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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경의 TVIEW] 옥씨부인전
오수경 2024-12-20

구더기처럼 살라고 주인이 붙인 이름 구덕(임지연). 그러나 구덕은 “맞아 죽거나 굶어 죽지 않고 곱게 늙어 죽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비를 개·돼지 취급하는 주인을 응징하고 도망친다. ‘도망 노비’가 된 구덕은 청나라에서 돌아온 양반 가문의 딸 옥태영(손나은)을 만나 새로운 세상에 눈뜬다. 태영은 구덕을 ‘노비’가 아닌 ‘동무’로 대한 첫 번째 사람이자 외지부(변호사)가 되어 약자들을 대변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화적 떼의 공격을 받아 태영 일행이 몰살당하고, 홀로 살아남은 구덕은 태영의 이름으로 살게 된다. <옥씨부인전>은 신분제가 견고한 조선시대에서 구덕의 신분을 전복시킴으로써 약자를 착취하고 계급화된 현대사회를 상기시킨다. 또한 노비 구덕과 기생의 몸에서 난 예인 천승휘(추영우)와 성소수자 등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 차별당하며 살아야 하는 인물들을 통해 동시대적 질문 앞에 서게 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이 남녀노소, 신분과 상관없이 귀하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구덕은 외지부가 된다. 그런 구덕과 혼인하게 된 성윤겸(추영우)은 “여인을 품을 수 없는” 성소수자로서 ‘애심단’ 단주로 활동한다. 애심단은 성소수자 아이들을 구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무술 훈련을 시키는 비밀 결사체다. 그런 애심단의 정체가 발각되어 위기에 처하자 윤겸은 구덕에게 도움을 청하며 이렇게 묻는다. “부인이 외지부라면 이럴 때 날 말릴 게 아니라 죄 없이 잡혀간 약자를 도와야 되는 거 아닙니까? 부인이 생각한 약자는 노비 한정입니까?” 윤겸의 이 질문은 차별금지법이 “나중에”로 밀리는 상황에서 “귀하고 평등”한 존재의 범위를 고민하게 한다. 이 드라마의 부제를 ‘구덕의 개·돼지 거부 선언’ 혹은 ‘조선판 인권선언’으로 붙여보면 어떨까?

check point

개연성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놀랍게도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이야기다. 1607년 선조 때 발생한 ‘가짜 남편 사건’을 다룬 이항복의 소설 <유연전>과 관련 사료를 연구한 한문학자 강명관의 <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의 주요 컨셉을 빌려 대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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