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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무용과 음악을 재해석하다
<게이샤의 추억>의 시작 단계에 참여했던 많은 일본인 고문들은 중도에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일본인 무용가 마나레 시즈미는 영화의 안무 고문(顧問)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오디션을 보러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아름다운 여름용 기모노를 입은 그는 감독과 안무가 앞에서 멋들어지게 부채춤을 췄다. 그러나 감독은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음악을 틀고는 더 빠르게 춤을 춰줄 것을 요구했다. “좀더 부채를 높이 던져볼 수 있나요?” 마나레의 대답은 단호했다. “우리 일본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관람한 그는 분노를 쏟아냈다. “아서 골든의 책은 게이샤의 의례와 디테일을 잘 묘사했다. 그러나 마셜은 30년대와 40년대의 게이샤 무용을 잘못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의 게이샤는 교토의 게이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매우 불쾌한 일이다. 게이샤의 세계는 우리의 문화다. 8인치짜리 조리(일본식 샌들) 따위는 신지 않는다.” 안무가인 존 데루
<게이샤의 추억> 제작 과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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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추억>은 이상한 영화다. 미국인 작가가 쓴 게이샤의 회고담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인 감독이 연출했으며, 기모노 차림의 중국인 배우들이 영어와 일본어가 섞인 대사를 읊조리며 LA 근교에 만들어진 ‘상상의 교토’를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닌다. 아마도 <게이샤의 추억>은 이집트인이 영어로 러시아 혁명기의 의사를 연기하는 영국 감독의 영화 이후 가장 다의적이고 모호한 국적성을 가진 영화일 것이다. 이 기이한 범세계적 창작물은 어떤 문화적 정제와 통합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가. 제작진은 어떤 고민을 짊어지고 하나의 세계를 완성했는가. 미국과 일본, 동아시아의 반응은 어떤 우려와 기대를 담고 있는가. <게이샤의 추억>의 지난한 프로덕션 과정으로 들어가본다.
11월의 일본 국립 스모 경기장. <게이샤의 추억>의 세계 첫 시사회장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일본 관객과 평단은 굉장한 문화적 이질감을 목도할 것이라 예감하며 자리에 앉아
<게이샤의 추억> 제작 과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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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리자의 전리품이 되어왔다. 하지만 만일 실패자가 역사를 재창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군(聖君)은 더 이상 성군이 아니고, 폭군(暴君)도 더 이상 폭군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역사는 시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무한히 재창조될 수 있다. <왕의 남자>의 인기 역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폭군 연산을 새롭게 재창조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특히 연산이 사망한 지 500년째 되는 해다. 500년 만에 부활한 연산이 로마시대의 폭군 칼리큘라를 난상토론장에서 만났다. 영웅이 등장하는 사극에 관해 한바탕 썰을 풀 작정이라는데, 어디 얘기 한번 들어보자. 특별히 아나운서계의 신화, 손섹히씨가 사회자로 나서주셨다(참고: 등장인물은 <왕의 남자>와 <칼리큘라>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을 뿐,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1. 폭군, 폭군을 만나다
손섹히: 폭군 여러분, 토론회에 참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로 인사들 나누시고요.
영웅 사극 이야기 - 폭군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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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뭐해?” “시간 남으면 극장이나 갈까?” “그런데 화제작은 거의 봤고 딱히 볼 영화가 없네….” “이런….” “쩝쩝….” “(나도 쩝쩝)….” 가까운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 있는지?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대안이 있다.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혹은 나 홀로(!) TV를 켜는 것이다. 그리고 편성표를 뒤적이면서 영화를 보는 것. 올해 설 연휴 TV영화의 라인업은 화려하다.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있고 <스파이더 맨> 등 몇편의 블록버스터를 만날 수 있다. 한국영화는 더욱 풍요롭다. 최근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댄서의 순정>에서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까지 다채로운 영화 장르를 맛볼수 있다. 지금, TV 앞으로!
<셰익스피어 인 러브>
1998년 감독 존 매든 출연 조셉 파인즈 EBS 1월28일(토) 밤 11시30분
셰익스피어는 어쩌면, 가장 빼어
설연휴 즐길거리 [6] - TV영화 프로그램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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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미국, ‘퐁’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게임회사 아타리가 무너졌다. 이른바 ‘아타리 쇼크’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명이 많지만 역시 외계인의 책임이 결정적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대량 출시한 게임 <E.T.>가 기록적으로 저조한 판매고를 보이며 회사가 도산 직전으로 몰린 것이다. 판권을 비싸게 인수한 만큼 제작비를 아끼며 대충 만든 게임으로 영화 팬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계획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아타리 쇼크는 혼자만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른 회사들까지 덩달아 어려워지면서 미국 게임산업 전체에 침체기가 닥쳤다.
