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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입양인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다, <케이 넘버> 조세영 감독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5-05-15

‘입양은 축복’이라는 말은 과연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관용구일까. 미오카 밀러는 1970년대 초 길에서 발견돼 미국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성인이 된 이후 가족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나 자신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지워지고 조작된 입양 기록, 미오카를 비롯한 해외 입양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영화는 한국 해외 입양 시스템의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자, 이제 댄스타임>을 통해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와 임신중절 경험을 다뤘던 조세영 감독이 신작 <케이 넘버>에선 해외 입양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영화는 개인의 사연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해외 입양 시스템으로 시야를 넓혀 구조적 문제까지 낱낱이 파헤친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서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대상, 열혈스태프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케이 넘버>는 이제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한국의 해외 입양에 관해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말이다.

- <자, 이제 댄스타임> 이후 11년 만에 세 번째 장편을 내놓았다.

제작을 마무리했다고 해서 전부 끝났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개봉한 뒤엔 영화에 관한 인터뷰, 관객평이 퍼져나가고 출연자들에게도 전해질 텐데 그런 반응이 출연자들의 삶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나에게도 변화가 생길 테고. 이 일련의 흐름이 내겐 작업의 연속이라 느껴진다.

- <케이 넘버>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처음부터 거창하게 영화화하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사회단체 홍보영상을 제작하거나 KBS1 <열린채널>에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납품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한창 페미니즘 운동, 호주제 폐지 운동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때였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함께하며 나 역시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생겼고 그동안 부조리하다 여기며 분노한 부분들이 해소됨을 느꼈다. 국내 입양을 하는 분들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한 해외 입양인이 입양 기관에 서류를 요청하러 가는데 나에게 카메라를 들고 동행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부탁했다. 기관에 들어설 때부터 웬 촬영이냐고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난다. 장시간 말다툼을 벌이다 결국 촬영을 재개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당시의 촬영분이 <케이 넘버>의 오프닝 신이 됐다. 입양 서류 복사본조차 쉽게 내주지 않는 기관의 모습을 보며 해외 입양인이 한국에서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고, 조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15년이 흘렀다.

- 여러 해외 입양 사례가 있었을 텐데 몇몇 입양인의 사례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 계기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입양인이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전제조건이었다. 입양 문제에 관해선 감정 기복이 클 수밖에 없다. 인터뷰를 위해 네덜란드까지 가서 결국 아무것도 찍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지 않거나 뒤늦게 본인의 촬영분을 전부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외에 살다가 한국에서 자신의 뿌리에 관한 문제에 집중하다보면 어느 순간 공허해지거나 감정적 힘듦이 찾아오곤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케이 넘버>는 개별 사례에서 시작해 입양 체계로 접근해야 했기 때문에 인물 개인의 이야기가 너무 드라마틱하거나 감정적이지 않으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 좋겠다고 여겼다. 그런 면에서 미오카씨가 적격이었다.

- 취재 과정에서 한국의 입양 시스템에 관해 새롭게 접한 정보가 많았겠다.

가장 경악한 건 미오카씨와 꿈나무 마을이라는 은평구의 청소년시설을 방문했을 때다. 사회복지사의 말에 따르면 당시에는 아이들의 머릿수에 맞춰 금액을 배당받았기 때문에 시설에서 시설로 아이들을 옮기는 경우가 적었고, 배회하는 아이들은 무조건 잡아다 수용했다는 것이다. 두당 금액이 매겨진다고 하니 한국의 해외 입양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궤가 맞춰지더라. 노혜련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1980년대에 이미 저출산이 시작됐는데도 9천명 이상의 아이들이 해외 입양되어 나간 것이다.

- <케이 넘버>란 제목은 언제 정했나.

해외 입양을 간 아이들에게 부여되는 번호인 ‘케이 넘버’(K-Number)는 2019년 무렵부터 제목으로 염두에 뒀다. 처음엔 뒤에 ‘되돌아오는 아이들’이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이게 그들을 타자화하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양인’이라는 단어보다 ‘입양아’라고 지칭할 때가 훨씬 많은데 여기에는 한국을 떠나간 아이들, 불쌍한 존재라는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을 걷어내지 않으면 해외 입양 이슈를 우리의 문제로 가져올 수 없겠다고 여겨 <케이 넘버>로 제목을 바꿨다. 해외 입양인의 개별 사례보다 한국의 해외 입양 시스템, 이러한 체계를 구축한 한국의 역사와 사회구조에 주목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다.

- “한국인의 몇 퍼센트가 수십년간의 해외 입양에 대해 실제로 알고 있는 거 같아요?”라는 미오카 밀러의 말이 기억에 오래 남더라.

토착 한국인들, 그중에서도 20~30대가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 한국의 40대 주변엔 입양을 간 경우가 꽤 되고 50대 중에선 미오카씨에게 공감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그런데 20~30대는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 국가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래된 역사도 전부 배우고 있지 않나. 20만명 이상이 해외 입양을 갔다는 건 4인 가족으로 치면 80만명 이상이 연계되어 있는 것이고 이와 같은 해외 입양은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도 지속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외국에 거주하는 입양인들도 떠오른다. 그분들이 입양 관련 영화를 제작하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와중에 그에 대한 답신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인상이다. 해외 입양인들에게 이 영화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다.

- 다음엔 어떤 주제를 다뤄보고 싶나.

요즘 난민, 이주민들에 관한 이슈에 관심이 간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은 250만명에 이른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체류자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이들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 인종차별과 혐오적 시선 또한 염두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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