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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지기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부 동반 모임이다. 거기서 누군가 게임을 제안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모두의 핸드폰을 공유할 것. 이들은 정말 서로에게 어떤 비밀도 숨기지 않는 끈끈한 사이였을까. 친구 및 부부 사이의 신뢰가 깨지기 직전의 상황에서 유해진이 연기하는 변호사 태수와 윤경호가 연기하는 전직 교사 영배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언급할 수 없는 이유로 다른 이들보다 좀더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는 인물들이다. 비밀이 드러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중년 부부의 진실게임 현장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나간 연기는 유해진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탁구를 치듯 주거니 받거니 한” 호흡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과연 이들은 자신의 비밀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을까.
=유해진_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덩치 큰 영화들과는 달랐다. 사람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블랙코미디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우디 앨런 영화 같기도 하고. 내가 맡은 태수는 변호사인데 ‘내가 변호사라는 역할에 괜찮을까?
<완벽한 타인> 유해진·윤경호 - 쉼표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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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재규 감독의 영화 <완벽한 타인>은 성공과 명예를 적당히 거머쥔 중년의 친구 부부들이 모여서 위험한 게임을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서로의 핸드폰에 담긴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하는 게임인데 현대인의 사생활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핸드폰을 통해 그동안 믿어왔던 인간관계가 서서히 무너지거나 혹은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미묘한 심리전을 펼치며 진실을 감추려 애쓰는 유해진, 염정아, 이서진, 송하윤, 조진웅, 김지수, 윤경호의 연기는 팽팽하게 맞서기보다 능숙하게 밀고 당기는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와 드라마, 각기 다른 분야에서 장기를 뽐내던 배우들이 함께 모여 서서히 드러내는 관계의 진실이 궁금하다면 배우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완벽한 타인> 유해진·염정아·이서진·송하윤·조진웅·김지수·윤경호 - 앙상블의 필수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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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의도를 지켜내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미쓰백>의 강가미 프로듀서는 최종 완성된 영화보다 “장르적인 느낌이 강했던” 시나리오 초고를 모니터링해주기 위해서 읽었다가, 내용이 너무 좋아서 준비하던 다른 작품 대신 이 영화를 프로듀서 입봉작으로 맡게 됐다. 그녀가 합류한 이후 이지원 감독과 의논하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바는 “장르의 테두리 안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성 있는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며 시나리오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촬영 들어가기 한달 전에야 투자사가 결정되는 등 제작 여건이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그녀는 ‘제목이 코미디영화 같다’, ‘<아저씨>의 아류 아니냐’ 등 수많은 의견으로부터 이지원 감독이 시나리오를 흔들림 없이 완성할 수 있도록 지켜내야 했다. 그러면서 강가미 프로듀서는 여러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두고 보십시오. 나중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미쓰백’이 될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 합류하기 전부터
<미쓰백> 강가미 프로듀서 - 진심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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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펭귄 하이웨이>를 연출한 이시다 히로야스 감독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실제로 만 30살인 그는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감독 중 하나다. 그는 첫 장편 연출작 <펭귄 하이웨이>에 대해 막힘없이 답하고, 확실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펭귄 하이웨이>의 아오야마(기타 가나)는 순수함과 과학적 사고력을 동시에 갖춘 11살 소년이다. 그가 사는 마을에 난데없이 펭귄들이 출몰하는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자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아오야마는 친구들과 함께 미스터리를 추적해간다. 이 작품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등을 쓴 모리미 도미히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아오야마와 그가 좋아하는 미스터리한 치과 누나(아오이 유우)의 캐릭터에 매료됐다. 무엇보다 소년의 ‘호기심’에 대한 부분이 정말 좋았다. 어른이 되면 앎의 기쁨을 많이 잊게 되지 않나. 이 소년은 무언가를 지나치
<펭귄 하이웨이> 이시다 히로야스 감독 - 일본 애니메이션의 젊은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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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조·단역 작품도 없이, 김시아는 스크린 데뷔작인 <미쓰백>으로 존재를 알려왔다. 방치와 폭력을 일삼는 아동학대의 음지에서 미쓰백(한지민)의 손을 잡고 뛰쳐나온 아이 지은이 그의 생애 첫 역할이다. 올해 11살. 한없이 유순한 인상이지만, 무표정에선 일찍 철든 아이의 근심과 결연함이 묻어난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인 데뷔작에 이어 굵직한 차기작 행보까지 전해 듣고 나니, 행여 너무 빨리 두각을 드러내는 것 같아 노파심이 일었다. 호들갑을 떠는 기자에게 김시아는 “평생 연기를 하고 싶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차분한 답변을 전했다.
-600:1의 경쟁률을 뚫었다는 오디션 과정이 궁금하다.
