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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터질 것 같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의연해 보였던 민홍남 감독이 대화를 마치자마자 남긴 말이었다. <부산행> <염력> <반도> 등 연상호 감독 작품의 조감독 출신인 그는 처음으로 감독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제작보고회와 인터뷰에 담긴 애정 어린 답변에는 이제 막 자기만의 요새를 처음 완성한 사람의 설렘과 걱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가 이번 작품을 맡게 된 건 토속신앙과 가족 미스터리의 결합이 새로운 화학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선산의 의미를 잘 아는 중장년층부터 이 단어와 친하진 않지만 미스터리 스릴러에 장르적 친밀도가 높은 어린 세대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로 끌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명확하고 노골적으로 던지는 작품이라는 점이 좋았다.” 첫 시리즈 작품을 앞두고 걱정도 앞섰다. 같은 패턴, 비슷한 색깔의 작품으로 한정되지 않도록 차별점을 생각하는 데 오랜 공을
[인터뷰] 기괴하고 기묘하게, ‘선산’ 민홍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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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연상호 감독이 만들어온 이야기는 ‘가족 드라마’라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부산행>과 <염력>의 주인공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였고, <반도>와 <정이>의 센티멘털은 모녀 관계에서 비롯했으며 <괴이>의 출발은 두 가족 이야기였다. 제목부터 짐작 가능하듯 <선산> 역시 연상호의 가족 드라마다. 다만 전작들과 달리 <선산>은 연상호가 최초로 만든 “가족 자체가 주제”인 이야기다. “한국의 가족엔 양가적 속성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집안의 선산 때문에 가족끼리 싸움이 났다는 이야길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가족은 언제나 안정된 사랑만을 선사한다’는 사고도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에 공존한다. <선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가족에 관한 사연을 안고 산다. 그런데 이들의 욕망과 동인은 기묘한 가족사가 기저에 작용해 일반적이지 않다.” 가족 이야기 외에도 <선산>엔 연상호의 흔적
[인터뷰] 이야기 책임지기, ‘선산’ 기획 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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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간강사로 일하며 전임교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하(김현주)의 나날은 좀처럼 평탄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억지로 교수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나 같은 목표를 둔 다른 시간강사와의 경쟁은 일상에 깃든 작은 희망까지 숨죽이게 만들고, 어쩌다 눈치챈 남편의 외도 사실은 서하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불안과 우울로 점철된 시간. 그로부터 도망칠 곳도 도망칠 용기도 없는 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런 서하에게 선산의 등장은 절대적이고 자극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작은아버지의 죽음으로 선산 상속자에 이름을 올리고, 행운과 거리가 멀었던 삶에 상속이라는 달콤한 단어는 욕망과 탐욕을 꿈틀거리게 한다. 하지만 그 길도 순탄친 않다. 예기치 못한 이복동생의 개입과 함께 가족 안에 숨겨진 비밀이 기괴하고 기묘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선산>의 기획과 각본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유산 상속을 가운데 둔 아슬아
[기획] 운명적인 질문 ‘선산’ 기획 연상호, 감독 민홍남, 배우 김현주, 박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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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란 배우는 “<시민덕희>의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가면서 두번 놀랐다”고 첫인상을 밝혔다. 처음에는 “지극히 평범한 개인이 보이스 피싱 총책을 검거했다는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니 “큰일을 해내겠다는 의도 없이 용기를 낸 인물이 존경스러웠고 그의 삶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를 더 놀라게 한 건 “중국 칭다오 파트가 영화적인 상상력이 발휘된 허구”라는 점이었다.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을 이렇게까지 있을 법하게 그려내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후반부에 빠져들었고 어느새 덕희가 되어 이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라미란이 파악한, 덕희를 덕희이게끔 하는 핵심은 “어떤 극한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붙들고 굳건하게 살아가는 씩씩함”이었다. 이어서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성격은 타고난 측면이 크고 싱글맘으로서 혼자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덕희가 어떻게 중국 칭다오로
[인터뷰] 상황에 빠져들기, '시민덕희' 배우 라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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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덕희>를 보자마자 영화가 “추진력 좋은” 주인공 덕희(라미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덕희는 영화 시작 5분 만에 보이스 피싱을 당한다.
= 내가 워낙 경주마 같은 스타일이기도 하고 본론부터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웃음) 전사나 플래시백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다. 평범한 시민이 보이스 피싱 총책을 잡는 과정, 덕희가 움직이는 동선 자체에서 큰 에너지가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퀀스가 바뀔 때마다 영화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길 바라면서 편집에 특히 신경 썼다.
- 귀에 콕 박히는 직설적인 대사들도 인상적이었다.
