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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천주정>의 칸영화제 상영을 마무리한 뒤, 중국으로 돌아가 <재청조>를 만들겠다던 지아장커의 말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 대신 지아장커는 중국과 호주를 오가며 촬영한 영화 <산허구런>을 들고 다시금 칸영화제 경쟁부문을 찾았다. 현대 중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 그들 각자의 파편화된 삶을 조명했던 전작들과 달리 <산허구런>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세 등장인물의 과거, 현재, 미래를 들여다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서 지아장커가 시도하는 건 사회 구성원들 각자의 분절된 삶을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인생에서 개인이 경험하게 되는 것들을 분절된 시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가 궁금했고, 40대 중반에 접어든 이 중국의 거장이 들려주는 답변은 자주 콧날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산허구런>을 연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 영화는 내게 감정적으로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작품이
본질적인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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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타이에서 촬영한 나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상영작, <영광의 무덤>은 타이의 작가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어떤 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느끼고 사랑하는 고국을 떠나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인 그는 타이에 대한 작별의 의미로 자신의 뿌리이자 고향인 콘 카엔으로 돌아가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이 서려 있는 공간이기 때문인지, 이 영화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향수와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한, 다소 애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연출자로서의 1막을 마무리하고 새 출발을 앞둔 그와의 만남을 전한다.
-당신의 고향(콘 카엔)에서 이 영화를 촬영했다. 고향에 돌아가니 기분이 어떻던가.
=나는 때때로 고향을 방문했었다. 어머니가 아직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의 촬영지로 방문해본 적은 많지 않다. 나는 <징후와 세기>를 그곳에서
“고국에 안녕을 고하기에 고향은 최적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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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허우샤오시엔의 첫 무협영화 <섭은낭>은 예상대로 연출자의 면모를 쏙 빼닮은, 오직 허우샤오시엔만이 만들 수 있을 무협영화였다. 화려한 액션 신도,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솟구치는 무술 고수도 이 영화엔 없다. 다만 사랑했던 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임무를 어떻게든 수행하려고 애쓰는 과묵하고 아름다운 여협객이 있을 뿐이다. 그녀의 머뭇거림과 차분한 성정을 따르려는 듯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때때로 무협영화치고 너무도 고요한 이 작품의 침묵을 깨는 강렬한 감흥의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허우샤오시엔을 만났다. 애초 20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40분 가까이 진행됐고 허우샤오시엔은 질문마다 길고 사려깊은 답변을 덧붙였다. 수년간의 기다림과 다양한 실험 끝에 그가 획득해낸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에 4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섭은낭>을 완성하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내가 등장했던 그 시대는 이제 끝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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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칸영화제가 끝나자마자 많은 해외 매체 기자들과 평론가들이 자신이 꼽은 베스트 리스트를 내놓았다. 누가 어떤 영화를 지지했고, 또 싫어했는지 비교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씨네21>은 믿을 만한 해외 매체 기자와 평론가 4명을 엄선해 그들의 베스트 리스트를 받았다. 필자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씨네21>의 오랜 친구, 장 미셸 프로동은 <카이에 뒤 시네마> 전 편집장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평론가이며,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파리)과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다. 그가 아래 5편을 선정하면서 짤막한 이유도 함께 보내왔다. “<산허구런>은 현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감독인 지아장커가 친숙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중국에 불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묘사한 작품. 더욱 진실된 스타일로 말이다. <섭은낭>은 시네마틱한 아름다움이 복잡한 시공간의 세계를 구축한, 독특한 작품.
