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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6호 [스페셜] 수 없는 기억들을 추억하며, 특별기획 프로그램 ‘고운 사람, 이선균’

2023년 12월, 이선균 배우가 생을 마감했다. 마약 의혹 보도가 나온 지 두달 만이었다. 경찰과 검찰 소환에 응하고 정밀 마약 검사에서 음성을 받는 등 성실히 조사를 받았지만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 무리한 수사와 선을 넘은 사생활 보도의 부담감을 크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제 더는 이선균의 신작 소식을 들을 수 없어도 40여 편의 영화와 10여 편의 드라마가 유산으로 남아 고인의 생전을 증언한다. 작품 안에서 캐릭터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동료와 팬들과 주변 사람들과 함께 동시대를 호흡했던 고운 사람으로서 이선균은 떠난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현재형의 배우로 스크린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운 사람’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고(故)이선균의 특별전을 마련하면서 붙인 타이틀이다. 이 표제가 주는 의미는 그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각별하다. 동료들에게 성실한 연기자였고, 팬들에게 친근한 배우였고, 주변에 좋은 사람으로 알려졌던 이선균을 기억하(자)는 최소한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배우

<나의 아저씨>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뮤지컬 <록키 호러 픽쳐쇼>와 TV 시트콤 <세친구>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이선균은 <서프라이즈>(2002)의 단역부터 유작 <행복의 나라>(2024)에 이르기까지 매년 두세 편의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다. <우리 선희>(2013)를 작업하고 나서 2014년 한 해만 영화 필모그래프를 공란으로 남겨두었는데 이마저도 10년 만에 출연한 연극 <러브 러브 러브>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연기를 쉼 없이 하고 있는데 늘 어렵 다. (중략) 같이 작업하고 싶은 분들의 작품이 연달아 들어오자, 고민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것으로 여기고 참여했다.” (<씨네21>, ‘좁디좁은 인간 연기하기’ )는 이선균의 <기생충>(2019) 당시의 말마따나 성실성만큼은 한국 영화계의 내로라하는 배우 중에서도 ‘탑 티어’ 급이었다. 오해는 마시길! 그가 배우로 높게 평가받는 이유가 연기의 질보다 출연한 영화의 수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려운 얘기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해 <Dr.브레인>(2021)의 뇌과학자 고세원 역에 이선균을 캐스팅했다는 김지운 감독은 그가 지닌 배우의 특출한 지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무수히 많은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를 해왔고 그때마다 평균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다. 설사 흥행은 안 됐어도 그의 연기가 영화를 망치거나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는 없었다.” (<씨네21>, ‘매화 엔딩은 강렬하게, 충격의 반전도 있다’ )며 한국 영화계가 왜 이선균을 필요로 했는지를 확인시켜 줬다. 그는 타고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도, 어린 나이에 주목받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지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의 지위를 즐기지도 않은 소위 ‘노력형’의 배우이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어떻게든 취하려 하기보다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이선균의 연기 철학은 텐트폴 영화에 처음 출연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2024)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능하다면 반복하지 않고 다양하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씨네21>, ‘장르적 쾌감도 현실 감도 잡는다’)

무경계의 캐릭터

<우리 선희>

이번 부산영화제 특별전 ‘고운 사람, 이선균’에서 상영하는 작품은 <행복의 나라> <기생충> <끝까지 간다>(2013) <우리 선희> <파주>(2009) 그리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총 여섯 편이다. 한예종 재학 당시 출연한 학생 영화와 단편까지 포함해 60편을 훌쩍 넘는 필모그래프를 고려하면 적은 편수일지 몰라도 출연한 작품의 성격과 캐릭터의 특징을 파악해 배우로서 지향한 바가 어떻게 대중의 호감을 샀는지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프로그램이다.

