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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는 막을 내렸지만 재능 있는 신인 발견은 계속된다. 올해 영화제에서도 장차 한국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을 만한 신예들의 개성 있는 작품들이 첫선을 보였다. 그중 <씨네21>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합쳐 총 7작품을 소개한다. 10월22일 극장 개봉하는 권오광 감독의 <돌연변이>를 포함해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한 박홍민 감독의 <혼자>,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을 받은 이승원 감독의 <소통과 거짓말>,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 김진도 감독의 <흔들리는 물결>, 그리고 최우영 감독의 <공부의 나라>와 김영조 감독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편의 다큐멘터리가 그것이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두자.
개봉을 기다리며 차기작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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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시네마&토크에서는 단순한 영화 관람을 넘어 영화가 과학에 던지는 화두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꼼꼼히 읽고, 뜯어보고, 다시 말하는 시간. 영화의 상상력, 영화 속 여러 과학기술이 오늘날 우리를 어떻게 자극할지 미리 짚어봤다.
<매트릭스>(1999)
SF영화의 역사를 바꾼 워쇼스키 남매의 화제작. 2099년 기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인류는 매트릭스의 노예가 된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기계가 만든 인공자궁에 갇혀 기계의 전력공급원 역할을 하고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살아간다. 매트릭스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네오를 찾아 구출하려는 모피어스, 트리니티 등 동료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우리가 현실을 인지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주의
알찬 토크로 SF영화 되새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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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6회째 맞는 국내 최대의 SF과학축제, SF2015(Science & Future)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다. 10월27일부터 11월1일까지 6일간 열리는 이번 축제는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 사이언스&퓨처를 주제로 내걸고 좀더 보편적이고 흥미로운 과학과 영화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익숙한 영화들을 새롭게 바라보며 영화 속에 적용된 과학들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여러 부대행사와 체험형 전시를 통해 가족과 함께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과학축제가 펼쳐진다. 깊어가는 가을 한가운데에서 과학과 문화의 만남을 만끽해보자.
최근 눈에 띄는 사이언스 픽션(이하 SF) 영화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는 영화의 역사를 바꾸어놓았고,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는 새로운 시청각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는 우주영화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여
과학을 즐겨라, 미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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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훗날 타이의 영화 마스터,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일대기를 돌아보는 영화사가들에게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동안 타이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던 그는 <찬란함의 무덤>(2015)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자신의 고국에서 장편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 시기를 마무리하며 느끼는 애상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 위라세타쿤은 현재 이 복합적인 감정의 중간 즈음에 서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주목하고 있는 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을 압박하는 거대한 힘과 그로 인해 개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찬란함의 무덤>과 아시아 마스터들이 함께 작업한 단편영화 프로젝트 ‘컬러 오브 아시아-마스터스’에서 위라세타쿤이 연출한 <증발>은 배경과 형식은 다르지만 작품의 테마에 있어 흥미로운 대구를 이룬다.
왕조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병원, 그리고 그 자리에 흐르는 강력한 고대의 기운으로 인해 꿈에서 깨어나지
개, 바나나나무, 집, 고향… 그들의 고유의 리듬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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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는 세 자매가 15년 전 자신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배다른 여동생 스즈(히로세 스즈)와 처음 만나고 그 뒤 이들은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감독이 전작들에서 늘 안쓰럽고 대견스레 바라본 조숙한 아이들이 자라서 만들어낸 성숙한 어른의 세계, 그 초입에 있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요시다 아키미의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데뷔작 <환상의 빛>(1995) 이후 원작을 영화화한 건 두 번째인데 어떤 면에 이끌렸던 건가.
