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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로스] ‘이야기하기’의 욕구 - EP 《이야기 보따리》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
정재현 사진 최성열 2025-01-23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은 이야기꾼의 자질을 타고났다. 우선 그는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자기만의 음색과 창법의 소유자다. 그의 음성에 홀린 청자는 온 신경을 사로잡는 목소리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안예은의 목소리는 신분제, 구중궁궐의 암투와 모략, 쇠락한 국운과 금단의 사랑 등 혹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각기 한수를 뽐내는 역사극에 특히 자주 활용됐다. 홍길동, 장녹수, 광해군, 평강과 온달.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운명을 호소하는 서사에 구성진 안예은의 목소리가 결합하자 이들의 인생은 막강한 매혹을 입었고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당겼다. 안예은의 음악은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로부터 왔다. 영국의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호주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프랑스의 소설 <레 미제라블>과 한국의 수많은 구전설화는 안예은에게 다가와 자기도 새 이야기를 입고 싶다며 아우성쳤다. 또 안예은의 음악은 수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한국의 수많은 미취학 어린이들은 <문어의 꿈>에 열광했고, 예비 신부를 친구로 둔 수많은 여성들은 진심어린 축하를 <교복에서 부케까지>로 대신했다. 안예은이 이번엔 작정하고 이야기꾼으로 분해 EP 《이야기 보따리》를 발매했다. 그는 각 작품의 근원을 묻는 질문에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의도하진 않았지만” 등의 전제로 운을 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의식하지 않아도 어떤 이야기가 청중을 사로잡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의 호객 행위였다.

- 싱글로 발매한 두곡을 포함해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 모음집’ 컨셉의 EP 《이야기 보따리》를 발매했다. 어떻게 지금과 같은 꼴을 갖추게 되었나.

애초 11월이 아닌 봄에 이 앨범을 낼 계획이었고, 당시엔 현재 타이틀곡인 <잉어왕>이 없었다. 흔히 안예은 하면 떠올리는 강렬한 색채의 음악이나 사극풍 발라드보다 담담하고 부드러운 노래로 음반을 채우려는 게 기획 의도이자 도전 과제였다. 그런데 <잉어왕>을 제외한 4곡을 들은 소속사 대표님이 “노래가 좋은데 노래만 좋다”는 피드백을 건네셨다. 비디오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노래가 적다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워낙 영상을 통한 홍보가 대두되는 시점이라 대표님의 의견에 충분히 동감했다. 그래서 처음엔 영상화하기 용이한 장치로서 <잉어왕>을 이용했다. 보통 타이틀곡은 2, 3번째 트랙에 배치하는데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의 결기를 담아 <잉어왕>을 첫 번째 트랙에 배치했다.

-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스토리텔러로서 수많은 곡의 이야기를 지을 때와 아예 이야기꾼을 노래의 화자로 상정해 <잉어왕>을 만들 때 사용하는 기제가 다르던가.

<잉어왕>은 이야기꾼 자체가 곡의 주체가 되어야 앨범과 연관성을 지을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해 만든 곡이다. 최근 음악하는 동료들과 이야기하던 중,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지녔고 다만 그 욕구의 출력 방식이 음악인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 <>에 이어 <잉어왕>의 뮤직비디오와 음악 방송에서 댄스를 소화했다.

<>보다 <잉어왕>의 안무가 소화하기 훨씬 어려웠다. <>에 비해 <잉어왕>이 템포도 빠르고 동작도 많아 우선 숨을 쉴 구간이 없었다. 무대마다 노래 중반쯤 숨 가빠하는 나를 가여워하는 팬들이 많은데, 춤은 잘 못 추니 노래라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정말 AR(반주에 가수의 목소리까지 녹음된 음원.-편집자)에 최소한의 목소리만 깔고 라이브를 밀어붙였는데 오산이었다. (웃음)

- 수록곡 중 <이내>에 큰 애착을 느낀다고 들었다.

처음엔 <이내>가 타이틀곡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담담하고 부드러운 노래, 카페에서도 흔쾌히 틀 법한 노래를 쓰자는 목표로 열심히 만든 곡이다. 감사하게도 그간 자주 만든 사극 발라드는 이제 마음을 먹고 발매하고자 하면 언제든 발표할 수 있는 체계가 잡혔다. 그런데 <이내>는 완전 새로운 노래다 보니 좀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들 수밖에 없었다.