=<미쓰백> 오디션만 여러 차례 봤다. 부분적으로 시나리오를 주셔서 연습해가는 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받았을 땐, 오디션인 줄 알고 준비해갔는데 합격 소식을 알려주려고 부르신 거였다. 엄청 좋았다!
-아동학대의 당사자를 연기해야 했는데, 심적인 부담감을
<미쓰백> 김시아 - 완벽한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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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과 크리처가 만났을 때의 신선한 긴장감이 반가웠다.” 현빈의 말대로 <창궐>의 조선은 쇠약해진 왕권을 노리는 신하들과, 원인 모를 야귀떼의 공격으로 팽팽한 긴장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연기한 이청은 청나라에서 장안의 호걸로 이름을 날린 뒤 조선으로 돌아온 왕자다. <공조>(2016)에서 이미 그의 재능을 실감한 바 있던 김성훈 감독은 일찍부터 현빈을 적임자로 내다봤다. 그래서일까. <창궐> 속 이청은 현빈의 매력을 적재적소에서 영리하게 펼쳐 보인다. 역모를 꿈꾸는 김자준(장동건)에 대적하는 가운데, 이청은 능청스러운 입담과 함께 날렵한 액션을 선보이고, 이내 소명으로 일깨워진 반듯한 눈을 빛낸다. 피와 살점이 튀어오르는 전장 속에서도 조선의 왕자는 청초한 기운을 잃는 법이 없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잡혀간 인조의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이야기처럼 보인다. 역사가 다소 비극적이었던 것에 반해 <창궐>의
<창궐> 현빈 - 힘과 선의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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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야귀’(夜鬼)가 조선의 밤을 뒤덮는다. 왕권이 위태로워진 왕과 그의 아들, 그리고 야귀들의 틈을 비집고 나타나 권력을 쥐어보려는 자들이 맞서 싸운다. 영화 <창궐>에서 배우 장동건이 맡은 역할은 선도 악도 아닌 ‘나라’만을 생각하는 병조판서 김자준. 그는 야귀들을 무찌르는 이청(현빈)에 맞서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과연 누구의 편일까.
-한복 입는 역할을 맡은 게 드라마 <일지매> 이후 25년 만이라고.
=당시 MBC 공채 탤런트로 입사하고 두 번째 작품이었던 터라,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일지매>를 찍고 나서 연기를 평생 하려면 사극은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웃음) 이후 결혼식 폐백 사진 찍을 때도 한복이 안 어울리더라. 이번에는 많은 고민 끝에 분장 테스트를 해봤는데 이질감이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김성훈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김자준을 단순한 악역으로
<창궐> 장동건 - 안타고니스트의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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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영화보다는 새로운 조합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액션영화가 목표다.” <창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올해 초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씨네21> 1138호 한국영화 톱 프로젝트 16 - <창궐> 김성훈 감독, “액션의 힘을 최대한 보여준다” 기사 참조). 그가 말한 대로 <창궐>은 화끈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지향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역병처럼 불어닥친 야귀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무사들의 이야기. 그런데 화려한 액션보다 더 시선을 잡아끄는 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본 적 없던 장동건과 현빈의 조합이다. 두 사람이 <창궐>로 만나기까지 최근 맡아왔던 캐릭터의 결이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는 점도 이번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현빈과 장동건의 에너지가 <창궐>을 통해 어떻게 다시 한번 폭발하는지 지켜보자.
<창궐> 장동건·현빈 - 에너지라는 것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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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제8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여름이 가기 전에> <미국인 친구> 등을 연출한 성지혜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로 합류했다. 그는 중화권 영화를 담당한다. 프로그래머 채용 면접 당시 “유럽쪽으로 지원하지 그랬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예전부터 시네필로서 자신의 가슴을 떨리게 한 영화는 허우샤오시엔, 왕가위 등 중화권 감독의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열혈남아>(1988) 같은 영화는 100번씩 보고 모든 장면과 대사를 외웠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난 영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관심사는 문득 중국어에 관심이 생겨 학원에 다니다 중국을 오가는 것으로 이어졌고, 아예 2016년부터 베이징영화아카데미에서 방문학자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베이징에 갔다가 정말 기절할 뻔했다. (웃음) 젊은 사람들의 태도가 매우 개방적이다.” 지금 중국인들이 좋아하
성지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 - 중국 상업영화의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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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윤재호 감독의 <뷰티풀 데이즈>(2017)는 이나영이 6년의 공백을 깨고 선택한 영화다. 탈북 여성에 다 큰 아들을 둔 엄마 역할. 악질 탈북 브로커를 만나 고생하는 10대, 나이 많은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 시골에서 가정을 꾸리는 20대, 그리고 서울에서 술집을 운영하며 애인과 새 삶을 사는 30대의 현재까지, 캐릭터의 긴 역사도 소화해야 했다. 작품에 대한 혹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작품이다. 고정된 이미지에 갇히길 거부하며 늘 과감한 선택을 해온 이나영은 <뷰티풀 데이즈>에서도 전에 본 적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빨갛게 머리를 염색하고 빨간색 가죽 코트를 입고 아들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엄마’ 이나영의 잔상은 꽤 깊다. 부산영화제가 개막하기 전, 서울에서 미리 이나영을 만났다.
