이 추가됐다.
그게 큰 차이다. 연재할 땐 뮤직 에세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음악하는 사람의 에세이로 매주 새로운 곡이 함께 온다, 라는 느낌이었다면 지금 책은 에세이 자체로 읽히게 하고 싶었다. 노래들은 다 뺀 상태에서 이 사람이 이런 글을 쓰는구나 모아서 볼 수 있었고, 거기서 제목도 만들어졌다. 그런 방향들이 모여서 책은 ‘이주의 음악 에세이’보다는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의 글이 된 것 같다.
-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중의적으로 책을 잘 반영하고 있다.
글을 모아놓고 보니 ‘기록하고 남기는 것에 대한 집착’이 느껴졌나보다. 연관되는 제목을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내주셨다. 당시 ‘열심히 대충’이라는 말이 좋아서 SNS 상태 메시지에 ‘열 심히 대충 하는 사람’이라고 적어놨었다. 편집 자와 제목 논의를 하다 보니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글도 쓰고 노래도 썼으니까 ‘쓰는 사람’이라는 말이 모든 걸 아우를 수 있겠다 싶었다.
-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제목과 가사 중에서도 책제목으로 바로 해도 좋을 것들이 워낙 많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이나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졸업>) 등. 이런 가사들은 단어에서 출발하나.
주로 단어나 문장, 이런 것들을 비틀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뭐랑 뭐랑 단어를 붙이니까 되게 웃기네? 멋있는 것보다 웃긴 걸 좋아하는 편이다. 이거 웃긴데 이런 식으로 적어놓고 더 발전시키고, 문장이 있으면 그걸 앞뒤로 뒤집어본다. 책에도 썼는데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라는 문장은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잊지 말자’라고 뒤집어본다거나 하는 식이다.
-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보다는 평이한 일상어의 조합으로 새로운 느낌을 주는 가사들이 많다.
그건 단어력이 짧아서. 그리고 전달이 잘되는 걸 좋아해서 복잡한 단어를 쓸 이유를 딱히 못 느낀다. 내가 A로 얘기하면 청자에게도 A로 도달했으면 좋겠다. 잘 모르는 단어를 쓰면 각주가 있어야 하니까 그런 설명이 없는 가사를 쓰고 싶다. 그 단어만으로 바로 누구나 해독이 되는, 그러면서도 어떤 결을 가지려고 한다. 누군 가는 ‘감성이 참 아날로그적이세요’라고 하시는데 그건 아니다. 저는 되게 디지털적인 사람 이다. 그냥 딱 명확하게 내가 A라고 얘기하면 상대방에게 A라고 전달되는 그런 유의 디지털을 선호한다. 옛날 봉화도 어떻게 보면 디지털 아닌가. 곡과 글을 쓸 때도 그렇다. 내가 봉화 3개를 들었으면 상대에게 딱 그 3개가 갔으면 좋겠다.
-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물론 그렇다. 듣는 분의 백그라운드가 결합됐을 때 다른 화학작용이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전달하고 싶은 건 명확히 전달됐으면 한다. 그걸 상대방에게 일일이 다 풀어 설명하는 순간 매력이 없어지니까 처음 주려고 하는 메시지는 그대로 갔으면 하는 방식의 가사 쓰기를 추구 하고 있다.
- 곡을 만들 때 멜로디에서, 아니면 가사에서 출발 하나.
가사에서 출발한다. 멜로디에 좋은 문장을 붙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적인 문장 같은 경우에는 문장 먼저 자리를 잡고 시작하지 않으면 그게 전부 들어갈 수 없을 때가 있다. 꼭 전하고 싶은 그 문장의 표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문장 위주로 많이 시작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 예전에는 기록을 집요하게 하진 않았다고.
오만하게도 ‘내 기억에 남지 않으면 별로 안 좋은 가사야’라고 생각했다. (웃음) 당시에는 실제로 기억이 잘되기도 했고. 지금은 신경 쓸 게 많아지니까 기억이 잘 안 나더라. 그거 같다. 어릴 때에는 하루가 정말 길었다. 오후 시간이 진짜 안 갔다. 반면 나이가 드니까 시간이 휙휙 가서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시간을 달리고 있을 때는 그런 것들을 계속 되뇌 면서 다듬는 게 가능했지만 어느 순간 삶의 속도가 창작의 속도를 뛰어넘어버리더라. 그래서 메모가 필요하게 됐다.
- 함축적인 단어 위주로 불필요한 말을 빼는 방식으로 가사를 쓰던 습관이 에세이를 쓸 때에는 오히려 방해가 됐다고 썼다. 에세이를 쓰다 보니 가사에 방해가 되기도 하나.
그건 아니다. 에세이 쓰기에 에너지를 쓰다 보니 시간이 부족할 순 있는데 글을 쓰는 행위 자체로 봤을 땐 플러스가 많다. 왜냐하면 긴 글을 다듬고 깎아내다 보면 짧은 표현으로도 만들 수 있다. 에세이 쓰기와 가사 쓰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국 반복돼서 불리는 노래에서 어떤 문장을 계속 남길지 선택하는 거다.
- 브로콜리너마저의 가사에 대해서는 체념적, 혹은 비관적이라는 감상이 있다.
조금 비관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삶은 되게 복잡하다. ‘삶이 고통스러워, 아니야?’ 하면 고통스럽다. 하지만 ‘희망이 있어, 없어?’ 하면 완전히 없다고 할 순 없다. 우리가 어쨌든 계속 시도하는 시간들이 있으니 까. 시도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을 뿐이다. 하지만 어떡해, 그래도 해야지. 내가 계속 살아간 다는 전제하에 그 가능성들이 있는 거다. 비관적인 게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건 체념하지 않는 비관에 가깝다.
- 글이 ‘시니컬한데 다정하다’. 반면 주변인이나 실제 상황에 대해 드러내지 않으려는 인상도 있다. 솔직하게 쓰고 싶다고 했는데 숨기면서 솔직하기란 어렵지 않나.
설 푸는 글이 되는 걸 자제했다. 타임리스하게 읽히는 글이 되면 좋겠어서 그렇게 썼다. 설을 재미있게 푸는 분들도 있는데 내가 또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꾼은 아닌 것 같고. 일화 자체 보다는 거기서 온 생각들과 관점을 보여주는데 치중했다.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이런 에세이도 썼다는 게 재미있게 다가가면 좋겠다. 솔직히 나는 그렇게 솔직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안 한다. 거짓말은 안 하는데 그렇게 솔직하고 싶지는 않다. 글에 거짓말은 하나도 없다. 다만 감출 뿐이다.
- 창작자로서 듣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삶의 태도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다.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노래에 물을 주듯이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예술가와 곡을 분리해야 된다는 유의 얘기들이 있지 않나. 내 경우엔 만든 노래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만든 사람과 곡을 분리할 수 있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최소한의 성의를 다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가 이제 좀 뜸하고 느긋한 템포가 돼서 옛날처럼 많이는 못 만들 수 있다. 그래도 팬들이 이 노래를 계속 들어도 뿌듯할 정도의 사람으로 살면서 노래하고 싶다. 나이 들어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아도 이 노래를 지금 들어도 부끄럽지 않다 싶으면 좋겠다.
윤덕원의 책장
만화책을 정말 좋아한다. 특히 언더그라운드 영역의 작품들을 좋아해서 독립 출판물을 찾아서 읽었다. 토마 작가의 <속좁은 여학생>을 무척 좋아해서 작가님에게 허락을 받고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제목으로도 사용했다.
- 불키드 <이상한 날>
- 재활용 <연민의 굴레>
- 토마 <속좁은 여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