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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나르시시즘은 텅 비어간다?
허문영 | 저널비평 수준에서는 임 감독과 마찬가지로 홍상수 감독의 이번 영화도 전작보다 썩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정성일 홍상수 영화의 비평담론부터 논해야겠다. 여러 평을 읽다가 두 가지를 문득 깨달았다. 첫째, 홍상수 영화가 한국 영화문화 안에서 갖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학습효과다. 즉 그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많은 평들은 자기 눈으로 본 걸 믿지 않고 거의 관성적으로 남이 해온 말들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해하는 게임에 뛰어든다. 홍상수는 너무 가혹한 표현이지만 그들을 파블로프의 개처럼 훈련시켜서 몇개의 힌트를 던져주는 순간 헐떡거리면서 반복하고 별 의미없는 것에 집착하고 의미있는 것을 놓치게 한다. 둘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홍 감독의 전작과 매우 다르다. 그러나 너무 많은 평들이 전의 영화들과 다르지 않은 평을 써서, 영화제목을 지워놓고 무슨 영화에 관한 평인지 시험문제를 내고 싶을 정도다. 너무 많은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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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식 장르영화의 ‘축제’를 보고 싶다
허문영 | 상반기에 작품을 낸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삼인삼색 이야기로 넘어가자. <하류인생>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 감동이 없는 영화로 받아들였는데 딱 한번 감동이 마지막에 뜨는 자막이었다. “(태웅은) 1975년에 전업했다. 그의 인생이 맑아지는 조짐이 보였다.” 영화 속에서는 맑아지는 조짐이라곤 요만큼도 없고 서사는 파멸과정을 포섭할 수 없는 상황으로 영화를 몰고 간다. <취화선>부터 임권택 감독은 감정의 지속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는데 이 영화는 피한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감정의 지속이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각 시대의 시퀀스들이 전혀 정서적 연속성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인물이 이 풍경의 절대 주인일 수 없는 방식으로 시퀀스를 구성했다. 모든 시퀀스를 병풍화의 풍경들처럼 느꼈고 그 풍경이 잔혹했다. 그렇게 느끼다 자막을 보는 순간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비로소 알았다. 이 영화는 정서조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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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시간과 만나지 못하는 역사영화들
정성일 | 과거의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를 만나야 되는데, 끝내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온갖 꾀를 내고 있다. 이를테면, <실미도>는 전원 자폭으로 끝남으로써 영화를 누구의 사건도 아닌 과거로 만들고, 기괴하게도 <태극기…>는 현재에서 끝날 수 있었으면서도 굳이 과거로 회귀하여 끝나고, <아홉살 인생>은 70년대에 기어이 끝내야 됐다. <말죽거리…>도 주인공이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방식으로 끝났다. 그리고 한 감독의 데뷔작과 한 감독의 아흔아홉 번째 영화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효자동 이발사>는 머리가 다 자라면 다시 돌아오겠다며 끝나고 임권택 감독조차 “맑아지려는 조짐”을 말하며 끝난다.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묵시적 동의라도 한 것 같은, 시간을 정지시키려는 과거 시간에 대한 억압은 정말 이상하다.
김소영 | 나는 그것이 세트문화 때문인 것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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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관객 동원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정신을 수습할 즈음에, 한국영화 두편을 경쟁부문에 초대한 칸영화제가 절정으로 달려가는 즈음에, 후텁지근한 여름영화의 장마가 막 시작될 즈음에, <씨네21>의 김소영, 정성일, 허문영 편집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2004년 상반기 한국 영화문화의 사건과 징후들을 재구성해보기 위해서다. 세 사람은 1천만 영화가 남긴 파동을 곱씹었고, 3·12 탄핵의 이미지가 상반기 최고의 스펙터클이었다는 사실에 전율하기도 했다. 1990년대 기획영화의 새로운 후예를 짚었고 한꺼번에 신작을 낸 흥미로운 감독들의 도태와 성장을 논의했고 그럼에도 너무 많은 영화를 놓쳤음을 깨달았다. 부쩍 길어진 초여름 해에도 불구하고 장편영화 서너편의 러닝타임을 잡아먹은 세 사람의 대화는 밤 깊숙이 계속됐다. 편집장
애타게 자기 이미지를 찾아나선 한국영화
허문영 | 오늘이 5월17일이고 여름영화는 개봉 전이니 상반기를 회고할 적절한 시점이다. 일단 상반기에는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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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홈 온 더 레인지> Home on the Range
말하자면 : 음악이 흐르는 ‘천국의 밭’ 목장의 결투
감독 윌 핀, 존 샌포드 목소리 출연 랜디 퀘이드, 주디 덴치, 쿠바 구딩 주니어 수입·배급 브에나비스타
<돌려차기>
말하자면 : <슬램덩크>+<으랏차차 스모부>+태권도
