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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조선시대 최고의 왕따는 허균이 아닐까 싶다.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것밖에 모르던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여행 중에 마주친 시비(詩碑)를 통해 그가 교산(蛟山), 그러니까 이무기 교자가 들어간 호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역적으로 처형되었으며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복권되지 않은 유일한 지식인·정치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그에 대한 관심이 몹시 치솟았다. 스스로 용이 못 된 이무기를 자처했고, 왕조 내내 용서할 수 없었던 대역죄인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일까.허균은 15∼16세기에 걸쳐 선조와 광해군대를 살았고 고려시대 이래 대대로 문장가를 배출한 집안의 후예였다. 아버지와 두 형, 그리고 누이 난설헌까지 아울러 오문장가라고 불렸으며 임진왜란 전후의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 대중국 외교사절단에 단골로 끼었다. 그때마다 책을 수천권씩 사들였다. 고도의 중앙집권적 지식국가에서 정치적 출세의 핵심 요소를 두루 갖춘 허균은, 그러나 소
왕따 이야기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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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강박에 시달리는 한국 로맨틱코미디
로맨틱코미디는 결투의 기록이다. 두 주인공이 옹알종알 닭살 돋는 대사만 나누어서는 이 장르가 유지될 수 없다. 둘은 서로를 쟁취하거나 거부하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고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야 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대부분의 커플들은 종전을 선언하거나 휴전을 맞는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로맨스는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회의 양성평등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다. 로맨틱코미디는 그중 정점에 위치한다. 비극적인 로맨스를 쓰기 위해 두 주인공들이 같은 위치에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로맨틱코미디는 다르다. 두 사람이 공정한 결투를 하기 위해서는 둘이 어느 정도 평등한 위치에 서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 탈레반 정권하의 아프가니스탄은 나중에 비극적 로맨스의 무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대를 무대로 한 아프가니스탄 버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듀나,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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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을 만큼 우리는 사진의 힘을 경험해왔다. 그러나 그 힘은 때로는 왜곡과 은폐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 함정을 피하지 못한다면 청맹과니보다 못하다. 세상을 똑바로 보는 사진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다큐멘터리 사진가 집단인 이미지프레스에는 ‘한장더’라는 메뉴가 있다. 그곳에는 김일성 초상 사진이 두대의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이 풍경은 사진마저 우상숭배를 받는 비인간화의 현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인즉 습기가 찬 전시물을 말리고 있는 일상의 한순간에 불과하다. 이미지프레스는 이런 함정을 피해 삶의 진실을 향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이미지프레스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멋진 사진만 보여주는 갤러리 사이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사진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의욕 넘치는 광장이며, 네트워크이다. 그래서 이미지프레스의 사진들은 현장에 가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등 세계의 현장을 누비는 사진들을 보고
사진은 힘이 세다, <이미지 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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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액션어드벤처 배급 코코캡콤 플랫폼언어 일어 음성/ 한글자막한때 심복이었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반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목숨을 잃은 ‘혼노지의 변’의 현장에서 PS2를 대표하는 게임 라인업의 하나인 <귀무자> 시리즈의 최종편 <귀무자3>는 시작된다. 오다 노부나가와 마지막 대결을 벌이려던 1582년 일본의 사무라이 아케치 사마노스케(금성무)와 갑자기 나타나 파리를 지옥으로 만든 환마들에 맞서던 직업군인 잭 블랑(장 르노)은 알 수 없는 빛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서로의 시간과 장소를 맞바꾸게 된다.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500년을 사이에 둔 두 주인공은 귀기가 서린 검을 뽑는다.<귀무자3>는 뛰어난 비주얼 퀄리티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타이틀. 최고의 컴퓨터그래픽 제전인 ‘시그래프’의 2000년 최우수상을 차지했던 ‘ROBOT’ 제작진의 솜씨와 견자단(<블레이드2> <영웅>으로 유명한)의 무술지도로 그려진 오프닝 동영
참신하거나, 또는 불경하거나, <귀무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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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남자가 군대에 다녀오는 우리나라에 이상하게 군대를 소재로 한 만화를 찾기 힘들었다. ‘전쟁’만화가 아니라 ‘군대’만화 말이다. 전쟁만화로 폭을 넓혀도 제대로 된 만화를 찾기 힘들다. 60∼70년대에 활약한 이근철의 여러 작품이나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한 차형의 작품, 그리고 정운경의 <진진돌이> 같은 작품을 제외하면, 전쟁만화는 많지 않다. <남벌>(이현세)을 전쟁만화라 우기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판타지만화에 가까우니 생략. 병영을 소재로 한 만화로 박호성의 <찌그다시의 병영노래>, 민경태의 <빤빠리 선착순> 정도가 있다. 