- <그믐달>은 <달 그림자> <윤무> <열 달 아흐레> 등 안예은의 가사에 일관되게 등장한 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곡이다. 달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차용하는 방식이 궁금한데.

내 음악에 달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인지 정도는 하지만 실상 이를 의식하고 곡을 쓴 적은 없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달, 별, 나아가 우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애용할 수밖에 없는 자연물이다. 초승달보다는 그믐달이 마음에 들었다. 보름달은 뜰 때마다 뉴스에도 보도되고 사람들도 소원을 비는 등 사랑을 받는데 이외의 달은 그만큼의 주목은 못 받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만든 곡이다.

한글로 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 국악을 공부한 적이 없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안예은에게 국악 전공 여부를 묻는다. ‘사극풍’, ‘한국적’이라는 수식도 곧잘 붙고.

실제 국악 전문가들에게 “전에 국악 하셨죠?”라며 확신에 찬 의심을 받은 경우도 정말 많다. 아마 내가 노래할 때 사용하는 벤딩이 판소리와 비슷하고, 작곡할 때 쓰는 음의 도약이 국악의 것과 유사해서 그런 듯하다. 지금 당장 판소리를 배울 순 없는 노릇이지만 전통문화나 민속에 관해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한다. 호러송을 만들기 위해 한국의 설화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일 외엔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 스트리밍사이트나 동영상 플랫폼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삶과 인생에 대해 통달한 느낌의 가사”라는 반응이 많다. 달관적이고 초월적인 안예은의 언어가 전통시의 정서와 부합해 국악과 연관 짓는 반응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상사화>를 발매했을 때 26살이었다. 그때도 “곡 만든 사람이 최소 마흔은 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내가 삶에 통달했을 리가 없지. 다만 자연인 안예은의 모습이 작품에 반영된 걸 수도 있다. 부모님에 의하면 내가 어릴 때부터 미련이 없는 어린이였다고 한다. 원하는 물건을 사달라고 요구하다가도 가질 수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되면 바로 포기하는 어린이였다던데. (웃음)

- 고루한 연결이지만 우리말로만 이루어진 가사를 자주 쓰는 점도 한국적이다. 한 방송에서 태연의 <사계>를 커버하거나 콘서트에서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를 커버할 땐 외래어와 영어 가사를 전부 한글로 번안해 불렀다.

처음 밝히는 이야기인데 팝송이나 영어 가사를 한글로 바꿔 부르는 데엔 뚜렷한 계기가 있다. <K팝스타> 시즌5 결승전 미션이 상대와 서로의 자작곡을 바꿔 부르기였다. 우승한 CHAI는 미국 교포라 가사가 전부 영어였고 내 노래의 가사는 전부 한글이라 서로에게 만만치 않은 미션이었다. 결승 며칠 전 심사위원이었던 유희열 선생님이 CHAI와 나를 코칭해주었는데, 내 노래를 들으시더니 지금 영어 미션곡에 아무 한글 가사나 붙여서 다시 불러보라고 하셨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처럼 원의와 하등 안 맞는 말을 붙여 노래했다. 선생님이 한글로 노래를 불렀을 때 내 보컬 톤이 매력이 산다며 결승전에서 가사를 모두 번역해 부르라고 하시더라. 내가 지닌 소리의 특색이 어떤 언어와 결합했을 때 극대화되는지를 분명히 알게 된 날이었다. 또 다른 계기는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장기하와 얼굴들이 정규 1집을 냈는데, 그해에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라이브 무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가사에 한국어만 쓰는 건 ‘간지’가 안 난다고 생각했거든. 나의 멍청한 생각이 깨진 이후 영어 쓰기를 지금껏 지양하고 있다.

- ‘음악만으로 공포를 유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해 <능소화>를 시작으로 <창귀> <> <홍련> <가위>까지 매 여름 연례행사로 호러송을 발매 중이다. 청각이라는 공통분모하에 매년 다른 음률, 설화를 동원하며 노래를 만드는 과정을 요약해 들려준다면.

