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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의 인서트 숏] 불탄 벽지
장윤미 2025-03-20

“곧 철거하나 봐요.” 캣맘의 문자에 다음날 바로 현장에 갔다. 성매매 집결지인 이 동네의 일부에 펜스가 생긴 지 한달, 펜스 안 건물들에 대한 철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캣맘은 빈 업소를 은신처 삼던 고양이 순이와 회색이를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공사 관계자와 구청에 요구하여 펜스에 구멍을 뚫어두었다. 예상보다 빨리 철거일이 다가오자 우리는 말 그대로 발을 동동 구르며 공사 관계자에게 철거 전 건물을 꼼꼼히 수색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는 이런 일은 한두번 겪는 게 아니라며 우리를 안심시켰고, 마냥 믿을 수는 없었지만 믿어야 했다. 순이와 회색이가 살던 건물에 포클레인이 내리꽂혔다. 콘크리트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펜스 앞을 지키던 공사 관계자에게 달려가니 구멍으로 알록달록한 고양이가 먼저 나오고 시간이 좀 지나 거무튀튀한 고양이도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정말이라고, 믿으라고 했다. 수색해서 나온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쨌든 너무 다행스러워서 눈물이 조금 났다. 그리고 펜스에 구멍을 뚫어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겪으며 절실히 깨달았다. 나야 캣맘을 조력하는 위치에 있을 뿐이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니, 서글펐다. 고양이들은 오죽할까. 하루 만에 집이 사라진 그들을 생각하니 내 힘든 감정은 하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고양이들이 안전하게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는 내 일을 해야 했다. 유서 깊은 이 성매매 집결지의 건물이 무너지는 걸 촬영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펜스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 했다. 이 동네 대부분의 건물이 2층 높이로 옥상조차 없는 곳이 많아서 올라간다고 해도 촬영을 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 싶어서 평소 봐둔 빈 업소의 깨진 유리문을 통해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보였다. 하지만 거의 삭고 일부만 남아서 한발을 딛고 오르기도 불안했다. 얼마나 오래 방치된 건물인지 계단 옆에는 바닥을 뚫고 자란 나무들이 있었다. 나는 한 나무를 지지대 삼아 카메라 가방과 삼각대를 메고 낑낑대며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천장이 없었다. 잘게 쪼개진 방, 화장실, 한때 홀이었을 공간도 있는데 머리 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천장이 무너진 건가? 지붕이 날아간 건가? 언젠가 이 건물에서 화재가 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불에 그을린 벽지가 보였다. 기괴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이 풍경 속에 잠시 서 있는데 마치 이국의 유적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힘들게 2층으로 올라오긴 했는데 철거 현장이 잘 보이는 곳까지 가려면 아직 위로 더 올라가야 했다. 이 동네는 건물들이 거의 맞붙어 있다시피 해서 폴짝 뛰기만 하면 옆 건물의 옥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아마 경찰의 단속을 피해 이동하기도 쉬웠으리라. 옆 건물로 뛰어넘어가는 찰나 길 건너 지붕에서 쉬던 고양이들이 놀라 도망갔다. 미안…. 이제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더욱 잘 들렸다. 물탱크가 있는 작은 옥상이 보여서 그곳까지 올라가보기로 했다. 주위에 계단이나 사다리는 없었지만 옥상 주위로 쓰레기들이 산처럼 형성돼 있었다. 선풍기, 프린터, 세제 통 등등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많은 쓰레기들. 옥상까지 딛고 올라가기에는 높이가 부족해서 마지막에는 옥상 바닥에 매달린 채로 점프해 올라가야 했다. 장비를 먼저 위로 올리고는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철거 현장이 잘 보였다. 지금은 죽고 없는 고양이 돼지, 그리고 순이와 회색이가 살던 집은 그사이 반 이상이 무너지고 없었다. 난간이 없는 옥상의 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촬영을 시작했다. 건물 위에 임시로 세운 허약한 재질의 가건물이 포클레인에 쉽게 뜯겨져 나오는 게 보였다.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보다 무너지면서 드러나는 내부, 그러니까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던 업소의 내부, 그리고 포클레인에 끌려 나오는 온갖 잡동사니들에 눈이 갔다. 그게 무엇인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쪽이 아련히 슬펐다.

물탱크가 있는 이곳은 추위와 바람을 피할 수도, 인간의 시선을 피할 수도 없다. 결국 공사 관계자의 눈에 띄었고 그는 멀리서 손으로 엑스 표를 해보였다. 나는 못 알아듣는 척하며 인사하듯 손을 크게 흔들어 보이고는 점심 식사를 하러 노동자들이 다 떠난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내려왔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아까는 지나쳤던 옥상에 있는 한 가건물로 들어갔다. 매트리스가 깔린 빈방들이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계속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내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헷갈렸다. 괜찮아, 이 동네는 어느 문이든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몇번의 경험으로 익힌 내 감을 믿고 가고 싶은 곳으로 계속 이동했다. 계단이 보이면 내려가고 문이 보이면 열어보고 문에서 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탐험하듯 계속 통과해나갔다. 어두운 복도에 한 줄기 햇빛과 함께 보이는 뽀얀 먼지들, 바닥에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 하나, 방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인테리어, 금고, 신발, 달력 같은 것들, 뜯긴 벽지 뒤로 보이는 또 다른 벽지, 그런 것들. 수많은 사람들과 돈,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갈등, 온기 같은 것들이 한때 넘쳤을 공간. 그러다 좁은 복도의 끝까지 걸어갔는데 잠긴 문틈으로 내가 늘 걸어다니던 익숙한 골목이 보였다. 난 갇힌 걸까 혹은 저 골목과 연결되지 않은 아예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걸까. 열리지 않을 문을 한두번 흔들어보고는 돌아 나왔다. 다시 여러 방을 거쳐 계단을 오르내리길 몇번 반복했을 때 미로의 끝에는 내가 처음 들어왔던 깨진 유리문이 보였다. 깨진 유리문으로 나가려는데 주위에 붙은 스티커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서에서 붙인 여성피해신고 안내, “화재는 예방이 최선이다. 지하층에서는 잠을 자지 말라”는 소방서장의 안내, 명랑해 보이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스티커. 사진을 찍고는 다시 익숙한 골목으로 나왔다. 아쉽고, 안심되는 마음이었다. 멀리서 다시 콘크리트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며칠 뒤, 여전히 그날의 감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불탄 그 건물 안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