감독 남상국 출연 김동완, 현빈, 조안 제작 씨네2000 배급 시네마서비스
<신부수업>
말하자면 : 함께할 때 서로에게 득될 게 없는 두 남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게 되기까지
감독 허인무 출연 권상우, 하지원 제작 기획시대 배급 코리아픽쳐스
<본 아이덴티티2> The Bourne Supremacy
말하자면 : 적이 불분명한 시대에 나온 고전적 스파이영화
감독 폴 그린그래스 출연 맷 데이먼, 프란카 포텐테 수입·배급 UIP
<시실리 2km>
말하자면 : 다이아몬드를 삼
2004 여름 개봉영화 올 가이드 [4] -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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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투 가이즈>
말하자면 : 이루어질 수 없는 ‘커플’ 톰과 제리가 한편이 돼 ‘공공의 적’을 상대로 벌이는 국가보안급 추격전
감독 박헌수 출연 박중훈, 차태현 제작 보람영화사 배급 코리아픽쳐스
<달마야, 서울가자>
말하자면 : 달마 3인방,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감독 육상효 출연 정진영, 신현준, 이원종, 이문식 제작 타이거픽처스, 씨네월드 배급 씨네월드
<착신아리> 着信アリ
말하자면 : 막 나가는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미이케 다카시의 공포영화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시바사키 고우, 쓰쓰츠미 신이치, 후키이시 가즈에 수입 한맥 배급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천년여우> 千年女優
말하자면 : 사라진 여배우, 그녀가 평생을 간직해온 첫사랑의 기억
감독 곤 사토시 수입 창엔터테인먼트 배급 무비즈엔터테인먼트
16일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2004 여름 개봉영화 올 가이드 [3] -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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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말하자면 : 바람이 되어 다시 찾아온 연인
감독 곽재용 출연 전지현, 장혁 제작 아이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 아이러브시네마
4일
<레이디킬러> The Ladykillers
말하자면 : 50년대 영국 코미디를 2000년대 미국식으로 바꿔놓은, 코언 형제의 범죄극
감독 에단 코언, 조엘 코언 출연 톰 행크스, 어마 P. 홀, 말론 웨이언스 수입·배급 브에나비스타
<투모로우> The Day After Tomorrow
말하자면 : 얼어붙은 뉴욕,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출연 데니스 퀘이드, 제이크 질렌할 수입·배급 폭스
5일
<메트레스 연인> Maitress
말하자면 : ‘그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묻는 성장드라마
감독 가시마 쓰토무 출연 미타무라 구니히코, 가와시마 나오미 수입·배급 미디어 소프
2004 여름 개봉영화 올 가이드 [2] -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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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 맨과 메리 제인, 슈렉과 피오나 부부, 호그와트의 귀여운 마법사들이 돌아오는 올 여름 극장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작년보다 더 크게 무리지은 호러영화들의 비명소리로 눈과 귀가 바빠질 듯하다. 스티븐 소머즈가 창조한 고딕 세계 <반 헬싱>의 몬스터 킬러 반 헬싱과 그의 적수들, 기예르모 델 토로의 그로테스크한 악마 헬보이, 안톤 후쿠아가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는 <킹 아더>의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들은 규모만으로 모든 것을 압도할 태세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이 원작인 <아이, 로봇>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의 <터미널>도 스케일로는 지지 않는다. 3개국 감독의 3가지 호러를 다시 묶어낸 박찬욱, 미이케 다카시, 프루트 챈의 <쓰리, 몬스터>와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를 비롯한 호러물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정통 호러에 가까운 <령>과 <인형사>, 연쇄살인을
2004 여름 개봉영화 올 가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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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 처음 <하류인생>을 볼 때는 액션장면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보니까 그리 많지 않더군요. 그래서 왜 착시를 일으켰나 생각해봤더니, 앞부분과 뒷부분에 굉장히 강한 액션장면을 딱 넣어놓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류인생> 액션장면 설계를 새롭게 하신 것 같은데요. 재룡이파가 쳐들어와서 벌어지는 미도극장 심야싸움은 정말 좋았습니다.
임권택 | 정말 사실감을 주는 한컷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이 보고 아 이거 진짜다 하는 그런 거. 그걸 찍어내기만 하면, 앞에 붙어 있든, 뒤에 붙어 있든 다찌마와 리 전체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거요. 처음에는 승우가 그런 실감나는 액션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판단해서 한컷이되 얼굴 보이는 장면은 승우로 찍다가, 안 보일 때는 가짜로 찍었어요. 그런데, 그걸 버리고 전부 다 승우가 했단 말이에요. 결정적으로 사실감을 주는 그런 컷이 필요했단 말이에요.