=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란 생각이 들 때 대사 하나가 모든 걸 해결해줄 때가 있다. “세상에 더러운 돈, 깨끗한 돈이 어디 있어?” “남는 장사 했잖아” 같은 총책(이무생)의 대사들을 쓰고 나서야 이 사람이 정말 돈밖에 모르는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한국에서의 덕희의 추
[인터뷰] 이 직진하는 영화는 나를 닮았다, ‘시민덕희’ 박영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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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피싱으로 전 재산을 날렸다는 사실에 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린 뒤 할 수 있는 말에는 무엇이 있을까.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 <시민덕희>의 덕희(라미란)는 바닥에 누운 채 이렇게 입을 뗀다. “이 개새끼… 어떻게 잡아요?” 이 한마디로 스타트를 끊은 <시민덕희>는 평범한 시민이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를 제 손으로 잡는 데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직진한다. 영화가 거듭 쏘아올리는 피해자들의 상처를 감싸는 대사는 덕희와 함께 내달리던 관객의 귀에 콕 박혀 잠시 그들을 멈추게 한다.
<시민덕희>는 2016년 경찰이 국제 보이스 피싱 조직의 총책을 검거하는 데 거의 모든 역할을 한 중년 여성 김성자씨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되 주인공이 직접 해외로 날아가 마무리한다는 설정을 붙여 규모를 키웠다. “자기 양심에 따라 용기 있게 행동하는” 실존 인물에 이끌린 박영주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고 “믿기지 않는 실화와 더없이 현실적인 허구에 감탄한” 라
[기획] 시작! 하고 돌아보지 않는다, 쉼 없는 직진 ‘시민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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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생각과 착잡한 심경을 먼 데 보는 눈짓에 일순 담아낸다. 배우 안재홍이 연기하는 사무엘의 얼굴에는 할 말을 하지 못해 삼키는 체념이 간혹 스친다. 연애도, 사랑도 가진 것에 은유되는 시대. 스타트업 사업이 망하고 택시 운전사로서의 삶까지 위태로워진 사무엘에게 남은 것은 일상을 메우는 가사와 직업 노동, 그 피로를 풀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뿐이다. 남들보다 사랑을 더 많이 가진 불륜 커플을 뒤쫓는 섹스리스 5년차 부부의 이야기를 6부작 드라마 <LTNS>는 적나라한 듯하면서 적절하게 감추는 묘미로 다룬다. 남의 집 거실을 훔쳐보는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부부의 생활을 표현하려 노력했다는 그의 말에서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단순한 이유를 다시금 떠올렸다. 어떤 타인의 삶을 엿보는 일은 때로 이렇게나 즐겁고 가끔 애잔하다.
- 출연 제안은 어떻게 이뤄졌고 작품에 합류하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나.
=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전고운 감독님이 전화를 주셨다. 수위
[기획] 전형성을 벗어났을 때, 'LTNS' 안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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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수록 더 재밌어요. 전 6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LTNS>의 일부 회차를 감상한 후기를 전하자 이솜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어질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예고했다. 호텔 프런트 직원인 우진은 불륜 남녀를 미행하고 협박하러 다니는 계획을 주도하는 캐릭터다. 설득력, 발표력, 기획력, 조직력. 만약 회사가 신입사원을 뽑는다면 우진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역량을 갖췄다. 이솜 또한 우진이 지닌 역량을 모두 가진 배우다. 이솜은 남다른 아이디어와 확신을 가지고 전에 없던 드라마에 완벽하게 융화돼 마찬가지로 전에 없던 캐릭터인 우진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낸다.
- <소공녀> 이후 6년 만에 전고운 감독과 재회했다. <소공녀> 때의 디렉팅과 달라진 점이 있던가.
= 여전한 부분이 훨씬 많았다. 리허설을 통해 장면을 만들어가는 방식도 그대로였고 신과 대사에 대해 본능적인 느낌을 찾아가는 방식도 전과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지독한 디렉팅을 하신다.
