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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로스] “이 앨범은 보편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 정규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발매한 브로콜리너마저 덕원, 잔디, 류지, 동혁
정재현 사진 백종헌 2024-11-14

<앵콜요청금지> <보편적인 노래> <졸업>…. 평범한 말과 음을 모아 비범한 음악을 만들어온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정규 앨범으로는 5년 만에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로 돌아왔다. 정식 발매 전부터 공연과 온라인 감상회를 열어 리스너들의 호응을 쌓아온 이번 앨범엔, 자신과 세상의 필패를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도모하기 위해 지금 노래하려는 자의 위로가 정겹게 서려 있다. 19년째 한 밴드에서 오래 호흡을 맞춰온 브로콜리너마저의 덕원과 류지, 객원 기타리스트로 함께하다 올해 밴드의 정식 멤버로 합류한 동혁이 <씨네21>을 브로콜리너마저의 작업실로 초대했다. 유자차 대신 커피를 마시며 들은 신보의 제작기를 전한다. 개인 사정상 인터뷰에 함께할 수 없었던 키보디스트 잔디는 부드러운 말이 가득한 편지로 답을 보내왔다.

- 지난 5월 앨범을 발매하기 전 미리 오프라인 음감회를 통해 관객들에게 4집의 미출시곡들을 라이브로 들려줬다. 신곡을 미리 공개한 계기가 궁금하다.

덕 원 신곡을 라이브로 연주할 때 좋은 영감이 생긴다. 1집의 곡들은 발매 전부터 클럽에서 라이브를 했던 곡이라 자연히 공연에서 체득한 포인트를 녹음에 반영할 수 있었고, 2집을 만들 때도 미리 듣기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기운을 받았다. 노래는 생각보다 확산 속도가 느리다. 특히 우리처럼 독립적인 방식으로 별다른 마케팅 없이 계속 음악만 하는 경우엔 우리의 외침이 보행속도보다 느리게 전달된다. 음악이 청자들에게 닿으려면 계속 연주를 하는 수밖에 없다. 더 많이, 더 재미있게, 더 다양하게, 더 오래 우리 음악을 선보이는 게 중요하다.

- 사전 라이브 경험이 이후 음반 녹음에 어떻게 작용하던가.

류 지 합주는 우리 넷이서 합을 맞추는 일이라 아무래도 노래의 흐름을 잡기 모호하다. 그런데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면 곡의 느낌과 분위기를 새로 어림잡을 수 있고 그 느낌을 음원과 앞으로의 연주에 반영할 수 있어서 좋다.

잔 디 이번 앨범에 수록된 연주는 음감회를 위해 이미 많은 연습을 집중해서 거친 후 녹음됐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관객들에게 라이브로 들려줄 수 있을 만큼 높은 밀도의 합주를 미리 거치고 나니 본녹음을 위한 작업이 섬세하게 이루어졌다.

- 이번 신보는 타이틀곡 표기가 스트리밍 사이트별로 각기 다르다.

덕 원 보통 타이틀곡이라고 하면 앨범 제목과 동일한 노래거나 소위 이 음반에서 가장 ‘미는 노래’다. 한두개의 고정된 타이틀곡이 있다면 홍보하긴 편할 테지. 그런데 노래 하나로 계속 프로모션을 하며 순위를 높이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게다가 특정 노래가 한 앨범을 상징하는 곡으로 등극하면 다른 노래들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앨범 전체가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판단하에 타이틀곡을 통일하지 않았다.

- 브로콜리너마저는 신곡을 공유할 때 데모 파일을 만들지 않고 직접 멤버들 앞에서 들려준다던데.

덕 원 개인적으로 노래는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이미지화할 때 가장 멋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음표로 옮기거나 녹음해 듣는 순간 내가 처음 상상한 근사함이 깎여나간다. 결국 음원이 아닌 상태에서 전달 가능한 느낌을 포착, 공유하기 위해서는 원곡자가 직접 들려주는 방식이 가장 적정하다. 보편적인 방식은 아니라서, 만약 브로콜리너마저만의 개성이 음악에서 도출된다면 이런 작업 과정에서 오지 않나 싶다.