20년이 흐른 지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연출이나 표현에서 영화 못지않은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게임들이 등장했으며 시장도 영화산업보다 커졌다. 또한 영화가 오히려 게임을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블록버스터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게임과 영화는 이렇게 다시 만났다.
여전히 ‘이건 아니다’
게임의 후광에 편승하려 드는 영화들은 영화의 떡
설연휴 즐길거리 [5] - 영화화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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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장르가 다양해짐에 따라 전문적인 소재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요리를 소재로 한 요리만화다. 요리만화에는 몇 가지 특별한 매력이 있다. 요리의 다양성만큼이나 요리만화도 각양각색이라 기호에 맞게 골라 볼 수 있다는 점, 만화에 나온 지식을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 명확하게 구분되는 맛의 개성처럼 작품 속 캐릭터들의 개성도 강해 흥미로운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강한 매력은 요리만화를 보고 나면 식욕이 돋는다는 것이 아닐까?
한국/ 식객(食客)
요리사: 허영만 원산지: 김영사 재료: 담백하고 구수한 우리 고향의 정서/ 싱싱한 산지 직송 우리 농수산물/ 훈훈한 인심/ 가슴속 깊은 곳을 적시는 감동/ 현대 한국인의 식도락 문화
수많은 전통요리를 자랑하며 세계적인 음식 김치와 불고기를 만들어낸 우리에게 내세울 만한 요리만화가 없다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에 허영만이 직접 발벗고 나서 탄생한 작품이 <
설연휴 즐길거리 [4] - 요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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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많은 해외 팝스타들의 공연이 펼쳐지지만, 전성기를 구가하는 아티스트가 우리나라를 공연 스케줄에 집어넣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렇다 할 전문 공연장도 없는데다, 몇 천명 관객 모으기도 버거운 우리 현실에서, 엄청난 개런티에다 항공료 등의 제반 비용을 다 포함하고 1회 공연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어렵사리 공연을 유치했다 해도, 외국에서 하듯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무대를 꾸미거나 하는 일은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탱크까지 등장시킨 마이클 잭슨의 공연은 정말 예외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를 찾는 팝스타들은 속된 말로 ‘한물간’ 뮤지션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땅에서 최고 인기 스타의 완벽한 공연을 본다는 것은 지금도 또 앞으로도 거의 불가능할 듯싶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DVD를 통해 그들의 공연을 감상하는 것 말이다. 올 설 연휴에는 이런 공연 실황 DVD를 구해서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많은 라이브 DVD가 있지
설연휴 즐길거리 [3] - DVD 공연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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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펴낸 단행본들이 많지만, 좀처럼 눈길과 손길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왠지 고리타분할 것 같아서? 이른바 ‘코드’가 낯설어 이해하기 힘들까봐? 혹시 근엄한 도덕군자들의 진부한 훈계와 만나게 될까봐? 그런 염려는 접어두어도 좋다. 출판사는 비영리 자선단체가 아니라 엄연히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다. 그러니 옛글을 단행본으로 펴낸다는 건,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먹혀들 만한 것들을 선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게 다가오는 옛글도 많지만, 우리 못지않게 옛날 사람들도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걸 싫어했다는 걸 염두에 두자.
선비가 부르는 접시꽃 당신 - <눈물이란 무엇인가>
요즘 말로 하면 수필 혹은 에세이쯤 될까? 옛 선비들의 글 가운데 소품문(小品文)이라는 게 있다. 옛 사상이나 기성 문체에서 벗어나 현실의 다양한 면모, 각양각색의 인물 군상, 개인적 감상 등을 솔직하고 생동감있게 담았으니, 글쓴이의 개성이 물씬
설연휴 즐길거리 [2] - 동양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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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석에 이어 이번 설 연휴도 너무 짧다고,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니냐고 좌절하고 있습니까. 하지만 연휴가 길다하여 늘어져라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휴가 짧다하여 전혀 쉴 수 없는 것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계획과 실천! 3일뿐인 연휴지만, 짧은 여정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봤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탐독하며 실학의 대가였던 박지원의 명민함을 느끼는 지적인 일정을 보내시거나, 시간 없고 돈 없어서 못 간 공연의 DVD 실황을 보면서 그 목마름을 달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설 연휴라고 만날 나물에 고기산적만 먹을 일 있습니까? 각국의 요리를 맛깔나게 소개하는 요리만화들을 보면서 허기를 채우고, 조카, 사촌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도 있겠지요. 뭐 이도 저도 다 귀찮으시다면 영화 프로그램 가이드 옆에 끼시고 TV 속으로 들어가셔도 나쁘지 않겠네요. 신년 첫 연휴의 문화 풍경은 어떤 모습이 될지, 함께 그려볼까요?