=부모한테 버림받은 세명의 딸들이 본인들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던 배다른 막내 동생 스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생각해오던 첫째딸 사치(아야세 하루카)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기고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새로이 쓴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과거와 대면하고 성숙해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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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자리를 옮기는 그림자로 기억되는 영화 <오후>(2015)는 차이밍량과 이강생의 긴 대화로 완성되는 작품이다. 차이밍량과 이강생은 137분의 대화를 통해 20년 동안 다져온 신뢰를 확인하는 동시에 서로 알지 못했던 내밀한 속내를 짐작하게 된다. 폐허처럼 보이는 공간에 의자 두개가 놓여 있고 둘은 커다란 창(처럼 보이는 구멍)을 등진 채 이야기를 나눈다. 그곳은 차이밍량의 새집이다. 카메라 뒤엔 이강생의 친구 둘이 앉아 있고 영화는 “메모리카드를 갈기 위해” 두번 암전되는 것을 제외하면 롱테이크로 끊김 없이 촬영돼 있다. 차이밍량은 “어떤 것도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무심결에라도 영화의 틀을 벗어나려 한 의지가 담긴 것인지 현장은 명백하게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 형식은 사뭇 달라졌지만 시간과 관계의 테마는 여전히 그의 영화를 관통하고 있다.
<오후>를 촬영할 때 차이밍량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당시에 나와 책을
“개념을 단순화 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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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이 사랑한 남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셸 프랑코의 데뷔작 <다니엘과 안나>(2009)는 제62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돼 황금카메라상에 노미네이트됐고, 두 번째로 만든 <애프터 루시아>(2012)는 제65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았다. 네 번째 장편 <크로닉>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최우수각본상을 거머쥐었다. <크로닉>은 헌신적인 간병인 데이빗(팀 로스)의 깊은 슬픔과 고독을 간결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할머니의 투병이 연출 계기가 됐다고.
=할머니를 씻길 때마다 간호사는 가족들에게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내 가족의 사적인 행위를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돕는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간호사는 항상 환자들이 생각나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처럼 환자와 간병인의 관계를 밝게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내 생각에 그건 다 헛소리다.
-공간과 인물을 배치
환자와 간병인의 관계를 밝게 그리는 건 헛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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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의 현실과 사회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 전작과 달리 <산하고인>은 지아장커의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타오(자오타오)라는 여자와 그녀의 가족, 친구 등 주변 인물의 삶을 1999년과 2014년 그리고 2025년, 그러니까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며 그려낸다. 데뷔작 <플랫폼>(2000)부터 <임소요>(2002), <세계>(2006),<스틸 라이프>(2007), <24시티>(2008), <천주정>(2013) 그리고 <산하고인>까지 15년 동안 감독과 배우로 작업하고 있고, 부부이기도 한 지아장커 감독과 배우 자오타오는 <산하고인>을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산하고인>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아장커_전작 <천주정>을 찍고 난 뒤 감정 표현이 솔직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동안 영화를
“감정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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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연인과 그의 관능적인 딸. 한 커플의 휴양지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이 매혹적인 불청객들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섬 판텔레리아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아이 엠 러브>(2009)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비거 스플래시>는 21세기 이탈리안 시네마의 미학을 유려하게 펼쳐 보이는 영화다. 고전영화를 연상케 하는 우아함과 감각적인 영상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아이 엠 러브>에 이어 주연배우 틸다 스윈튼과 루카 구아다니노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다시금 확인하고, 영국 배우 레이프 파인즈를 재발견하는 영화다.
-<비거 스플래시>는 프랑스 감독 자크 드레의 영화 <수영장>(1969)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원작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소통의 어려움과 욕망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후회와 소유욕, 연민과 환상, 망상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다뤄보고
고전주의가 창조할 수 있는 새로움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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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를르슈 감독이 창조한 세계는 사랑이 충만하다. 올해 부산에 들고 온 신작 <(신)남과 여>도, 20주년 특별전 ‘내가 사랑한 프랑스영화’ 상영작인 <남과 여>(1966)도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신)남과 여>는 세계적인 영화음악 작곡가 앙투안 아벨라르(장 뒤자르댕)가 발리우드 영화음악 작업을 위해 찾은 인도에서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안나(엘자 질베르스테인)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1965년 도빌의 해변을 걷던 중 <남과 여>의 줄거리를 떠올린 것처럼 <(신)남과 여>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대해 다시 보여주고 싶었다. 유머를 섞어서 말이다.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니까.