이선균이 뺑소니 사고 후 최악의 수만 선택하며 지옥행을 자처하는 <끝까지 간다>의 형사 고건수 역할을 수락한 이유는 김성훈 감독의 평가 때문이었 다. “코믹과 액션, 선과 악, 그 경계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배우, 그게 이선균 이었다는 감독님의 말이 믿음을 줬다.” (<씨네21>, ‘경계에서 끝까지 한숨에 달리다’ ) 이선균의 대표작을 논할 때면 세 손가락에 들어갈 만한 <끝까지 간다>의 고건수는 이선균의 필모그래프를 관통하는 ‘무경계’의 특징을 체화한 캐릭터다.

형사이면서 범죄를 저지르고, 범법자이면서 관객의 응원을 받는 등 선악을 종횡무진하는 캐릭터처럼 이선균은 드라마 <파스타>(2010)로 “봉골레 파스타 하나!” 대사를 유행시키고, <나의 아저씨>로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출연 매체의 구별을 두지 않았다. 사건이 중심에 놓이는 <기생충>과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심리 드라마로 푸는 <파주>에도 출연하며 장르의 성격에 연연하지 않았다. 또한, <끝까지 간다>의 고건수 반대편에서 사형 선고에도 원칙을 굽히지 않는 <행복한 나라>의 강직한 군인 박태주를 연기하며 극 중 인물의 배경에도 한계를 두지 않았다.

그런 맥락에서 이선균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다섯 편이나 출연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북한 유학생으로 출연했던 <밤과 낮>(2008), 단편 <첩첩산중>(2009), <옥희의 영화>(2009)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그리고 <우리 선희>까지, 기존에 출연했던 영화와는 다르게 꾸밈없는 모습과 일상적인 연기로 또 다른 배우의 면모를 어필했다. 홍상수 영화에서 그는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거나 괴로워하는 인물로 주로 연기했는데 거기에는 어딘가 순수한 소년의 면모가 어른거렸다.

앙상블의 팀 플레이어

<끝까지 간다>

“현장 분위기도 좋았고 촬영이 끝나고 모여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는 <행복의 나라>의 추창민 감독 역시 “소년 같은 면이 있던 배우였다” (<씨네21>,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은 물밑에서 움직이는 대중이다’ )고 이선균을 회고한다.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조정석은 부산영화제에서 열린 ‘스페셜 토크: 행복의 나라’의 행사에서 “스태프들이 다음 앵글을 잡기 위해서 준비할 때, 스몰토크로 아이스 브레이킹도 잘하고 잘 챙겨주었다”며 현장 안팎에서 동료와 호흡하기를 즐겼고 일일이 신경 써주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선균을 기억했다.

상대 배우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정평이 난 이선균은 그야말로팀 플레이어였다. 단독으로 나서기보다 ‘원 오브 어스 one of us’로 자신의 연기를 조율했던 이선균에게서 <나의 아저씨>의 박해영 작가는 성정이 요란하지 않은 박동훈을 보았다. “근원에 닿아 있다, 쓸쓸하겠다, 정도에서 시작했어요.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대사로 사건이 전개되 잖아요. 박동훈은 말이 별로 없어서 사건을 추진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그런데 주인공이고 매력적이어야” (<씨네21>, ‘배우가 꽃을 피우기에 그 꽃의 자양분을 대자는 마음으로’ )했다는 박해영 작가의 고민을 털어준 데에는 배우로, 인간으로 이선균이 가진 능력과 성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옥희의 영화> 속에서 옥희(정유미)는 구애를 퍼붓는 진구(이선균)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난 네가 착해서 좋아. 믿을 수가 있어.” 시나리오를 쓰기 전배우의 일상을 관찰하며 배우 개인의 성격과 말투와 쓰는 말까지 반영하는 홍상수 감독의 작업 방식을 생각한다면 옥희의 대사는 그저 극 중에만 부유하지 않는다. 그리워도 더는 그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선균이 출연한 작품은 단순히 영화와 드라마로만 소비하기 힘들다.‘ 나의 아저씨 스페셜 토크: 고 이선균을 기억하며’ 행사에서 박호산은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라마에 나온 캐릭터가 이선균 씨 아닌가 싶다. 보고 싶다.” 그건 이선균을 잊지 못하는 모두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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