설연휴 즐길거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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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시집장가 가지 않는 다음에야, 명절이 없다면 친척이 한자리에 모일 일도 별 없는 세상이다. 명절은 그래서 흥겹고 그래서 두렵다. 재수생과 백수, 노처녀·노총각들에게 쏟아지는 몰매너한 질문들. 주부들에게 지워지는 고강도의 노동. 친척들 사이에 팽팽히 당겨진 역학관계의 끈. 인내심을 증진시키는 교통체증과 명절이 오히려 서러운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설 특집 뉴스데스크의 형식을 빌려 멋대로 꾸며보았다. 혹시 또 아나? 이 기사가 배려하고 조심하는 설, 뻔뻔해지고 당당해지는 설에 조금이라도 기여할지.
설 맞은 이태백의 애환
빰빰빠암~ 빠밧밧빰~ 빠바바 바바바밤~ 빰빰빰빰~ 빰빠~ 빠암~~!
앵커1: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설 특집, MEC 뉴스, 난다김입니다.
첫 번째 소식입니다. 서울 가리봉동에 사는 강모씨가, 설은 다가오고 취직은 하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비관한 끝에, 지난밤 자신의 옥탑방에서 라면 두개와 소주 다섯병을 먹고 그만, … 얼굴이 팅팅 부었다고 합니다.
앵
[설 특집] MEC 뉴스데스크 - 명절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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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제기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 R. L. 러츠키 지음/ 김상민·윤원화 외 옮김/ 시공사 펴냄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는 모더니티의 시작부터 현대의 테크노-문화에 이르는 테크놀로지, 예술, 문화의 관계 변환을 고찰함으로써 ‘테크놀로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이론을 위한 전략-마르크스에서 마돈나까지>를 공동 편집했던 R. L. 러츠키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프리츠 랑의 영화와 옥타비아 버틀러의 과학소설,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품과 일본 아니메, 구성주의와 사이버스페이스를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며 새로운 하이테크네의 지형도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서기 2000년대는 지금의 2000년대와
현장영화인 20인의 추천도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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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의 조우
<유년기의 끝> 아서 C. 클라크 저/ 정영목 역/ 시공사 펴냄
아서 C. 클라크가 쓴 몇편의 SF소설들은 수많은 할리우드 SF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작가가 상상하는 공간과 미래의 모습은 때로는 피폐하고, 때로는 너무도 따뜻하고 자연적이기까지 하다. 그중에서도 <유년기의 끝>은 SF소설의 고전으로 통한다.
이 책은 2050년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을 위해 서로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미 2000년을 훌쩍 넘겨버렸지만, 소설을 처음 읽었던 10여년 전만 해도 2050년은 나에게 아득한 미래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소설 시작 부분에 작가가 묘사한 2050년의 모습에는 미-소간의 갈등과 전쟁 등 현실 세계를 염두에 둔 암시들이 진하게 배어 있다. 역사는 인간들의 실수와 오만에 의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지구를 덮는 수많은 우주선이 도착한다(이 대목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완전
현장영화인 20인의 추천도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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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조명이란 무엇인가
<영화조명기술> 제럴드 밀러슨 저/ 집문당 펴냄
영화조명은 다른 기술 파트에 비해 작업에 대한 일반화된 방법이나 절차를 쉽게 포착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개별 영화마다 백지상태로 시작하여 새로운 방식의 조명을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장면을 구성해도 누가 어떻게 조명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수많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제럴드 밀러슨의 <영화조명기술>은 20년 전부터 곁에 두고 보는 책이다. 반복해서 읽을수록 새롭고 통독해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참고한다. 한두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대부분 조명 관련 서적들이 장비의 기계적 특성이나 제원을 나열하거나 각종 데이터를 표로 소개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조명기술>은 비교적 깊이있는 조명방법론을 다룬다. 오래된 책이기에 구식장비들이 소개된 부분은 다
현장영화인 20인의 추천도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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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재의 보물 창고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 데이비드 사우스웰 저/ 이종인 역/ 이마고 펴냄
혹시 <9시 뉴스> 도중 갑자기 나타나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라고 외친 남자가, 정부나 모 비밀단체에 의해 귀 속에 도청장치가 심어진 채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또 혹시 몸에 해롭지 않거나 혹은 보약이 될 수도 있는 담배가 이미 발명된 지 오래지만, 각종 금연 보조제 생산업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용화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말도 안 돼!’ 하고 치부해버릴 만한 이런 황당한 상상을 단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을 권한다.
케네디 암살 사건이건, 프리메이슨의 실체건, 로스웰 외계인 해부실험이건, 음모론이라는 것이 주로 권력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저항에서 태어나는 경우
현장영화인 20인의 추천도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