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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열의 촬영 미학] 빛으로 만드는 무대, <에밀리아 페레즈>와 베두타 이데아타
박홍열(촬영감독) 2025-04-02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베두타 이데아타’라는 회화 장르가 유행했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적절히 조합하는 카프리치오의 한 유형으로, 도시 또는 전원 풍경 사이로 허구적인 공간이 들어서는 방식이다. 실재하는 풍경과 허구적인 공간은 엄격한 원근법과 세밀한 묘사, 사실적인 빛으로 표현하며, 색의 통일성을 더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회화이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베두타 이데아타’와 비슷한 영화다. 현실과 뮤지컬이 만나 현실이 판타지며 동시에 판타지가 현실이 되어 둘이 서로 중첩되고 공존한다. 어느 것이 우위에 있지 않고 어떤 장르로도 귀속될 수 없다. 장르로서 뮤지컬영화라고 하지만 뮤지컬영화이면서 뮤지컬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뮤지컬영화지만 기억나는 넘버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넘버가 극의 감정을 전달하고 극적 분위기의 리듬을 만드는 데 손색이 없지만 노래가 영화 속 장면을 넘어서지 않는다.

영화의 첫 번째 넘버에서는 화면이 노래를 넘어서지 않는다. 카메라가 화려한 움직임으로 리타(조이 살다나)와 무용수들의 몸짓을 포착하려 하지도 않는다. 애너모픽렌즈의 넓은 화각을 활용하여 리타와 인물들을 한 프레임 안에 담지만 얕은 심도로 프레임의 좌우를 넘나드는 무용수들의 춤은 강조하지 않는다. 한 방향으로 걷는 리타를 중심으로 음악과 춤, 카메라의 움직임을 동등하게 배치한다. 게다가 뮤지컬 넘버를 주인공과 비중 있는 배역들에게만 부여하지 않는다. 배역에 위계 없이 등장한 인물들에게 넘버를 부르게 한다. 한번밖에 등장하지 않고 서사 전개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되는 인물들에게까지 뮤지컬 넘버를 부여하는데, 범죄로 죽은 희생자들 한명 한명에게도 노래를 부르게 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뮤지컬 넘버의 운율과 빛과 색의 운율이 서로 조금씩 겹치며 천천히 서로의 자리로 옮아간다. 뮤지컬 넘버와 빛이 만나 ‘베두타 이데아타’를 만든다.

이 영화의 공간들은 실제 로케이션에서 촬영된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론 대부분 세트촬영이다. 빛으로 만든 공연 무대다. 제시가 멕시코로 돌아와 맞이하는 첫 아침 장면에서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르며 카메라 앞으로 다가온다. 카메라 앞으로 점점 다가오다 갑자기 어둠의 경계를 통과해 프레임아웃한다. 그 순간 이 공간이 세트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컷은 블랙박스 안에서 무용수들과 춤추며 노래하는 제시다. 다시 그녀는 자신의 침실로 들어온다. 이후 제시는 침실과 블랙박스를 오고 간다. 이때 두 공간의 경계를 빛을 통해 연결하며 실제가 무대이고 무대가 실제가 됨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 시퀀스의 마지막은 그녀의 얼굴이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흰빛이 노란빛으로 변하고 화면 가득 얼굴 클로즈업만 보인다. 제시의 얼굴이 무대가 되고 빛의 변화로 그녀의 인생에 다른 ‘막’을 연다.