-<씨네21>과의 인터뷰는 물론 인터뷰 자체가 오랜만이다.
=언제가 마
<뷰티풀 데이즈> 배우 이나영, "이야기와 캐릭터에 설득됐다면 그 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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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도래한 가을 속에 쌍을 이루는 서로 다른 기행이 있다. 장우진 감독은 <춘천, 춘천>(2016)에서 20대 끝자락의 피로와 권태로 방황하는 청년 지현(우지현)과, 서울에서의 역할로부터 도피해 짧은 여행에 나선 중년의 커플 흥주(양흥주)·세랑(이세랑)의 이야기가 ‘데칼코마니’ 같다고 말한다. 춘천행 열차에 몸을 싣는 세 인물이 안개처럼 서서히 흩어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덧 선명한 우울과 고독을 대면하게 된다. 2014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했던 데뷔작 <새출발>(2014)에서 시작해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던 <춘천, 춘천> 그리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겨울밤에>(2018)까지 장우진 감독은 지금껏 세편의 영화에서 조금씩 형식적 변주를 거듭해온 주목받는 감독이다. 영화제 순방으로 바빴던 <춘천, 춘천>의 개봉을 앞두고 만나는 자리
<춘천, 춘천> 장우진 감독 - 아름답고 지루한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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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쑥한 청춘 스타의 얼굴인 줄 알았더니, <춘천, 춘천>에서 하릴없이 호반의 도시를 배회하는 ‘지현’을 보면서 그의 타고난 쓸쓸함도 발견하게 됐다. 장우진 감독의 <새출발>로 스크린에 데뷔해 <춘천, 춘천>이 개봉관에 당도하기까지 쉼 없이 일해온 그는, 그사이 명필름랩 1기로 입성해 내실을 다졌다. <너와 극장에서> <환절기> 같은 독립영화 기대작들에서도 우지현은 꾸며놓는 대로 어울리고 편안한 배우였다. “얼굴이 많다”라는 평가를 들을 때 가장 즐겁다는 그에게서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한 배우의 지혜가 묻어났다.
-<춘천, 춘천>의 지현은 어떤 인물인가.
=장우진 감독의 전작 <새출발>의 연장선 안에 있는 캐릭터다. 표면적으로는 취업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모든 것이 유예된 상태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들을 자꾸 잃어버리고 있다는 슬픔이 핵심적이라고 봤다. 지현의 미래가
<춘천, 춘천> 우지현 - 풍경과 조응하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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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처럼 접근하자.” <암수살인>의 이봉환 미술감독이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매료됐던 김형민 형사(김윤석)와 살인범 강태오(주지훈)의 팽팽한 두뇌 싸움은, 말 그대로 사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져야 했다. 일례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교도소의 수사 접견실은 지금은 폐허가 된 건물인 부산의 옛 사상경찰서 1층에 세트를 지었다. 2층에는 형사과 세트를 지었다. “진짜 접견실을 가볼 수 없기 때문에 자료 수집차 교도소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거의 다 훑어봤다.” 40석 정도의 형사과 책상을 만들 때도 “성격상 엇비슷하게 묘사하는 걸 견디지 못해” 40명의 캐릭터를 상상하며 각자의 성향에 맞는 책상 디자인을 모두 달리 꾸며놨다. 형민이 태오가 던져준 단서를 좇다가 결정적 증거를 포착하는 유치장 창고 장면도 의도치 않게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 경우다. 형민의 실제 모델이었던 김정수 형사가 단서를 발견하게 된 것도 실제로 유치장 창고라는 걸 알게 된 김태균 감독이 그 장면을 유
<암수살인> 이봉환 미술감독 - 전면에 드러나지 않되 진짜처럼 보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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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했네. (웃음)” 차지현 AD406 대표와 인터뷰 하기 전에 그의 친동생인 배우 차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차태현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형이 제작자로서 충무로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차지현 대표는 방송 음향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충무로에 들어가 창립작 <미확인 동영상: 절대클릭금지>(2012)를 시작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끝까지 간다>(2013), <사랑하기 때문에> (2016), <반드시 잡는다>(2017) 등 개성 있는 영화들을 제작해왔다. 그런 그가 올해 제작한 영화 <목격자>는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 등 맹수들이 즐비했던 올해 여름 시장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252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모으며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차 대표를 만나 ‘배우 차태현의 형’이
<목격자> 제작한 차지현 AD406 대표, "여름 언제라도 개봉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