젊은 나이에 사회와 격리되고, 전혀 낯선 공동체에 들어가 생활한다는 이 흥미로운 소재를 나병재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의 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기서 ‘상식의 선’이란 있을 법한 이야기, 철저한 시각적 고증, 밉지 않은 과장, 동의할 수 있는 욕망 등이다.줄거리는 간단하다. 평범하게 살아온 대학생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란 말이지, 나병재의 <굳(Good)세월아 군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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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시옹, <오디오-비전>(L’audio-vision)우리는 영화를 ‘보러’ 간다고 말하지 ‘들으러’ 간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한 보다가 놓친 이미지를 아쉬워할지언정 미처 듣지 못하고 무심결에 흘려넘긴 소리 때문에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분명 영화는 시청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매체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처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여 기억하게 된다. 또는 무언가를 귀기울여 듣는다고는 해도 대개의 경우 말(parole)에 집중하게 마련이다.1990년에 초판이 나온 <오디오-비전>은 <영화와 소리>에 이어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미셸 시옹의 주저 가운데 하나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책은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청각적-시각적 경험, 특히 시옹이 ‘시청각적 계약’이라고 부르는 바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제공하고 있다. 간혹 심리학적 용어들이 눈에 띄기는 하나, 엄격한 인지심리학적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기보다는 시옹의 다분히 직
‘영화듣기’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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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면 하는 놈들이 기어코 일을 쳤다. 반민특위가 친일잔당들에 의해 습격을 받고 와해되었을 때는 이만큼 분했겠지? 12·12을 망쳤을 때도, 5·17을 당했을 때도 이렇게 참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유신의 어두운 터널 끝에 살짝 비친 하나의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하던 민주주의에 대한 꿈이 짓밟힌 것과 더딘 걸음을 하는 첫돌을 갓 지낸 늦둥이가 내 눈앞에서 못된 놈들의 칼을 맞은 것이 어찌 같을 수 있으랴.놈들은 엄청난 거사에 성공했다고 피묻은 칼을 들고 희희낙락이다. 올해가 갑신년이라며 갑신정변이라 불러달랜다. 아아, 우리 역사가 어째서 이 지경이 되어 민주주의를 짓밟은 폭도들이 저리 함부로 이야기를 하는가? 근대화의 꿈과 좌절이 고스란히 담긴 갑신정변과 이 폭거를 같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역사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모독이다. 아, 그런데 갑신정변과 이번 일이 비슷한 점이 딱 하나 있다. 갑신정변이 주체적 역량의 부족과 외세의 개입 때문에 ‘3일 천하’로 끝났다면, 3월12일의
갑신정변이라굽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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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집사람’이고, 남자는 ‘바깥양반’이라고 부른다. 수십만년의 인류 진화 과정을 통해서 여자는 집안을 책임지는 ‘집사람’이 됐고, 남자는 사회를 구성하는 실세를 가진 ‘바깥양반’이 되면서 여자는 집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오늘날 고질적인 사회적 불평등을 감수하고 살아가야 하는 슬픈 존재가 되고 말았다. 여자들이 집안일에 일생을 헌신하는 동안 남자들은 정치, 경제, 종교, 교육, 군사, 역사를 장악하고 부계사회를 제도화하면서 혈통에 권리까지 독점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한 집안의 족보는 물론이고 재산도 아버지에서 아들로 남자들끼리 물려주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세상은 남성들의 것이며 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차라리 한채의 집, 그 이상의 의미도, 권리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여자가 ‘집사람’으로 사회적 지위가 퇴화하게 된 이유는 모두 ‘내 새끼’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알다시피, 생물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포유류의 새끼들은 어미의
[김형태의 생각도감] 집15 - [집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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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얘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다. <문학의 밤>을 떠올리는 일은- 이를테면 남자들끼리 몰려간 커피숍에서 <우유>를 시키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령 그것은 연미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든지, 동원예비군훈련에 바비 인형을 가지고 가는 일과도 흡사하다. 저기… 이게 뭡니까? 이건… <문학의 밤>입니다. 뭐랄까, 그런 기분이다.좀 오래된 얘기 같지만, 그러나 확실히, 옛날엔 <문학의 밤>이란 것이 있었다. 무릇 세상엔 여러 가지 밤이 있겠지만, 이보다 복잡한 기분의 밤은 없을 거란 생각이다. 묵묵히 한잔의 우유를 마시며, 나는 <문학의 밤>을 떠올린다. 마치 바나나와 딸기와, 또 초코 맛의 우유가 나오기도 전의- 오래된 옛날 같다. 어쩌면 그것은, 이미 바다 속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의 행사였는지도 모른다. 검은콩 우유를 마시는 당신이라면, 영원히 그 물속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래서다.나는 그래서 시를 썼다. 이
세상에나, 문학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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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흑백 101분감독 정진우 출연 신성일, 문희, 트위스트 김EBS 3월21일(일) 밤 11시10분제3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문희)제10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출품한국영화의 1기 전성시대였던 1960년대, 요즘 세대들에겐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 시대를 구가한 빛나는 여배우 트로이카. 그 트로이카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 한 작품이 바로 정진우 감독의 <초우>이다. 이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은 문희는 1965년 이만희 감독의 <흑맥>으로 데뷔했으며, 1966년 김수용 감독의 <유정>으로 데뷔한 남정임, 1967년 김수용 감독의 <안개>로 신인상을 안은 윤정희와 함께 바야흐로 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구축한다.<초우>는 또한 196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신성일-엄앵란 커플을 탄생시켰던 <맨발의 청춘>과 함께 1960년대 최고의 걸작 청춘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정진우 감독은 한국 액션영
