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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3호 [스페셜] 세계는 무너지고 우리는 규칙을 믿을 수밖에 없기에, 특별기획 프로그램 ‘미겔 고메스, 명랑한 멜랑콜리의 시네아스트’

<네게 마땅한 얼굴>

이제 겨우 두 번째 장편영화를 완성한 신예 영화감독 미겔 고메스와의 인터뷰에서 캐나다 영화잡지 <시네마스코프>의 영화평론가 마크 페란슨은 다짜고짜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네게 마땅한 얼굴>은 도대체 뭐야?” 고메스는 황당하다는 듯이 그게 진짜 질문이냐고 반문한다. 질문을 받는 연출자의 황당한 반응이 이해되면서도 고메스의 영화를 볼 때면 이 어처구니없는 의문을 모른 척하고 지나칠 수가 없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스크린을 통해 무엇을 본 것일까. 미겔 고메스의 영화는 막연하고 혼란스러운 세계 안에서 자꾸만 헛디디고 미끄러지는 인간을 묘사하고, 이로 인해 스크린을 지켜보는 이들의 현실 감각은 조금씩 달라진다. 고메스가 자기 영화의 원점으로 즐겨 인용하는 <오즈의 마법사>의 여행처럼,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보며 알 수 없는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타부>의 초반부에서 중년의 여성은 옆집에 사는 노인 아우로라에게 꿈 이야기를 듣는다. 털로 덮인 원숭이 무리, 죽은 지 10년이 넘은 친구의 집, 원숭이와 분간되지 않는 털이 많은 친구의 남편, 친구 남편이 도박으로 벌어온 막대한 돈.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의 파편이 아우로라의 입에서 쉴새 없이 흘러나온다. 그러는 동안 그들이 식사하는 공간의 배경이 느릿하게 회전한다. 마치 스크린이 재생되는 것처럼, 인물 뒤편에 있는 세계가 천천히 움직인다. 알 수 없는 말과 공회전하는 이미지를 통해 세계는 되돌릴 수 없이 변하고 있다. 미겔 고메스의 영화는 이곳에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시공간에서 흘러나오는 허구와 일정한 규칙으로 작동하는 질서가 공존하는 평면이 그의 영화적 장소다.

고메스의 영화는 무작위적으로 뒤바뀐다. 영화를 순서대로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던 세계의 지반이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다는 취약함과 불안정함이 불쑥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천일야화> 3부에서 바그다드의 세헤라자데 에피소드가 전개되던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 건너편은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도 바다를 건너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현대 도심 속의 강이 거꾸로 뒤집힌 이미지로 화면에 침입한다. 이 장면은 영화가 현재의 시점으로 되돌아왔을 때 뒤집히지 않은 형태로 다시 등장한다. 고메스의 영화적 논리 아래서 ‘천일야화’의 바그다드와 현대의 포르투갈은 같지만 다른 두 개의 숏으로 하나의 지구에 접속한다(그의 영화에 이따금 지구본이 소품으로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메스의 작품은 영화를 경계에 새겨둔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 픽션과 다큐멘터리, 필름과 디지털카메라 사이에 영화가 놓인다. 미겔 고메스는 이같은 현대영화의 형식적 균열을 영화 매체의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시간 안에서 끌어안으려는 작가다.

첫 번째 장편영화인 <네게 마땅한 얼굴>에서부터 6시간에 달하는 3부작 <천일야화>에 이르기까지 고메스는 끝없이 이탈하고 변신하는 세계를 소묘한다(그의 최근 작업인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가 고메스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면, 그 작품이 이탈과 변신을 가로막는 팬데믹 시기에 제작된 작업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기록과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배경과 영화를 만드는 자의식적 과정이 뒤섞이며 정해진 도착지 없이 이어지는 연속체로 나타난다. 잡스럽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와 목소리들은 결코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않지만,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불순한 마술처럼 눈과 귀를 홀리며 나타나고 사라진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1부와 2부로 단절되는 형식(<네게 마땅한 얼굴>, <타부>), 지역 축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촬영과 그것을 극영화로 재구성하는 시도가 뒤얽히는 구조(<친애하는 8월>), 동화의 규칙과 규칙에서 벗어나는 행동(<네게 마땅한 얼굴>, <천일야화>) 사이의 균열은 미쉬가 세계를 분할하는 방법론이며 이 방법은 <천일야화> 연작에서 그야말로 폭발한다. 세계는 다중인격적인 개체로 분열되고, 그 안에서 인간은 조각난 신체를 더듬으며 쓴웃음을 짓거나 눈물을 흘린다.

