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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5호 [인터뷰] 누구나 아는 음식이 정답이었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감독 ·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
박수용 사진 박종덕 2024-10-07

음식 드라마의 핵심은 음식이 아니다. 요리가 아무리 뛰어나도 화면 너머로 맛의 감동을 전하는 것은 먹는 사람의 몸짓과 표정이다. <심야식당>, <망각의 사치코>, <와카코와 술> 등 식사의 행위를 질료 삼은 동시대 일본 드라마중 <고독한 미식가>가 지금까지도 큰 반향을 끄는 이유도 ‘잘 만드는’ 일보다 ‘잘 먹는’ 일에 있을 것이다. 그 행위성의 예술에 통달한 자가 바로 ‘고로상’ , 마츠시게 유타카다. 지난 12년간 밥 한 끼에 우롱차를 곁들이며 혼밥의 매력을 설파했던 그는 작품에 대한 애정과 책임에 이끌려 감독으로까지 활동반경을 넓혔다. 언어를 넘어선 소통을 탐하는 진중한 배우이자 젊은 후배 들을 살뜰히 챙기는 멋진 어른. 뽀얀 국물처럼 깊고 온화한 마츠시게 유타 카의 말들을 한 그릇 가득 담았다.

- 주연배우를 넘어 직접 각본과 연출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일본의 TV 업계가 현재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 젊은 스태프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큰 자극이 될 만한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도쿄!>에서 인연을 맺었던 봉준호 감독에게 부탁드렸지만 아쉽게 불발되었다. 어쩔 수 없으니 내가 해야겠다 싶었다. 며칠 만에 시놉시스를 완성하고 주변 스태프들에게 보여줬더니 고맙게도 큰 신뢰를 보여주더라.

- 프랑스 파리, 일본 나가사키, 한국 거제도를 배경으로 삼았다. 로케이션 선정 기준은 음식이 먼저였나, 플롯이 먼저였나.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목표는 어드벤처 영화다. 어떤 사고가 발생해 고로가 한국에 표류하게 되는 전개가 어떨까 싶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제도와 나가사키의 고토 열도를 선택했다. 또 다양하고 이국적인 풍경과 그에 따라 변화하는 음식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뽕, 뽕, 뽕’하면서 화면이 3단계로 멀어지는 <고독한 미식가>의 시그니처 장면이 있다. 어디서 찍으면 좋을까 하다가 에펠탑이 떠올랐다. 주변 스태프들에게 말하니 다들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웃음).

- 영화에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의 두 가지 변화가 감지된다. 재료의 세계를 탐구하며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을 체험하게 되는 점,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일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제작을 시작한 때가 마침 코로나19가 끝나가던 즈음이었다. 그간 우리 작품이 거쳐 간 음식점들이 하나둘 폐점하는 상황을 보며 진심으로 격려를 보내 드리고 싶었다. 제작 당시 중요한 지표로 삼았던 작품이 이타미 주조 감독의 <탐포포>다. 쇠락한 라멘 가게를 부활시키기 위해 함께 애썼던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라멘을 먹는 장면을 이번 영화에 꼭 담고 싶었다. 고로가 홀로 거리로 나서는 마지막 장면은 4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찍었다. 고로와 우리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 고로의 독백은 전부 보이스오버로 처리된다. 대사를 머릿속으로 곱씹으며 그에 맞는 섬세한 표정을 구축하는 연기에 감탄했다.

모든 소통이 언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면을 전부 글로 표현해야 하는 시나리오 작업에서도 가끔 어떤 위화감을 느낀다. 대사를 읊는 것만이 연기의 전부가 아니다. 유재명 배우와의 장면을 예로 들고 싶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주 풍부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대사 없이도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리고 나도 그것을 받았다.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게 연기의 기본이다. 마음을 전하는 서로 간의 캐치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 한국 음식 중 비교적 서민적인 메뉴인 황태해장국과 고등어구이를 선택했다. 생각해 보면 드라마에서도 고로가 화려하고 비싼 음식을 먹는 일은 좀처럼 없다.

고로는 흔히 생각하는 미식가와는 거리가 있다. 길을 걷다 훌쩍 들어간 가게의 돈카츠 같은 평범한 음식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그 순간이야말로 <고독한 미식가>를 성립시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때다. 한국에 다른 맛있는 음식과 식당도 많지만 이번에는 거제 구조라 해변의 황태해장국 식당을 선택했다. 누구나 아는 음식이기에 비로소 정답이었다.

- 시즌 11이 막 방영을 시작했다. 제목도 <저마다의 고독한 미식가>로 변화를 줬다.

맛있는 것을 먹는 행위는 남녀노소 만국 공통의 행복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런 모습들을 모아 <고독한 미식가>적인 것을 한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각 화의 게스트가 가게에 들어서면 뜬금없이 이노가시라 고로가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다. 그렇다고 서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라 각자 고독하게 맛을 음미하는 구성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내가 각본부터 제작까지 맡았다.

- 감독으로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 있을까.

작품 전체를 살펴 가며 영화를 만들어가는 일이 정말 재미있더라. 다만 이번 작품은 <고독한 미식가>라는 뛰어난 콘텐츠의 힘을 빌렸기에 온전한 나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께서 많이 격려해 주신다면 더 큰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무엇보다 젊은 제작진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한국의 뛰어난 영화 환경의 힘을 빌려 한국의 제작진과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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