동 혁 처음엔 이같은 작업이 낯설기도 했다. 또 어떻게 노래를 만든 사람이 생각해둔 그림에 맞춰 한번에 연주가 가능한지 궁금했다. 멤버로 합류해 정규 앨범을 함께 만들 땐 원곡자의 상상 영역에 각자의 색깔을 가미하며 현실로 가져오는 작업에 돌입했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부분, 무형의 요소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라 초반엔 헤맸다. 내가 어디까지 주도해 기타 연주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적었다. 같이 만들어가도 된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되나 싶고. (웃음)

덕 원 브로콜리너마저는 긴 시간 포 리듬(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을 갖춘 밴드이다 보니 각자의 파트에 관해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나머지 세 멤버가 모두 반대하지 않는 이상 각자의 연주를 존중하는 쪽이고.

류 지 동혁씨가 처음엔 자신이 어디까지 연주해도 될지 주저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 없이 본인 판단하에 맞는 연주를 했으면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하고 싶은 대로!”라고 답하는 거다.

- 이번 앨범의 가사에 가장 주요하게 쓰인 단어가 보조형용사 ‘싶다’이다.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 <되고 싶었어요> <다정한 말>까지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마음을 품었지만 좌절한 사람의 말이 거듭 반복된다. 언뜻 염세와 비관에 매몰된 듯 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기억을 노래하려는 사람의 낙관이 느껴진다.

덕 원 이 앨범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는, 보편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 거창한 대의 아래 삶을 살기보다 닥치는 대로 살아가지 않나. 그렇게 살다 보면 욕망의 크기가 시시각각 변하고, 내가 얼마만큼 무얼 바라고 욕망해도 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여기까지 욕망을 충족하는 건 내 욕심 같다가도, 욕심을 더 내는 게 나를 위한 일처럼 여기기도 한다. 밴드 활동을 할 때도 그렇다. 뭘 더 해보려다가도 어느새 힘 빼고 가늘게 가는 방법을 고민한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가 딱 그 중간 지점에 있다. 비상하다가도 실패를 수용하고, 다 끝난 것 같다고 절망하다가도 지나온 부질없는 시간이 아쉽고 또 그립다. 그 가운데에 위치한 마음을 통해 리스너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노래로 들렸으면 좋겠다.

- 그런 마음이 가장 잘 묻어난 노래가 <윙>이다. 승리와 패배, 희망을 품다가 지치고, 날아가려다 내려앉는 등 가사가 쓰인 모든 언어가 정과 반의 경계에 있다.

덕 원 벌새를 모티브로 만든 노래다. 벌새가 공중에 떠 있기 위한 날갯짓은 중력과의 끝없는 싸움이다. 승리와 패배가 반복돼 발생한 결과다. 우리의 평범한 삶도 겉보기와 달리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리를 버티는 일도 멈춰 선 게 아니라 무거운 삶과 계속 싸우는 증거란 걸 노래하고 싶었다. 그 순간들이 모여 결국 폭발의 순간을 만들 것이니까. <윙>은 멜로디의 흐름에 걸맞은 큰 목소리가 필요할 것 같았다. 멤버들끼리 다 함께 여러 번 부르는 방향을 고민하다 관객의 목소리를 받자는 생각이 들어 발매 전 관객들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류 지 아직은 관객들이 <윙> 떼창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떼창이 크게 안 들렸다.

동 혁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운 떼창을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덕 원 동혁씨가 연습해야겠어. 기타 연주 끝나고 잠깐 쉴 때 앞에서 호응을 유도해봐. 혹시 MBTI E 유형들이 공연을 많이 보러 오면 어떨까?

- <풍등>에도 비상의 정념이 가득하다. 전주부터 박동하는 드럼과 간주부의 건반 연주가 특히 이 정서를 고양한다.

류 지 음악감상회 때까지만 해도 전주의 스네어드럼 롤이 없었다. 본래 빈 파트였는데 녹음 직전에 생겼다.

잔 디 <풍등>은 이렇게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는 곡이 그간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미지가 선명한 음악이었다. 그래서 편곡 진행 과정의 30~40%까진 모두가 수월하게 접근했다. 정작 80~90%에 도달해 끓는 데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확정하며 연주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그런 흐름이 느껴지는 연주다. 피아노 톤이나 공간감이 느껴지는 리드 연주, 멜로트론 사운드가 특히 그렇다.