여배우 트로이카의 탄생, <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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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3년감독·출연 마이클 무어MBC 3월20일(토) 밤 11시10분폭력에 중독된 미국사회에 던지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1999년 4월20일, 컬럼바인 고교에서 끔찍한 총격사건이 일어난다. 평소 ‘트렌치코트 마피아’라고 불리던 에릭과 딜란이 900여발의 총알을 날려 학생 열둘에 교사 한명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1시간 전, 클린턴 대통령은 코소보 전역에 걸쳐 미군 대공습을 발표했다. 누구의 책임일까.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마이클 무어는 무작정 록히드 마틴사를 찾아간다.플란다스의 개 2001년감독 봉준호 출연 배두나SBS 3월21일(일) 밤 11시45분봉준호 감독이 만든 블랙코미디. 배두나 등이 발랄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인문대 대학원생 출신 고윤주. 다행히 아내와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고는 있는 행복한 가장이지만 교수 자리가 나지 않아 매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게다가 그
[주말TV] 볼링 포 콜럼바인 / 플란다스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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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ma Roma 1962년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출연 안나 만냐니EBS 3월20일(토) 밤 11시‘청년’의 영화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다.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를 그렇게 불러도 좋을 것이다. 마르크시스트이자 시인, 소설가, 그리고 영화감독이었던 파졸리니는 특정 유파에 묶이기보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했다. 감독의 대표작으로는 예수의 인간적 모습을 부각한 <마태복음>과 한 젊은이의 성적 모험, 권력관계에 관한 통찰을 담은 <테오라마>, 그리고 추문의 영화로 유명한 <살로, 소돔의 120일>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을 통해 파졸리니는 반파시즘, 동성애에 관한 집착, 종교적 재해석을 스크린의 세계로 초대했다. <맘마로마>는 파졸리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파졸리니 감독이 비단 영화적 추문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중세예술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을 읽을 수 있다.맘마로마는 포주인 카르미네 밑
촘촘하게 구축된 파졸리니적 요소, <맘마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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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TV를 틀어놓고 화면을 보지 않은 채 흘러나오는 소리만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화려한 스타군을 등장인물로 가진 드라마의 경우에 인물들의 대사를 귀로만 수용하다 보면 그 단순성과 유아스러움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가 과연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사하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 어떤 스타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안이한 시청 상태로 들어간다. 발음이 분명치 않고 대사조차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라도 그 탤런트가 몇번 얼굴이 드러나 내게 눈으로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그 청각적인 껄끄러움을 참아내며 그가 우리에게 편안한 연기를 선사해줄 날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키우게 된다.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결코 ‘멀티’미디어의 시대가 아니다. 미디어 세계의 왕처럼 군림하는 텔레비전은 ‘시각’이라는 감각을 빼고 나면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시각편식증에 걸려버린 시청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TV 광고 화면들의 한컷 한컷을
낭독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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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걸’(jersey girl),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뉴요커들이 누군가를 향해 촌스럽다는 조소를 보내기 위해 곧잘 사용한다는 속어. 하지만 지난 3월4일, 한번도 뉴저지를 떠나본 적 없는 그곳 출신의 케빈 스미스는 <저지걸>이라는 제목으로 6번째 장편영화를 들고 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시사회를 열었다. 데뷔 시절 그의 영화 전력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또 한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조롱 섞인 맞대응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케빈 스미스는 의외로 진지하다.
2000년, TV만화시리즈 <클라커즈>(그의 1994년 장편 데뷔작 <클라커즈>에서 상황과 인물들을 가져왔다)의 각본과 프로듀서를 맡고 있던 케빈 스미스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누워 있는 아내와 두달 된 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만약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 혼자 딸을 키운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현지보고] 케빈 스미스의 6번째 장편 <저지걸> 월드 프리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