빛의 무대화를 구현하는 또 다른 장면은 에밀리아와 에피파니아 시퀀스다. 에피파니아의 집 안 커튼 사이로 작은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커튼을 통과한 빛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밝아지며 부엌 안에 자리를 잡는다. 카메라는 그 빛을 끝까지 응시한다. 이후 에밀리아가 그 빛을 받으며 프레임인한다. 평생 어둠 속에 살아왔던 에밀리아가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사랑을 만나면서 그에게도 빛이 닿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뒤늦게 일어난 에피파니아가 에밀리아를 껴안으면 집 안에는 가장 밝고 많은 빛이 들어와 두 사람을 감싼다. 성전환수술로 여성인 된 에밀리아와 범죄 희생자의 가족이지만 희생자가 생전에 저지른 폭력의 피해자인 에피파니아, 반반의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으로 포옹한다. 일반적인 뮤지컬영화에서 넘버로 표현하는 장면을 이 영화에서는 빛으로 표현한다. 빛이 노래를 대신하고, 함께한다.

진정한 백미는 제시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출한 뒤 분노하는 에밀리아와 둘 사이를 중재하는 리타가 분할화면으로 동시에 보이는 장면이다. 먼저 리타와 에밀리아가 분할되어 한 프레임 안에 보인다. 아이들을 빼앗겨 흥분한 에밀리아는 안정된 오른쪽 화면에 보인다. 반대로 진정시키는 리타는 왼쪽 화면에 보이고 불규칙한 줌을 여러 번 나누어 사용한다. 이어지는 장면은 제시와 리타의 분할화면이다. 에밀리아가 있던 오른쪽에 리타가 놓이고 리타가 있던 왼쪽에 제시가 놓인다. 이번에는 리타가 아닌 흥분한 왼쪽 제시에게 불규칙한 줌이 들어간다. 다음에 보이는 분할화면은 3분할이다. 리타가 가운데 있고 왼쪽에 에밀리아, 오른쪽에 제시가 있다. 두개의 분할화면을 하나로 합쳐 보여주고 있다. 다시 앞서 보여줬던 두개의 분할화면이 반복되는데, 이번에는 리타가 점점 더 클로즈업된 화면으로 동시에 두 사람을 설득한다. 리타가 설득할수록 에밀리아와 제시는 줌아웃하며 멀어진다. 두 사람의 감정이 고조될 때 둘 다 불규칙한 줌인을 통해 세 사람이 동시에 화면 가득 분할되어 보인다. 세명을 한 화면 위에서 보여주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사이즈와 카메라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통해 극한 감정의 대립을 더 극적으로 표현한다.

분할화면에 또 하나 재밌는 부분은 색의 사용이다. 우선 에밀리아는 그린 사이언색 배경 앞에 서 있다. 제시는 레드 계열의 옷과 마젠타색 배경 앞에 서 있다. 서로 보색인 반대편 색 앞에 서 있는 것이다. 3분할에서 가운데 배치된 리타는 보라색 옷을 입고 있는데, 리타의 색인 보라는 색상환에서 제시와 에밀리아의 중간색이면서 두 색을 연결하는 연변색이다. 색으로 감정의 대립과 연결, 중재를 표현한다. 또한 이 장면에서는 색수차도 동원한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색수차는 렌즈나 기계적 결함의 증거다. 제시는 가로 색수차를, 에밀리아는 세로 색수차를 화면 안에 배치한다. 두 사람의 극한 감정 대립과 그 사이의 어려운 중재를 맡고 있는 리타를 한 프레임 안에 분할하여 동시에 배치하고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 색의 대비, 색수차를 활용해 이를 극대화한다.

분할화면은 영화의 주제와도 연결된다. 에밀리아는 에피파니아를 만난 뒤 노래한다. ‘반은 나 반은 그녀, 반은 함께 반은 홀로, 반은 아래 반은 위로.’ 에밀리아는 아빠이면서 고모, 남편이면서 시누이, 살인자이면서 희생자들의 대변인이다. 극단적인 두 위치에 한 인물이 동시에 놓여 있다. 이 영화는 에밀리아를 통해 사회가 각 개인을 규정하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어느 하나로 규정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어느 한곳에 속할 수 없는 반반이며, 우리 모두는 ‘에밀리아’임을 뮤지컬을 통해 말한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뮤지컬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균등하게 배분된 반반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있고 속할 수 없는 반반의 영화, ‘베두타 이데아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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