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은 제목부터 '계급 전쟁'이라는 컨셉을 내세우지만 기묘하게도 탈권위주의적 프로그램의 태도가 돋보인다. 먼저 <흑백요리사>는 참가자를 흑수저와 백수저로 나눈다. 명장 계급과 그의 자리를 엿보는 도전자 계급. 얼핏 수직적 구조를 발판 삼은 여느 서바이벌처럼 보이지만 계급 상승의 욕망을 더 자극하기 위해 흑수저간에 세부 계급을 나누지 않고, 흑백이 동등하게 평가받고 겨룬다는 점에서 기존 서바이벌 문법을 벗어난다.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한 블라인드 심사 또한 경직된 위계를 은연중 허문다. 이 설정은 참가자의 정체를 모른 채 공평하게 평가한다는 기본적인 목표를 뛰어넘어 <흑백요리사>의 코어를 이루는 백종원과 안성재의 심사 자격을 시청자가 직접 확인할 기회를 준다. 한 스푼 맛보는 것만으로 재료의 쓰임과 장르, 곁가지 부자재를 추정해내는 그들의 오랜 경험과 섬세함은 <흑백요리사>가 내리는 결정의 설득력과 타당성을 증명한다. 무작정 두 심사위원의 이력을 줄줄 외기보다 시청자가 그 자격을 직접 확인하게 함으로써 대중과 미슐랭 셰프, 유명 사업가 사이의 어색한 거리를 바짝 좁힌다. 그렇다면 계급 차는 어떻게 드러날까. 경연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음식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것을 함부로 폄훼하지 않는다. 마스터는 젊은이의 창의적이고 이색적인 실험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이고 새 세대의 셰프는 장인의 시간과 경험을 존경한다. 프로그램이 계급 차를 구조적 불평등이나 조리 환경 차이로 설정하지 않으니 오직 경륜과 이력만이 그것을 알려준다. 급식대가를 향한 안성재와 백종원 또한 이 태도를 이어받는다. 성인 입맛을 기준으로 평가하던 이들은 급식대가의 지난 30년을 조명하기 위해 어린이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까다로운 어린이들이 쌈을 잘 먹게 하기 위한 노력이 어땠을지 충분히 가늠해준다. 급식대가가 조리사가 아닌 셰프의 이름으로 설 수 있는 것. <흑백요리사>의 탈권위주의가 아니었다면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check point
이모카세, 급식대가, 이영숙 명인.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보기 어려운 중년 여성들의 활약이 무척이나 반갑다. 하지만 이들을 부르는 타 참가자들의 호칭이 제동을 건다. “역시 어머니가 계셔서 미역국을 잘 끓인다”(히든 천재), “이모님들 있어서 든든하다”(최강록). 여기에 이모님과 어머님이 어디 있지? 오직 셰프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