내가 황금종려상을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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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은 영화를 보기에는 최적의 장소이지만, 그 작품들에 대한 생각을 곱씹기에는 그보다 최악의 장소가 없다.” 매년 5월마다 칸으로 향한다는 <필름 코멘트>의 평론가 켄트 존스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첫 상영이 시작되는 오전 8시30분부터 마지막 상영이 마무리되는 10시경까지, 칸을 찾은 기자들은 매일 두세편씩 상영되는 경쟁부문 영화들을 보는 동시에 산발적인 인터뷰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고, 모든 일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와서는 고국으로 보낼 기사를 작성하거나 다음날 보게 될 영화의 자료를 뒤적이곤 한다. 그런 생활을 2주일쯤 하다보면 머리에도 혼란이 찾아와, 이 영화와 저 영화의 내용이 서로 뒤섞이고 분명 극장에서 명징하게 느꼈던 감흥들은 저 너머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올해 칸에서 만난 한 외신기자는 이번 영화제에서 자신을 괴롭게 한 인물이 바로 뱅상 카셀이라며, 그가 두편의 영화(마이웬의 <나의 왕>과 마테오 가로네의 &l
이 영화들을 기다리세요,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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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섭은낭> 허우샤오시엔
<산허구런> 지아장커
<영광의 무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맥베스> 저스틴 커젤
<라우더 댄 밤즈> 요아킴 트리에
칸영화제 주요 부문의 수상 결과와 현지 반응, <씨네21>이 주목한 경쟁부문 감독들과의 만남은 지난주의 첫 번째 결산기사에서 이미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결산기사에서는 영화제 후반부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영화 네편에 대한 보다 상세한 리뷰를 준비했다. 더불어 올해의 주요 부문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유럽영화의 틈새에서 그 존재감을 빛낸 아시아 거장감독 3인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칸영화제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가 아르노 데스플레생, 미구엘 고메스 등 쟁쟁한 감독들의 명단을 제치고 경쟁부문에 넣고자 했던, 앞으로 더 오래 지켜봐야 할 야심만만한 두 신예감독들과의 만남도 마련했다. 더불어 그 어느 때보다 평가가 엇갈렸던 올해의 영화제인 만큼 신뢰할 만한 해외
69번째 칸영화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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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토머스 해리스는 1981년에 발표한 소설 <레드 드래곤>에서 법의학 정신분석의이자 연쇄 식인 살인마인 한니발 렉터 박사를 처음 등장시켰다. 그런데 렉터 박사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아니었다. 애초 등장 분량 자체가 10페이지가 채 되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토머스 해리스는 뒤이어 1988년에 발표한 <양들의 침묵>과 1999년에 발표한 <한니발>, 그리고 2006년에 발표한 <한니발 라이징>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한니발 렉터를 전면에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소설 <레드 드래곤>을 원작으로 해 가장 처음 영화화된 <맨헌터>에서는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한니발 렉터의 비중이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렉터 역을 맡았던 브라이언 콕스는 1940년대와 1950년대를 거치며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맨해튼 출신의 스코틀랜드 연쇄 살인마 피터 매뉴얼을 참고하며 연기하는 정성을 보였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한니발 렉터
마우스피스에서 킬러 슈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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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니발>의 세 번째 시즌이 곧 시작된다. 전개상 당연히 지난 시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이를 제외한 주요 캐릭터, 디자인, 로케이션, 의상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설정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다시 시작하는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달라진 재미와 파격적인 볼거리를 선사할 드라마 <한니발> 시즌3는 6월6일부터 매주 토요일 밤 10시50분 AXN채널에서 방영된다. 새롭게 꽃단장한 희대의 살인마를 영접하기 전에 지난 시즌과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간단히 짚어봤다.
무려 인간 사냥만 세 시즌째다. 쓸데없는 궁금증이지만 희대의 식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매즈 미켈슨)는 삼시세끼를 전부 챙겨 먹을까? 드라마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그는 끼니마다 전채요리에서부터 후식에 이르기까지 격식이란 격식은 전부 갖춰 챙기는 것은 물론, 자신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끼니마저 몽땅 챙긴다. 식자재나 음식 문화에 관한 지식은 또 얼마나 해박한지 모른다. 특유의 나
악(惡)을 맛볼 준비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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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드니 빌뇌브 감독의 촉수는 전세계 분쟁지역을 향해 쫑긋 세워져 있는 듯하다. 전작 <그을린 사랑>(2011)이 중동의 한 가상공간에서 벌어진 민족간의 갈등과 종교 분쟁을 정면으로 바라봤다면, 칸 경쟁부문에서 첫 공개된 신작 <시카리오>는 미국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지역에 현미경을 들이댄 작품이다.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가 멕시코 마약조직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 멕시코 국경지역으로 잠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카리오>는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그곳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만이 정답인지 되묻는다. 갑자기 생긴 감독의 개인 사정 때문에 예정된 약속 시간을 훌쩍 넘긴 뒤 우여곡절 끝에 만나 나눈 드니 빌뇌브 감독과의 대화를 전한다.
