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리그: 이기거나 지거나>
디즈니+ / 8부작/ 연출 캐리 홉슨, 마이클 예이츠 / 목소리 출연 윌 포테이, 조시 톰슨, 밀런 레이, 로사 살라자르 / 공개 2월19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서로 다르게 남아 있는 기억의 거리를 좁혀본 사람만이 비로소 어른이 된다
같은 일을 함께하고도 ‘나’와 ‘너’의 기억은 왜 다르게 남을까. 2025년 픽사의 첫 오리지널 시리즈 <모두의 리그: 이기거나 지거나>(이하 <모두의 리그>)는 소프트볼 챔피언십 경기 일주일 전, 중학교 팀 ‘피클스’ 선수들과 그들의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8가지 에피소드를 담았다. 매화 각기 다른 주인공이 공통된 사건을 두고 각자의 시선에서 다르게 저장된 기억의 조각을 맞춰나간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팀 내 최약체인 타자 로리가 소프트볼 코치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로리의 경기에 참여했던 심판 프랭크의 속사정이 드러나고, 세 번째 이야기는 피클스 포수인 로셸이 소프트볼 회비를 모으기 위해 저지른 커닝 사건을 다룬다. 전체 이야기의 절반에 다다른 4화에서는 로셸의 어머니 바네사 입장에서 다시금 커닝 사건을 되짚어본다.
<모두의 리그>는 픽사의 굵직한 역사를 책임져온 연출진과 제작진이 함께했다. 먼저 <토이 스토리4> <엘리멘탈> 등의 스토리 아티스트로 참여한 캐리 홉슨 감독과 <소울> <인사이드 아웃2>에 참여한 마이클 예이츠 감독이 공동 연출로 온기 가득한 세계관을 완성했다. 정신없이 엉뚱한 소동으로 이어지는 <모두의 리그>는 픽사에서 벌어진 귀여운 일화로부터 시작됐다. “캐리 홉슨과 <토이 스토리4>를 함께 작업했을 때, 우리는 항상 같은 회의를 다르게 기억하고 반응했다. 한명이 ‘잘됐어!’라고 하면 다른 한명은 ‘아니, 끔찍했어. 무슨 소리야?’라고 하는 식이었다.”(마이클 예이츠) 특히 캐리 홉슨 감독은 “캐릭터가 느끼는 다각적인 감정을 펑키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에피소드마다 일상적이고도 개성 넘치는 은유가 드러나는 특징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라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심판으로서 관중의 비난과 간섭을 외면하는 프랭크(2화)의 방어적 태도는 타인의 눈엔 보이지 않는 갑옷으로 묘사되고,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온 로셸(3화)의 막막함은 무인도에 고립된 상태로 표현된다. 이러한 은유는 <모두의 리그>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시청자에게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한데, 인물의 감정 변화를 중심으로 주요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픽사 대표작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의 명맥을 잇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쁨이나 슬픔이처럼 감정이 직접 등장해 심정을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지만, <모두의 리그>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심도 깊은 고백을 이끌어내는 덕에 캐릭터의 기분 변화를 쉽게 캐치할 수 있다.
에피소드마다 인물들이 얽히고설킨 <모두의 리그>는 구조적으로 옴니버스 구성을 띤다.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돼 있는 구조는 같은 사건을 다른 눈으로 해석할 수 있는 확실한 묘미를 준다. 특히 이 유기성은 모녀 관계를 다룬 3화 로셸과 4화 바네사의 이야기에서 빛을 발한다. 먼저 로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엄마와 갓난아기 동생 사이에서 로셸은 일찍이 성숙해졌다. 늘 철없는 엄마가 못 미더운 로셸은 학교에서 보호자를 찾을 때마다 자신이 엄마를 대신해 나간다. 피클스팀 회비가 1600달러로 올랐다는 무거운 소식을 어린 중학생이 들어야 했던 것도 셀피 찍느라 바쁜 엄마 대신 자신이 나섰기 때문이다. 엄마가 과연 회비를 내줄까? 그럴 리가. 엄마는 아르바이트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로셸은 시합에 나가기 위해 친구들에게 지식을 팔기 시작한다. 친구들의 숙제도 대신 해주고 과외도 하고 심지어 커닝 페이퍼 제공까지. 프랭크 선생에게 부정행위를 적발당한 날, 로셸의 변명을 믿은 엄마는 역시나 천진난만하게 행동한다. 여기까지가 로셸의 기억. 그렇다면 엄마 바네사의 입장은 어떨까.
미혼모로서 아이 둘을 홀로 키우는 바네사의 삶은 쉽지 않다. 딸 앞에서는 심호흡 크게 두번 한 후 ‘솔~’ 정도의 높은 톤으로 행복하게 말하지만 생계도, 둘째 육아도, 어린 자신도 마음과 다르게 흘러간다. 자기 손을 타지 않고 훌륭하게 자라준 딸의 커닝 사건을 들은 날, 바네사는 프랭크 선생과의 면담 뒤에 학생 보호자회원들을 만난다. “애들 거짓말은 촉이 와요. 잘 느껴봐요.” 그리고 커닝 페이퍼 위로 보이는 어딘가 익숙한 글씨체. 로셸의 거짓말을 알아차린 바네사 앞에는 중대한 문제가 생기고 만다. 서로를 향한 불신을 인지해버린 두 모녀는 멀어진 심리적 거리를 과연 어떻게 좁힐 것인가. 각기 다른 기억 조각을 모아 한편의 그림을 완성하는 <모두의 리그>는 단편적으로 ‘기억 차이’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그보다 각 인물이 맞닥뜨린 고통, 선택, 결정의 이유를 유기적으로 그려내면서 왜 인간은 동일한 상황에서도 각기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그럼에도 ‘나’의 기억과 ‘너’의 기억은 왜 연결될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그동안 ‘서로 다름’을 강조한 많은 이야기는 필수 가치로 이해를 내세웠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때 비로소 차이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모두의 리그>는 내피 안으로 한 발자국만 더 들어가 상대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상상하고, 받아들여보라고 제안한다. 둥글둥글 귀엽게 묘사된 캐릭터 얼굴 위로 이유 모를 고독이 느껴지는 건 상대방과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실수를 저질러본, 그러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의 서툰 얼굴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