<타부>

<천일야화>는 그 수많은 분열과 감정의 이질적인 집합이다. <천일야화>라는 거대한 집합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영화의 형상은 투영이다. 도망자 시망이 기묘한 자세로 순간 이동할 때 그의 몸은 배경과 투명하게 겹치고, ‘딕시의 주인들’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강아지 딕시는 두 개의 개체로 나뉘어 서로를 마주 본다. 3부의 세헤라자데 에피소드에선 무희의 춤과 아버지의 추격이 과격한 디졸브로 중첩된다. 세계의 이미지는 필름 위에서 흐릿하게 사라지거나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는 둘로 분리될 것이다.

이런 영화의 운명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작업이 바로 <타부>다. <타부>에서 고메스가 활용하는 셀룰로이드 필름의 표면 위에서 인간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위험에 노출된, 취약하기 짝이 없는 피사체로 기록된다. ‘프롤로그’의 탐험가의 죽은 아내는 희미한 망령처럼 디졸브로 사라진다. 3부의 낙원에서 계곡으로 놀러 간 남자는 16mm 필름 카메라로 아우로 라를 촬영한다. 그런데 조악한 카메라는 과도하게 노출된 빛을 감당하지 못해 피사체인 아우로라를 희끄무레하게 담는다. 흥미로운 것은 <타부>의 1부는 16mm 필름으로, 2부는 35mm 필름으로 촬영된 영화다. 이 특별한 장면은 35mm 필름의 역사 안으로 16mm 필름의 사적인 기억을 틈입한다. 두가지 종류의 필름 표면 위에서 인간은 기억의 주체이자 역사의 증인으로 찢어진다.

<천일야화>의 ‘뜨거운 숲’ 에피소드는 매혹적으로 분열하는 피사체의 기록을 짧게 증언한다. 영상으로는 미겔 고메스가 촬영한 포르투갈 시내의 시위 장면이 흐르고, 그 위로 린난이라는 중국 여인의 목소리가 낭독된다. 린난은 어느 경찰과 사랑을 나눴지만 그가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상은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 집단을 보여주고, 화면 위에선 사라져버린 경찰 이야기를 들려주는 린난의 목소리가 있다. 전혀 상관없는 두 세계는 영화의 일시적인 규칙 아래서 잠시 만나고 다시 분리될 것이다. 미겔 고메스는 이따금 자신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규칙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규칙은 더 미묘해지고 불투명해졌다. 터무니없는 규칙을 공유하기 위해 그의 작업은 어린아이, 탐험가와 여행자, 사랑에 빠진 남녀에 천착한다. 그들만이 규칙을 믿을 수 있다.

고메스의 영화에서 분열하고 찢어지는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동물의 시간이다. <타부>의 원숭이와 악어,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8월>의 닭, 그리고 심장이 폭발하는 고래와 기억을 망각하는 강아지, 끊임없이 노래하는 되새와 재판의 증인으로 참석하는 황소까지 그야말로 동물의 박물지라고 할 만한 <천일야화>의 다양한 동물종은 인간이 설정한 취약한 질서와 불안 정한 세계의 균열을 가로지른다. <타부>의 1부가 끝날 무렵, 아우로라는 가정부에게 악어를 단속하라고 말한다. 웬 악어? 관객도 가정부도 당혹스럽다. 하지만 악어는 존재하고, 스크린에 나타난다. 2부의 남자는 아우로라에게 새끼 악어를 선물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이 편지에 답장하지 말고 공개하지도 말라는 아우로라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쯤 악어는 불현듯 다시 나타나 천천히 화면을 벗어난다. 악어의 발자국을 따라, 영화의 규칙은 다시 한번 미세하게 바뀌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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