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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훈의 영화의 검은 구멍] 불안정, 모호함, 방향감각의 상실, 바닥을 잃어버린 시선이 비추는 공허한 세계

<그래비티>

수직의 세계를 구축한 영화의 시선은 바닥과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SF영화나 액션영화에서 비행하는 자, 낙하하는 자, 그리고 무중력상태로 우주공간에 떠 있는 자의 시선이 그러하다. 이외에도 CCTV, 인공위성, 드론과 같은 기계장치에 장착된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 불안정하고 모호한 시각성을 다룬 경우가 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시선들은 그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상작가이자 비평가인 히토 슈타이얼에 따르면, 군사, 감시, 엔터테인먼트 영역 등에서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감시의 일상화로 인해 서구의 재현 양식을 지배해온 선형 원근법의 체제는 수직 원근법의 체제로 대체되었다. 그는 시각문화의 재현 양식이 변화한 결과 방향감각의 상실, 새로운 시각성, 수직성의 지배가 나타났다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방향감각 상실은 안정적인 지평선의 상실에 일정 부분 기인한다. 지평선이 상실됨에 따라 근대성을 통틀어 주체와 객체, 시간과 공간 개념들을 위치지어온 안정적인 방향 인식 패러다임에서도 벗어난다.”

근거 없는 시선을 활용하는 영화들은 단일하고 절대적인 시선에 대한 오랜 신화를 무너뜨린다. 포스트-시네마의 연구자 중 하나인 셰인 덴슨은 동시대 미디어 환경에서 이미지의 생성과 처리의 중요성이 증대하면서 미디어 이용자의 감각적 비율이 재구성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는 주체와 객체의 상관관계를 고집하던 고전적인 영화 양식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새로운 이미지를 탈상관적 이미지(discorrelated images)라고 부른다. 관련해서 디지털 합성과 가상 카메라 기법을 적용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2013)의 오프닝 시퀀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시퀀스의 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우주 왕복선을 수리하고 있는 남자주인공의 얼굴을 화면 좌측에 위치하도록 비춘 다음 오른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면서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디지털 합성을 통해 컷의 구분 없이 모든 이미지가 매끄럽게 봉합된 그 장면이 지속되는 동안 최초 화면 좌측에 보였던 남자가 화면 우측에서 다시 등장한다. 만약 이 장면을 단일한 시점을 적용한 것으로 본다면, 남자주인공이 그 어떤 매개도 없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는 모순적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장면은 카메라의 시점과 위치가 불안정하여 관객을 지정된 시공간에 일관되게 자리하게 할 수 없는 탈상관적 이미지들로 구축된 경우로 볼 수 있다.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주체의 위치가 불안정한 근거 없는 시선에서 바라보는 자는 그 누구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두이기도 하다. 바라보는 자의 고정된 위치와 단일한 시점을 통해 구축된 과거의 신적인 시선은 전 지구적으로 일상화된 감시, 나노초 단위로 바뀌는 정보의 흐름, 소프트웨어와 알고리듬에 의한 이미지 생성에 기초한 새로운 신적인 시선으로 바뀌고 있다. 신적인 시선에 대한 계속된 숭배와 도전은 디지털로 코드화된 시각적 정보에 의해 완성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참고할 작품으로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는 7편에 해당하는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을 시작으로 ‘신의 눈’이라고 불리는 감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신의 눈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것을 해킹할 수 있으며, 카메라가 달린 모든 장치를 활용하여 목표물을 추적할 수 있는 장치이다. 그것은 이미지를 기록하거나 포착하지 않고 데이터를 시각화한다. 신의 눈을 욕망하는 자들은 이미지의 창작자가 아닌 조작자에 가깝다. 그들은 흡사 블랙박스 속의 진실을 모르면서 각종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작동시켜 원하는 데이터값을 얻어내는 미디어 이용자처럼 상상하는 것을 얻기 위해 버튼을 누른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신의 눈과 같이 세계를 원격으로 감시, 조작, 조정할 수 있는 기계장치를 활용하여 대결하는 영웅과 악당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다룬다.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2017)에서 사이버 테러 조직 사이퍼 일당이 핵무기 코드를 탈취하기 위해 뉴욕 도심의 자동차 수천대를 동시에 해킹하여 조작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이 시리즈는 드론, 자율주행 자동차, 해킹, 인공위성과 같은 소재를 활용하여 원격으로 기계장치를 조작하면서 세계를 하나의 이미지로 시각화하여 읽어내는 방식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힘의 대결에서 핵심적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대결에서 이미지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 모두 누군가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장치의 버튼을 누르는 손에 의해 결정된다. 현실을 납작하고 평평하게 눌러놓은 것 같은 스크린 속 이미지를 통해 세계가 가시화되고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세르는 기술적 장치가 생성한 이미지, 즉 기술적 이미지가 고도로 추상적이고 환영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역사는 극장이 되었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자동화된 기계장치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는 세계를 추상화함으로써 이미지에 대한 독해를 방해한다. 기계장치에 의해 투사된 이미지는 일시적으로 놀이의 감각을 전달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인간의 자율성과 세계의 구체성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계장치에 의해 매개된 시선에 약과 독으로 구분되는 양가성이 있음을 드러낸 작품 중 하나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을 언급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해킹 프로그램 이디스를 통해 운용되는 여러 대의 드론에서 동시에 투사된 빛이 만들어낸 홀로그램이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이 유산으로 남긴 이디스를 가짜 슈퍼히어로 미스테리오에게 넘긴다. 미스테리오는 이디스의 드론으로 만들어낸 홀로그램을 활용하여 스파이더맨을 속이는 것은 물론 가상의 악당을 제압하는 상황을 연출하여 일반 시민들도 속인다. 여기서 드론은 단순히 무인으로 비행하는 물체를 지칭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간의 시선을 초월하고, 압도하며, 지배하는 장치를 상징한다. 드론의 시선을 둘러싼 미스테리오와 스파이더맨의 대결은 기계를 조작하고 실행하는 자와 이미지를 해독하고 무력화하는 자로 압축할 수 있다. 그 대결은 스파이더맨이 드론이 만들어낸 환영의 빛을 뚫고 들어가 드론의 대열을 깨뜨리는 모습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스파이더맨의 승리로 끝나는 이 영화의 결말은 통쾌함 대신 씁쓸함을 남긴다. “사람들은 믿을 게 필요해. 지금은 뭐든 믿을 거야”라는 미스테리오의 마지막 말이 중심이 사라진 세계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잃어버린 시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플루세르의 말을 비틀어 말하자면, 이제 역사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공허한 극장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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