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산산이 부서지면> When the Light Breaks
루나르 루나르손/아이슬란드,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프랑스/2024년/82분/월드시네마
10.04 C7 14:00 / 10.07 C4 17:00 / 10.10 C3 13:30
애도의 순간에도 온전히 슬퍼할 수 없는 존재는 고통스럽다. 대개 이런 상황은 어디에도 말 못 할 비밀이 감정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 어스름을 바라보며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어오던 애인과 먼 미래까지 유효할 사랑을 약속하던 위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날이 밝는 대로 오랜 연인에게 결별을 고하고 당당하게 사랑을 이어가리라 다짐한 남자는 터널 속 화마와 함께 말없이 사라지고 만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 지만, 그녀가 비통해 할 자리는 충분치 않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의 죽음을 온몸으로 슬퍼하는 연인과 동창들의 곁에서 위나는 그저 대학 친구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내막을 모르는 남자의 애인과 밀회의 주인공이 장례 식에서 함께 죽음을 되짚는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설정이지만, 애도의 드라마는 격정적인 파국의 소용돌이로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사랑 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사별의 고통은 모두에게 사무치듯 시린 감정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실을 마주한 인물들을 쉽게 책망하기보단 건조하고 포근한 햇살로 온기 가득한 포옹을 선사한다. 아이슬란드의 빼어난 풍광에서 섬세한 정서의 흔적을 발굴하는 루나르 루나르손의 장기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