시리즈로 갈 생각은 없었다. 2020년 능소화에 관한 설화가 재밌어서 노래를 만들었고 나뿐만 아니라 편곡을 도맡는 친구들이 “이건 누나가 시작했기 때문에 계속해야 해”라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2021년 <창귀>까지 만들었다. 2022년부턴 고민이 컸다. 당시 호시노 겐이 공포영화 <큐브>의 음악을 만들었는데, 무서운 노래를 만들겠다며 공포의 요소를 노래에 최대로 집어넣은 나와 달리 그는 정말 멋있는 ‘음악’을 했더라. 공포에 관한 좁은 시야를 벗어나자는 마음으로 <>는 신나는 비트로 구상했다. <>와 <홍련>은 대중에게 낯선 능소화 설화, 창귀 설화가 아닌 한국인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공포 설화를 재해석해 만든 곡이기도 하다. 크게 두 시기가 지난 이후 또 한번 고민이 찾아왔다. 내가 매번 유사한 공포의 근원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가는 것만 같았다. <>도 <홍련>도 여성, 노인, 어린이 등 억압적 사회 내에서 탄압받는 사회적 소수자 계층이 귀신이 돼 체제를 전복하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지난해에 발매한 <가위>는 아예 원초적인 공포를 촉발하는 사물을 소재로 했다.

- 올해에도 안예은표 호러송을 들을 수 있나.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5년간 생각에 세번의 분기점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또 다른 숙제를 풀어야 한다. 공포는 자연히 죽음의 정념과 직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귀신의 이야기, 정확히는 귀신이 품은 한의 원인이 누군가에겐 폭력으로 다가갈 수도 있겠더라. 내가 사고로 죽은 귀신을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자. 이때 사고로 소중한 이를 잃은 분들에게 이 노래가 어떻게 다가갈지를 생각하면 조심스러워진다. 예술의 미명 아래 불특정 다수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진 않다.

- 안예은식 스토리텔링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뮤직비디오다. 음악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가 비주얼로 새로 구현될 때만 전할 수 있는 감상을 비디오아트로서 못 박으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특히 <KAKOTOPIA>와 같은 곡은 음원만 들었을 때와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았을 때 느낌이 전혀 다르다. 뮤직비디오 회의를 할 때 스태프들과 어떤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치나.

곡 쓰는 일 이외엔 영상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 뮤직비디오의 연출자에게 곡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상세하게 전한다. 몇줄 안되는 가사 사이의 행간까지 모두 살려 산문으로 풀어 전한다. <KAKOTOPIA>는 혁명을 위한 ‘빨간 맛’ 노래라 진격과 전진의 감각이 중요한 노래라는 점을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 때는 아예 축시, 인시, 묘시 등 십이시에 맞춰 쥐들의 행적을 정리한 시놉시스를 썼다. 근래 나온 <잉어왕>의 뮤직비디오는 아예 레퍼런스가 되면 좋을 법한 자료를 모아 PPT를 제작했다. 영화 <왕의 남자>의 마당놀이 장면이나 영화 <전우치>의 여러 비주얼을 참고해달라는 식이었다.

상상으로부터 노래를 짓는 사람

- 2022년 발간한 에세이집 <안 일한 하루>엔 세간의 기대와 달리 영감 없이도 노래는 만들 수 있고, 특히 자신은 상상으로부터 이야기의 가짓수를 펼쳐가는 방식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한데 직접적인 영감이 아니더라도 안예은의 노래에 영향을 준 영화, 만화, 게임은 분명히 있다.

청소년기부터 취향은 유구했다. 대체로 음습하고 찝찝한 작품을 좋아한다. 소설의 장르로 치자면 고딕 호러를 가장 좋아한다. 만화로 치자면 이토 준지의 작품과 여러 논란이 있지만 <진격의 거인>을 좋아한다. <진격의 거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작품의 전반을 지지하는 분파와 후반을 지지하는 분파로 나뉜다. 나는 후자다. 거인의 정체가 밝혀져 작중 인물들이 고통받는 파트가 너무 좋다. 영화로 치자면 얼마 전 <서브스턴스>에 침 흘리며 열광했다. 이전까지 가장 좋아한 호러는 <유전>이었는데 그 자리를 <악마와의 토크쇼>와 <서브스턴스>가 위협 중이다. A24의 영화를 대부분 좋아하고, 찬란과 그린나래미디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웃음)

- 영화음악을 만들고 싶은 꿈은 없나. 뮤지컬 <유진과 유진>의 전 넘버를 작곡한 적은 있는데.