-앙투안과 안나가 만나는 곳이 인도다. 인도로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가 뭔가.
=각각 짝이 있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사랑에는 제약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
“수줍음이 사랑의 가장 큰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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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드라이버>에서 어린 창녀(조디 포스터)를 착취하는 악덕 포주를 다시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비열한 거리>의 건달 찰리, <저수지의 개들>의 미스터 화이트, <펄프픽션>의 해결사 울프도 꽤 근사했다. 그래도 누군지 모르겠다면, <라스트 갓파더>에서 “영구”라고 외치던 영구 아버지 돈 카리니는 쉽게 기억날 것이다. 마틴 스코시즈와 아벨 페라라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가 창조한 어둠의 페르소나, 하비 카이틀이 <유스>를 들고 부산에 처음으로 당도했다.
<유스>는 오랜 친구 프레드(마이클 케인)와 믹(하비 카이틀)이 80살을 앞두고 알프스에 있는 고급 호텔에 휴가를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하비 카이틀이 연기한 믹은 빨리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백전노장 영화감독. 그가 <유스>에 출연하게 된 건 “파올로 소렌티노의 전작 <그레이트 뷰티>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소렌티노의 영화에 꼭 출연하고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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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 남자 형제만 두고 있는 여배우들이 네 자매를 연기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막내 역의 히로세 스즈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 오빠나 남동생이 있는 집에서 자랐다. 막연하게 자매들끼리 살면 이런 일들이 있겠구나 생각만 했는데, 이번 영화에 출연하며 실제로 그걸 경험해봤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특히 첫째와 둘째딸은 뭔가 부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첫째딸이 엄마에게 화내면 둘째가 언니에게 화내고. (웃음)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가족 안에서 자매들이 맡는 역할이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더라.”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네 자매 중 나가사와 마사미가 연기하는 둘째 요시노는 가장 감정의 폭이 넓은 인물이다.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한 영화라고. 그중에서도 요시노라는 캐릭터는 ‘생’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하시더라. 그걸 잘 표현해내는 게 이번 영화에서
“국경 넘어 영화로 소통하기를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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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자 첫 무협영화 <자객 섭은낭>은 21세기의 새로운 클래식으로 기억될 영화다. 당나라 시대, 누구보다 뛰어난 암살자이나 한때 사랑했던 남자를 죽여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섭은낭의 모습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무한한 상상의 자유를 느꼈다고 허우샤오시엔은 말한다. 더불어 이 대만 출신 거장의 무협영화는 리얼리스트로서의 그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자객 섭은낭>은 당신의 첫 무협영화다. 무협 장르의 영화를 준비하며 특별히 고민되었던 지점이 있나.
=내가 살아본 적이 없는 당나라 시대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표현해낼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다양한 서적을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당나라의 정치와 생활상을 자세히 묘사한 사마광의 <자치통감>이 도움이 됐다. <자객 섭은낭>을 준비하며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건 몇 글자 안 되는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인물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액션을 설계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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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오브 베스트. 올해 20주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게스트의 명단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안 시네마의 거장 허우샤오시엔부터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지아장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프랑스의 클로드 를르슈와 이탈리아의 루카 구아다니노까지, 아시아를 비롯해 21세기 시네마의 예술적 흐름을 주도하는 수많은 감독들이 부산을 찾았다. 하비 카이틀, 나가사와 마사미 등 영화제를 한층 빛나게 하는 배우들의 존재도 잊어서는 안 된다. ‘20년’이라는 시간에 걸맞은 무게감을 실어준 소중한 이들과의 만남을 전한다.
랑데부 인 BI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