-영화는 미국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이 지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무척 슬프다. 사회의 여러
“군인들이 게이머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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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소렌티노는 전작 <그레이트 뷰티>(2013)를 통해 삶과 죽음, 젊음과 나이 듦, 예술과 미학을 여러 영화적 장치를 통해 은유했다. 올해 칸 경쟁부문에서 첫 공개된 그의 신작 <유스>는 전작의 여러 주제 중 젊음과 나이듦을 뚝 떼내어 이야기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오랜 친구 프레드(마이클 케인)와 믹(하비 카이틀)은 80살을 앞두고 스위스 알프스에 있는 고급 호텔에 휴가를 간다. 프레드는 은퇴한 음악 작곡가 겸 지휘자로, 최고의 무대인 ‘퀸’에 컴백하라는 제안을 시큰둥하게 거절한 반면, 믹은 신작 시나리오를 빨리 끝내려는 백전노장 영화감독이다. 둘은 얼마 남지 않은 미래를 마주하며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그들이 호텔에서 만난 그 누구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지 않는다. 첫 공개된 뒤 썩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파올로 소렌티노는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 전작부터 이어져 온 나이 듦이라는 일관된 주제에 관해 여러 얘기를 들려주었다.
-오
“마이클 케인은 카리스마, 엘레강스, 유머 다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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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황금종려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캐롤>은 올해 칸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전작 <아임 낫 데어>(2007) 이후 거의 8년 만에 내놓은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그사이에 5부작 드라마 <밀드레드 피어스>(2011)를 연출하긴 했다)으로,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섭은낭>과 함께 칸 공식 데일리지 <스크린 데일리>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아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혔다. 잘 알려진 대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프라이스 오브 솔트>(The Price of Salt)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테레즈(루니 마라), 두 여성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1952년 뉴욕, 장난감 가게 점원 테레즈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무척 바쁘다. 어느 날 가게 안으로 들어온 캐롤이 장갑을 두고 나간다. 아름다운 여인 캐롤을 잊지 못한 테레즈가 장갑을 돌려주고, 캐롤은 답례로 식사를 함께할 것을 제안하면서 둘의 만남
“사회적으로 힘없는 이들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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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지면에서는 <씨네21>이 직접 만난 네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이들과의 만남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다.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은 올해 칸 경쟁부문에 초청된 다섯편의 프랑스영화 중 가장 선두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준다. 토드 헤인즈의 <캐롤>은 오랜만에 극영화로 돌아온 이 미국 거장의 화려한 귀환을 알리는 작품이다. 칸이 사랑하는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유스>는 프랑스영화 다음으로 올해의 경쟁부문에서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탈리아영화의 기수이자, 소렌티노의 두 번째 영어영화다. 캐나다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블레이드 러너>의 시퀄 연출을 앞둔 그의 확장된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올해의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중요한 위치를 선점했던 이들과의 만남을 전한다(아시아의 거장들과 신예의 인터뷰는 다음호에 게재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주자
독일이나 영국은 괜찮지만 미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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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디판> 자크 오디아르
“미하엘 하네케에게 감사하다. 그가 올해 영화를 만들지 않은 덕분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 대상 <사울의 아들> 라즐로 네메즈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다른 시각으로 홀로코스트 문제에 접근하고 싶었다. 우리 세대와 소통하는 게 중요했다.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얘기해줄 수 있는 생존자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상 <섭은낭> 허우샤오시엔
“당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는다면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영화들은 전세계에서 상영되어왔다. 상을 받거나 받지 않거나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이 <섭은낭>에 상을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돌을 던졌을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심사위원상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심사위원들은 영화에 대해 정확하고,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기 있는 심사위원들 모두 존경스럽다. 상을 받게 돼 영광이
올해 영화를 만들지 않은 미하엘 하네케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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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은 끝났지만 칸에서 화제를 모은 말들은 계속 회자되고 있다. 제68회 칸국제영화제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말들을 모아봤다.
➊ “집행위원장으로서 겸손과 야심을 동시에 가지고 싶다.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겸손은 질 자코브가 이루어낸 업적을 잘 이어받아 운영하는 것이다. 내 야심은 칸영화제가 끝났을 때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게 만드는 것이다.” - 영화제 개막 전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피에르 레스퀴르 집행위원장.
➋ “누구에게나 박수를 크게 치는 것만큼 야유를 보낼 권리도 있다.” - 출연작 <씨 오브 트리스>가 혹평을 받은 뒤 매튜 매커너헤이(사진 왼쪽)가 한 말.
➌ “나는 멕시코인이다. 나는 여자다. 나는 레바논계다. 그리고 48살이다. 나는 이 업계에서 가장 힘이 약하다. 혹시 내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나는 항상 주류 시스템 밖에서 활동하고
박수칠 권리, 야유할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