왜 없겠나. 장르를 불문하고 이야기가 있는 곳에 음악을 붙이는 작업은 언제나 신이 난다. 그래서 내 음악에도 이야기를 먼저 짓고 음률을 가져다 붙이는지도 모른다. 이미 완성된 이야기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내가 이야기를 새로 창작하지 않아도 된다. 가지고 놀 장난감이 구비된 것과 다름없으니, 영화든 만화든 게임이든 가리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

- <K팝스타> 시즌5로 처음 얼굴을 알린 지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이 프로그램이 무엇을 남겼나.

음악을 그만두려다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참가한 서바이벌에서 준우승을 했으니 엄청난 전환점이었다. 인생의 가장 큰 축이 세워진 느낌이다. 9개월 동안 힘든 날이 없진 않았을 텐데, 추억 보정이 된 탓인지 이젠 전부 미화됐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그 프로그램을 통해 마감 기한을 잘 지키는 버릇을 들일 수 있었다. 일정 분량의 노래를 매번 제출해야 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도 하루에 1절만이라도 써 5곡을 9개월간 꾸준히 공장처럼 납품했다.

- 안 그래도 <안 일한 하루>의 편집자가 당신을 빠듯한 일정에도 마감을 준수하는 성실한 필자라고 회상했다.

약속에 관해선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더군다나 원고 마감은 함께 공동의 산물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일의 영역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키려 한다. 데드라인 전에 마감을 마치는 편이다.

- 늘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하며 자기소개한다. 싱어의 자질과 송라이팅의 자질이 같은 근원을 지녔다고 보나.

뮤지션마다 천차만별의 답을 내놓겠지만 난 다르다. 입시를 볼 때 작곡과의 수험생 대기실은 조~용하다. 기껏해야 책상이 건반인 양 손가락을 두드리는 소리 정도다. 그런데 보컬과의 수험생 대기실은 ‘나를 봐. 이게 나의 무대야’라는 식의 소리로 꽉 차 있다더라. 작곡과에 다닐 땐 보컬 전공자와 나는 성향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처음 데뷔했을 때만 해도 싱어송라이터라는 호가 과분해서 그냥 “노래하는 안예은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런데 소개가 기니까 줄여야겠더라. (웃음) 도저히 “‘가수’ 안예은입니다”는 입이 안 떨어졌다. 싱어송라이터는 내가 추구해온 길과 닿아 있고,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안예은은 곡을 쓰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전할 수 있다며 스스로와 어찌저찌 합의를 봤다. 내 노래를 무대에서 직접 부르고 있지만 종종 싱어보다는 송라이터로 사는 시간이 더 좋다는 걸 절감한다.

안예은(진짜임)

X가 되어버린 옛 트위터. 하지만 이 구간만큼은 플랫폼의 옛 이름을 써야 한다. 안예은은 트위터를 활발하게 활용하는 트위터리안이다. “한 팬이 ‘안예은은 오타쿠라 트위터를 하다가 어쩌다 보니 데뷔까지 한 케이스’라고 말했는데, 정확하다! 데뷔 이전부터 트위터 세상에서 놀다 조금씩 얼굴과 이름이 알려졌고 덕분에 수많은 ‘트친’들이 곤욕을 겪었다. ‘님 안예은과 왜 아는 사이임?’ 같은 말도 많이 듣고. (웃음) 다들 독서모임, 영화모임 등을 둘러대다 이젠 트친이라고 친분을 소개한다.” 안예은은 자신의 X 계정에서 꾸준히 페미니즘을 비롯한 소수자 인권 증진에 목소리를 높이고, 한해 동안 읽은 여성 작가의 작품 리스트를 꾸준히 업로드하거나 기부 사실을 꾸준히 인증한다. SNS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실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이어 안예은은 일침도 잊지 않는다. “누군가가 트위터를 인수해 많은 기능을 바꿔놓은 이후 정말 화가 났다. 그렇게 돈이 많으면 플랫폼 하나를 새로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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