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를 친다는 소식이 들렸다. 성매매 집결지로 알려진 이 동네를 드나든 지도 어언 3년째다. 3년 전 나는 서울의 유명한 집결지였던 이곳이 곧 재개발된다는 말을 들었다. 곧 사라질 풍경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몇년째 나는 언제 재개발이 시작될까 하는 기다림과 정말 사라지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 사이를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골목의 끝에 갑자기 철근이 세워졌다. 철거를 위해 펜스를 친다고 했다. 심란했다. 정말 사라지면 어떡하나.
펜스가 들어설 골목의 끝에는 방치된 지 아주 오래된 업소 대여섯개가 모여 있다. 그중 한 업소 안에는 고양이들이 은신처 삼아 살고 있다. 동네 캣맘은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순이야~ 돼지야~ 회색아~” 하고 불렀다. 부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살짝 열린 틈으로 업소 안을 들여다보고는 했다. 고개를 들이밀면 강한 냉기가 느껴졌고 사방으로 둘러싸인 거울에 내가 여러 개로 비쳤다. 곰팡이 핀 벽지와 가구들은 썩어가고, 누가 갖다뒀는지 알 수 없는 오래된 캣타워도 있었다. 공간 한가운데에는 늘 콧물을 달고 사는 고양이 ‘돼지’가 앉아 있곤 했다. 볕이 좋으면 고양이들 모두 좁은 골목에 나와 있었다. 골목에는 항상 쓰레기가 많았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고양이들이 밟지 말라고 깨진 유리를 발로 밀어 치우거나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뭐 수집할 게 없나 살피곤 했다.
재개발 조합에서는 빈 상가가 모인 이곳부터 펜스를 치고 철거를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곧바로 든 생각은 ‘아 여기 사는 고양이들 어떡하지’였고 그다음에 든 생각은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였다. 어느새 나는 거리를 두고 관찰만 하던 마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걱정이 많아졌다. 이주하지 않은 사람들과 협의도 없이 갑자기 펜스를 친다는 소식에, 밤새 일한 사람들이 하나둘 공사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하나의 출입구 역할을 하던 이곳에 펜스를 친다는 것은 이 동네가 이제 정말 없어질 거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30여명의 사람들이 좁은 골목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투쟁가를 틀었다. 구호를 외쳤다. “철거민 투쟁 정당하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그러니까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은/못한 사람들이 있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노동하고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기본 10년 이상씩, 길게는 30년 넘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들은 비슷하고도 제각각인 어쨌거나 생의 터전에 재개발이라는 사건이 닥치자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떠나지는 않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방인처럼 떠돌던 내가 이곳에 좀더 깊숙이 들어가게 된 계기는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이들을 만나고부터다. 스스로 컴맹이라는 이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직접 공들여 타자로 친 “재개발에 대한 성노동자, 현관(호객인), 업주들의 이주 대책논의”라는 제목의 알림장을 만들어 가게마다 돌렸다고 한다. 그렇게 함께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모였다.
현장에 깊이 들어가면 오히려 판단이라는 걸 하기 어렵다. 기존에 알던 것들이 희미해지기도, 선명해지기도 한다. 일단은 내가 선명하게 느낀 것만 말하고 싶다. 재개발은 힘든 사람을 더 힘들게 몰아간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존재와 삶을 존중받고 싶어 한다는 것. 어느 날 이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을 자꾸 벼랑 끝으로 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나는 이 말의 절실함까지는 느끼지 못한다. 모르니까, 그러니까 판단하지 않고 가만히 더 듣고 머무르는 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용역이 온 날, 그날은 고양이들도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일부 구역에 펜스를 치기 위해 새벽부터 용역들이 골목을 막고 스크럼을 짜고 있었다. 사람들이 펜스를 못 치게 막으려고 하자 “절대 밀리면 안돼! 버텨!”라는 소리가 들렸다. ‘××용역 ○○○’ 명찰을 단 이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버티고 있었다. 애쓰는 용역의 얼굴을 보는 게 불편했다. 결국 펜스를 치는 건 막지 못하고 사람들은 구청으로 달려갔다. 나도 카메라를 들고 따라갔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쳤다. “철거민 투쟁 정당하다. 생존권을 보장하라.”카메라를 들고 집회 현장을 찍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 귀에 구호 소리가 점점 잦아들면서 머릿속에는 홀연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철거민, 생존권이라는 말이 날카롭게 들리지 않지? 내가 이 말에 무뎌진 건가? 십몇년 전만 해도 참 심각하게 다가오던 말이었다. 쫓겨나는 철거민에 관한 다큐멘터리들을 보며 화가 치민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이 말에 많이 무뎌진 것 같다. 이 생각이 들자, 오히려 정신이 들었다. “철거민 투쟁 정당하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사실 너무 절박한 구호잖아. 벼랑 끝에 있는 말들이 아닌가. 곳곳에서 재개발을 한다. 내가 사는 서울만 해도 툭하면 재개발 선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린다. 다들 건물을 갖고 있으면서 그걸로 돈을 버는 게 노골적이든 암묵적으로든 행복한 일이라 여긴다. 그럴수록 철거민, 생존권이라는 말은 심각하게 들리지 않게 된다. 세상은 더 나빠진 걸까. 이주대책위 위원장이 집회에서 읽은 발언문을 옮겨본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다들 알 겁니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우리는 갈 곳이 없다는 막막한 생각에 태어나 처음으로 원형탈모가 두번이나 생겼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구청은 짐작도 못할 겁니다. … 밑바닥 생활을 하다 보니 더이상 내려갈 곳도 올라갈 희망마저 사라졌으니까요.”최근 고양이 ‘돼지’가 로드킬로 세상을 떠났다. 돼지가 살던 곳은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은 무너지고 없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늘 앉아 있던 돼지가 많이 그립다. 돼지가 사고를 당한 도로는 앞으로 재개발 지역의 고양이들이 다른 곳으로 넘어갈 때 건너야만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