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최근 가장 주목하는 배우가 박정민이라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흘러나왔을 때,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박찬욱 감독이 함께 거론한 작품들이었다. 당사자인 박정민 역시 같은 이유로 놀랐다. “<헤어질 결심> 때문에 냉면집에서 단둘이 식사를 할 때 감독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다.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중 <변산> 과 <시동>이 있다고. 나도 똑같이 생각했다. 감독님이 그 영화들을 왜 좋아 하시지? (웃음) 특히 <시동>을 참 귀엽게 보신 거 같더라.” <전, 란>에서 조선 최고의 무신 집안의 도련님 이종려 역할을 제안받을 때도 “나라는 배우에게 다른 모습을 보시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란>은 박정민이 주연을 맡은 첫 정통 사극이기도 하다. 그전까지 사극 분장을 한 박정민을 가장 오래볼 수 있는 필모그래피는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일장춘몽>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과연 사극이 잘 맞을지 비주얼을 테스트해 보고자 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웃음)”

종려는 집안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종려는 노비 천영(강동원)과 격의 없이 지내려고 한다. ‘임금이나 노비나 대동하다’는 정여립의 사상을 받아들여서는 아니다. “이전에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과는 다르게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새로운 종족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영화 중반 어떤 사건 이후로 밀려오는 배신감 역시 무척 개인적인 감정이었다.” 현장에서도 “종려가 천영을 너무 좋아해서 집착하는 것 같지 않느냐”는 말이 오갔단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진짜 벗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박정민은 선을 그었다. “종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기 기준일 뿐이다. 종려는 무의식 속에 계급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천영을 대등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 무는 개는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태조 때부터 무관 급제한 집안에서 태어난 종려는 천영의 특훈까지 받아 능력 있는 무사로 자란다. <전, 란>은 박정민이 본격적으로 고난도 액션 연기를 펼친 작품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예전에는 무술팀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소화하는 쪽이었다면 이번엔 처음으로 캐릭터에 맞는 액션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는 <전, 란> 속 박정민은 처음 보는 날렵한 묵직함을 보여준다. 곧 촬영에 들어갈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에서 보여줄 액션까지, 박정민은 더더욱 무르익고 새로운 매력을 꺼내보이며 비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