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봉투의 모양을 보는 게 좋다. 빈틈없이 내용물로 꽉 채워져 야무지게 묶인 봉투의 모양, 대충 묶여 있어 오가는 사람마다 이 쓰레기 저 쓰레기 집어넣어 흐트러진 봉투의 모양, 밑단이 툭 터지며 액체 섞인 음식물을 울컥 뱉어낸 음식물 쓰레기봉투의 모양…. 특히 전봇대에 기댄 쓰레기봉투 곁으로 줄줄이 다른 봉투들이 기대고 선 모양을 좋아한다. 온몸의 체중을 상대에게 실은 봉투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지도 않고 모양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쩐지 위로를 받는다.
내 외장하드에 담긴 오래된 사진 폴더 중 하나는 ‘쓰레기봉투와 목장갑’이다. 상경하고 흥청망청 놀다 보니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도로변이나 인적 없는 골목에는 낮에는 없던 쓰레기봉투들이 많았고, 나는 반사적으로 마음에 드는 쓰레기봉투의 모양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목장갑에 대한 애정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 때였나, 어느 날 등교하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바닥에 떨어진 목장갑 하나를 보았다. 엄지손가락이 접혀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은 엄지와 검지가 접혀 있는 게 아닌가. 그다음 날에는 중지가, 놀랍게도 그다음 날은 약지까지 접혀 있었다. 어린 마음에 우연과 운명을 잘 구분하지 못했던 나는 매일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숫자를 세는 목장갑의 모양에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주위 인간들의 행동이나 표정뿐 아니라, 그들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사물의 매력에도 빠져들었다. 여전히 그런 것들, 사물이라고 할 수도 있고 풍경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냥 뭉뚱그려 인간 외 무엇들에 내 감각은 쉽게 홀린다. 작업 현장에서도 그렇다. 인간의 표정만큼 그가 서 있는 배경에, 인간의 행동만큼 그가 쥐고 있는 물건에 끌린다.
요즘 기록 중인 성매매 집결지에 오가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재개발 때문이다. 창문에 까만 시트를 붙여두어서 거주 중인 사람들마저 실내로 들어가면 안에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그나마 인적을 드러내는 게 쓰레기봉투다. 특히 주말이 지나고 난 월요일이면 여기저기 쓰레기봉투들이 나와 있다. 업소마다 쓰레기봉투의 모양이 다르고 그걸 보는 재미가 있다. 최근에는 그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몇년 전부터 드나드는 이 골목에서 나는 곧바로 카메라를 들 수가 없었다. 사회의 편견과 낙인으로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성매매 관련 종사자들은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피한다. 너무 많이 찍혀서 질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몰래 찍히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예리하게 간파한다. 당사자들이 그런 불만을 말하기도 전에 나는 직감과 학습으로 조심하고 있다. 이런 조심스러움과 인간 외의 것들에 대한 내 관심이 합쳐져서 내 기록물의 대부분은 휴대폰으로 찍은 인간 아닌 무엇들의 모양이다. 인간들 눈길을 피해, 그러니까 인간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빠르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을 찍었다. 기동성이 좋은 휴대폰이 가장 좋았다. 인간의 몸짓과 표정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할 수도 있지만 한번도 보수한 적이 없는 듯한 조각조각 균열난 바닥으로도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한없이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동네에서 내 시선을 끈 것들의 목록을.
물티슈나 헛개차라 적힌 택배물들, ‘○○○ 아가씨’라 쓰인 빈 상자, 이 빠진 빗자루, 업소의 이름이 쓰인 음식물 쓰레기통, 빗물이 하수관으로 흘러내려가는 바닥의 구멍들, 고양이 밥그릇, 빨간 천막 위를 걸어 다니는 고양이의 검은 발자국, 그 위로 떨어진 오동나무의 커다란 잎들, 낡은 건물의 틈 사이로 자란 풀들, 업소를 개시할 시간이면 나와 있는 막걸리 한잔, 다 타버린 쑥, 보이지 않는 나쁜 기운, 멀리서 들리는 웃음소리, 작은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밥 짓는 냄새, 열어둔 문 사이로 보이는 신문지 위의 고구마, 덜 씻긴 토 자국, 비둘기의 똥, 가장 많은 글귀는 ‘소변 금지’, 굴러다니는 하얀 양말 한짝, 20년 전의 나이트클럽 포스터, 터진 채 굴러다니는 방울토마토, 빨대 꽂힌 빈 요구르트병, ‘발기부전’이라 적힌 담뱃갑, 대출을 권하는 명함, ‘천국 가는 법’이 적힌 전단지….
“오동나무가 물에 약해요. 물이 없으면 못 자라고, 너무 많아도 죽어요. 그래서 오동나무는 사람 사는 인가 근처에 많대요. 내리는 비와 땅 밑에서 흐르는 물이 있는 곳이요. 오동나무 저 나무는 제가 되게 좋아하거든요.”
이 동네에서 좋아하는 걸 하나 꼽아달라는 말에 누군가는 오동나무라고 했다. 성매매 집결지와 바깥 세계를 나누는 담벼락을 따라 자라는 나무다. 오동나무는 이곳 사람들과 같은 환경에서 지내며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가려주고, 햇볕도 막아준다. 같은 편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동네로 들어오는 입구에 서 있던 가장 큰 오동나무는 인간에 의해 잘린 적이 있다. 큰 나무가 있으면 기운이 안 좋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게 잘렸다가 귀퉁이에서 줄기 하나가 또 자랐단다. 이 얘기를 들으며 지긋지긋한데 쉽사리 떨치기 어려운 관계를, 욕설과 주먹으로 싸우다가도 다음날이면 그래도 같은 바닥에 있는 너밖에 없다 싶은 마음과 관계들을 떠올렸다. 차에 밟힐 때마다 손가락이 하나씩 접히며 점점 횡단보도에 눌러붙던 어릴 적 그 목장갑처럼. 하지만 이제 저 오동나무도 완전히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저녁이다. 늦가을로 넘어가는 요즘은 오동나무 큰 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 폐업한 포장마차의 문 사이로 작은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나를 쳐다보던 고양이가 조심스럽게 나오더니 빠르게 오동나무 잎들 사이를 지나간다. 또 하나의 커다란 잎이 공중에서 좌우로 흔들리며 하강하다 어느 순간 툭 떨어진다. 문득 고유한 풍경 하나가 완전히 사라질 거라는 예감이 든다.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마음 가는 대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 지난 몇년, 내가 이 골목에 정이 참 많이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