[기획] 상상 그 이상, 'LTNS' 이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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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NS>는 배우 이솜과 안재홍이 섹스리스 부부로 출연한다는 캐스팅 소식부터 화제를 모았다. 둘은 6년 전 큰 사랑을 받았던 독립영화 <소공녀>의 가난한 두 청춘, 미소와 한솔이었기 때문이다. <소공녀>의 가장 슬픈 장면은 두 연인이 보일러도 떼지 못하는 한겨울 단칸방에서 사랑을 나누려다 추위를 이기지 못해 단념하는 순간이다. 몸은 데워도 방과 지갑은 데울 수 없던 이들의 관계는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도 여전히 불발에 그친다. <LTNS>의 7년차 부부 우진(이솜)과 임박사무엘(안재홍) 사이엔 모든 페로몬이 소강됐다. 제목 그대로 ‘롱 타임 노 섹스’ 상황이다. 오랜 기간 곤궁을 면치 못하는 건 둘의 스킨십뿐만이 아니다. 사무엘의 사업 실패와 자가 주택의 집값 폭락 이후 두 부부는 살림마저 구차해졌다. 호텔 프런트에서 근무하며 불륜으로 의심되는 헤테로섹슈얼 커플의 인적사항을 수집하던 우진은 자신의 데스노트를 본격적으로 사업화하며 살 길을 도
[기획] 범죄와 섹스의 서스펜스, 'LTNS'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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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새삼스럽지만 분명히 밝히고 들어가야 하는 <LTNS>의 공적이 있다. <LTNS>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제목에 섹스를 명시(LTNS, Long Time No Sex)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시도는 여전히 발칙하기 그지없고, 관례를 깨뜨린 만큼 자연히 드라마의 내용에 거는 기대도 남다르게 만든다. 다행히 <LTNS>의 파격은 제목에 국한하지 않는다.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이 합심해 쓰고 연출한 <LTNS>엔 서로를 아끼고 원하지만 육체까진 바라지 않게 된 섹스리스 부부, 우진(이솜)과 임박사무엘(안재홍)이 등장한다. 이들은 가지각색의 불륜 커플을 미행하고 협박하며 수완을 올린다. 추리물에서 범죄극으로, 와중에 섹스 코미디까지. <LTNS>가 단행하는 여러 시도들은 눈여겨볼 만하고 제안하는 여러 논의들은 이야기될 만하다. 1월19일 티빙에서 1, 2화를 공개하고 3주에
[기획] Long Time No Sex, 'LTNS' 리뷰와 배우 이솜, 안재홍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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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시리즈 제작 편수가 많아지면서 캐스팅 소식만큼이나 편성 정보가 뜨거운 뉴스가 되고 있는 시대다. 이미 성공한 IP를 확장하는 시즌제 드라마부터 웹툰 원작 영상화 프로젝트까지 각자의 경쟁력을 갖춘 작품들이 각사의 신작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TV부터 OTT 플랫폼까지 주요 채널을 중심으로 공개가 확정된 시리즈를 정리해보았다.
[특집] 끝내주는 시리즈, 조만간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신작 시리즈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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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전고운 감독과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이 만나면 어떤 화학작용이 날까. 섬세한 감정과 다정한 분위기, 사회상을 반영한 동시대적 메시지까지 두 작품의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차분하고 따뜻한 작품을 상상하겠지만 두 감독은 그 기대를 유쾌한 박자로 어긋낸다. ‘Long time no see’의 약자인 ‘LTNS’를 ‘Long time no sex’로 전환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는 관계가 소원해진 부부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의 부부 활극을 그려낸다. 우연히 친구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우진은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큰돈을 내미는 친구를 보며 자신의 일터인 호텔에서 알게 된 비밀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불륜 커플의 뒤를 밟기 시작한 우진과 사무엘은 알게 모르게 누적해온 갈등의 골을 직면하고 케케묵은 감정을 풀어간다. 극적 소재로서 불륜을 다루는 <LTNS>는 기존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취한다. 이전까지 불륜을 하거나
[인터뷰] 본격 불륜 블랙코미디, 임대형, 전고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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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시청률 70%, 1971년부터 18년간 이어진 880회분 방송. 기록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드라마 <수사반장>의 역사가 프리퀄 <수사반장 1958>에서 새롭게 재해석된다. 1958년, 종남서의 박영한 형사(이제훈)를 중심으로 동료 형사 김상순(이동휘), 조경환(최우성), 서호정(윤현수)이 팀을 꾸려 부패 권력에 맞서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 사건별 수사 과정이 차례로 묘사될 예정이다. <수사반장 1958>의 메가폰은 영화 <공조> <창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이 쥐었다. 올해 상반기 방영을 목표로 촬영 중인 <수사반장 1958>에 관해 김성훈 감독은 기획 의도부터 섬세하게 구현된 수사실의 내부까지 설명을 이어나갔다.
- 드라마 작업을 해보니 영화와는 어떤 차이가 느껴지던가.
기본적인 제작 루틴이 달라 계속해서 적응해가는 중이다. <수사반장 1958>의 방영 시간은 대략 회당 1시간씩 10화, 총 1
[인터뷰] 히어로의 탄생, <수사반장 1958> 김성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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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공동 각본을 맡았던 한진원 감독이 저택과 반지하 집이 아닌,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자신의 첫 연출작으로 선보인다. <러닝메이트>는 ‘발기남’이라는 별명을 얻는 바람에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던 영진고 모범생 세훈(윤현수)이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친구 원대(최우성)의 러닝메이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머지않아 자신이 원대의 유일한 러닝메이트가 아니란 걸 알게 된 세훈은 ‘지역구 핵인싸’ 상현(이정식)과 손잡고 새판을 짠다. 한진원 감독은 연출은 처음이라 모든 게 부족했다며 겸손을 표하면서도 <러닝메이트>가 유망한 젊은 신인배우들의 보고와도 같은 작품이 될 거라 확신한다며 눈을 반짝였다.
- 2014년에 한 친구에게 이메일로 연재한 소설 <소라게>가 <러닝메이트>의 원안인 걸로 알고 있다.
여러 가지 포인트가 맞물려 시작된 이야기다. 연출부를 그만두고 다시 뭘 써볼까 작정하고 고민하던
[인터뷰] 말맛 나게, 속도감 있게, <러닝메이트> 한진원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