- 브로콜리너마저는 음악과 공연 이외의 업무, 홍보·마케팅, 기획, 영업, 경영 관리 등을 멤버 모두가 나누어 분담한다. 그야말로 ‘인디펜던트 밴드’ 방식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음악을 유통, 지속하기 위해 해야 하는 여러 업무가 역으로 음악에 끼치는 영향이 있나.

덕 원 나의 경우 창작자로서의 자아와 전업 인디밴드로서의 자아가 공존한다. 이럴 거면 투잡을 해도 괜찮겠다 싶은데(웃음) 대신 이 방식이 밴드를 오래 유지 가능한 비결이기도 하다. 일단 실무를 알기 때문에 여러 리스크에 직접 대응할 수 있다. 어차피 슈퍼스타가 아니라면 뮤지션은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 그 자기만의 길이 다양해지길 희망한다.

류 지 늘 별일을 다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눈앞에 닥친 일을 쳐내는 방식으로 계속 업무를 하는데, 음악을 하러 밴드에 들어와서 정말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잔 디 브로콜리너마저의 멤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병원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고 학교에서 행정 업무도 해보았다. 공연을 하고 음반을 발매하는 게 브로콜리너마저가 하는 주요 업무처럼 비치지만 사실 일이라는 게 단일한 업무만 수행한다고 해서 결과가 쉬이 나오는 건 아니지 않나. 결국 직장 생활을 하듯 브로콜리너마저의 멤버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멤버들과 음악 외의 모든 과정을 모두 함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우리가 직접 홍보하고 제작하는 유무형의 결과물이니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다. 여기서 출발하는 마인드가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 공연, 굿즈의 질에 총체적으로 반영된다고 믿는다.

동 혁 최근 홍대에서 신보의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며 무척 고단했다. 그러다 팝업스토어 중간에 이후에 있을 공연의 리허설을 병행했다.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우리끼리 “역시 음악하는 게 제일 편하고 재밌다”는 이야길 나누었다. 음악 외의 업무를 하다보면 음악을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 이번 앨범을 만들며 재생플라스틱을 사용한 키링 제작, 팝업스토어에서 사용한 현수막을 연말 공연에 업사이클링하는 계획 발표 등 환경문제를 개선하려 노력하는 뮤지션의 모습을 보였다.

잔 디 계속해서 유형의 산물을 만들어야 하는 창작자들에겐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쉽게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멤버들 모두 텀블러 사용을 생활화한다. 리유저블컵을 제작하지만 우리는 후드 티셔츠도 굿즈로 만들어 판매 중이다. 새 옷을 제작하는 일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리 후드 정말 따뜻하고 좋다. (웃음) 신보의 주제를 변용해 말해볼까. 환경문제 또한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실패를 인식하고 수용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에 “내 청춘에 당신들의 음악이 있다”며 화답하는 이들이 많다. 20년차를 밴드지만 새로 유입되는 팬들도 많다. 이번 앨범을 소개하며 줄곧 ‘닳아가는 감각’을 노래한다고 했지만 브로콜리너마저는 여전히 흔들리고 방황하는 청춘의 마음을 노래한다. 계속해 청춘의 마음을 노래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덕 원 내가 하는 일에 의심을 거두면 마음은 편할 터다. 하지만 의심하고 고민할수록 스스로의 삶을 여과할 수 있고, 전하려는 메시지의 수명도 연장할 수 있다. 팀이 장수한다는 점도 우리의 무기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이 듣고 싶은데 이들이 정체되거나 사라지면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브로콜리너마저가 계속 살아 있으면서 우리의 음악이 하나의 흐름을 주기적으로 발생시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누군가가 예전 노래를 듣고 브로콜리너마저를 처음 찾았을 때, 우리가 약간 닳아 있대도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길 바란다.

잔 디 특히 4집을 낸 후 10대 팬들이 꽤 늘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포인트 안에서 우리 같은 중년 밴드를 좋아해주고 예전 곡들도 많이 찾아 듣더라. 반갑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청춘은 펄떡이는 생동감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와 같은 미래를 향한 고민이 수반되는 시기다. 감히 말하건대 이 고민을 중년이 됐다고 해서 놓아버리면 꼰대가 된다. 그래서 브로콜리너마저는 지금까지 청춘의 마음을 노래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