정성일 | 저는 처음에 영화 속 상
<하류인생> 혹은 임권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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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 영화를 찍는다는 문제만 갖고 얘길 하면, 이제 대부분의 한국 감독들에게 60년대는 사회적 공간이거나 상상적 공간이지, 경험한 공간은 아닙니다. 감독님이 1960년대를 다룰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류인생>을 보러오는 관객은 텔레비전이나 자료로만 알고 있을 텐데, 감독님께서 이 젊은 세대를 설득하기 위해 배려한 부분들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권택 | 이런 생각을 해요. 그 시대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책으로도 충분한 거예요. 60년대라는 시대를 찍을 때, 고증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단지, 건달이든 누구든 실제의 삶을 영화 안에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필요해진 거예요. 기왕이면 우리가 체험했던 실상, 그때의 생생한 모습을 충실히 함으로써 영화를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한 것이죠.
정성일 | 제가 <하류인생>에서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던 점 중 하나는 <족보>
<하류인생> 혹은 임권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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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 <하류인생>을 묻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에게 답하다
정성일 | 이렇게 시작을 하겠습니다. <취화선>을 만들고나서 이미 그때 <하류인생> 준비를 하고 계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하류인생>이 특별히 원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취화선 이후에 별 망설임 없이 바로 <하류인생>으로 넘어오게 된 것은 이 이야기에 끌리신 이유가 있으시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아니면 <하류인생> 이전에 준비한 것이 있으셨는지요. 아니 따로 준비한 그런 거는 없었고, <하류인생>은 지금 영화로 드러난 그런 얘기가 아니어도 한번은 꼭 해야지 하던 건데, 가령 이태원 사장 얘기며, 정일성 감독 얘기며, 우리가 살아왔던 얘기들을 잡담 비슷하게 하면서, 쭉 생각해오던 끝이니까 바로 하게 된 거지. 영화를 해야지 하는 결정은 <취화선> 끝나면서 했고.
임권택 | 맨 처음에 이 영화의 제목을 감독님께서는 <사회적
<하류인생> 혹은 임권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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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고 두려워했던 1960년대
왜 그러해야만 하는가? 내 질문은 여기서 시작한다. 생각해보니 신기하게도 임권택은 1971년 <잡초> 이후 두번 다시 1960년대를 다루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그 이후 4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멀리는 조선시대, 그러고난 다음 일제 강점하와 해방공간, 혹은 한국전쟁, 그러고나면 교묘하게도 언제나 그냥 동시대로 넘어왔다. 그가 현재와 맞닿아 있는 가장 가까운 과거까지 거슬러올라간 영화는 1970년대 그 어느 날 그렇게 무심코 시작하는 <창>뿐이다. 임권택은 그 시대를 하여튼 피하고 싶어했다. 어쩔 수 없이 영화 속에서 통과해야 할 때도 그것이 1960년대라는 그 어떤 지표도 지워버렸다(<아제아제 바라아제>). 그는 1960년대를 증오하거나, 혹은 두려워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시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 말이 정확하다. 이 영화는 1960년대를 끌어안은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 그 시대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하류인생> 혹은 임권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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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의 아흔아홉 번째 영화 <하류인생>
<취화선> 이후 만들어진 임권택 감독의 아흔아홉 번째 영화 <하류인생>은 돌아보지 않는다. 그의 전작들에 연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장처럼 사용됐던 형식들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그는 또다시 새로움을 추구한다. 언제나 임권택 감독의 세계 안에서 영화와 예술의 본질을 헤아려보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진심으로 이 너비를 해석하고 질문하면서 뒤쫓으려 한다. 정성들여 마련한 서문과 인터뷰를 통해 거장의 ‘지금’ 거처에 발을 디뎌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정성일/ 영화평론가나는 궁금했다. <취화선>을 만든 다음에 무슨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어떤 한계에 도전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거기서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 장승업의 삶을 통해 그 자신이 봉착한 예술적 괴로움과 여기에 이른 자신의 기나긴 시행착오를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럽게 펼쳐놓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혜원 김홍도나 추사 김
<하류인생> 혹은 임권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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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에게 필요한 것 하나, 데드라인
이 영화의 모티브로 인해 (특히 판타지로 전환된 개인의 기억이 주제라는 점에서) 왕가위의 예술가적 집착이 전보다 훨씬 강하게 드러나게 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완성 기한에 쫓기는 혼란스러운 작업 과정과 영화 속의 다른 부분들이 왕 감독에 대해서 우리에게 뭔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선 캐스팅에 관한 것이다. 장이모 감독이 자신의 ‘서투른’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수상 시도작(?)인 <영웅>을 만들기 위해 <화양연화>의 두 주인공 양조위와 장만옥을 빌려(?)갔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물론 왕가위 감독은 그 캐스팅의 의도를 간파했을 것이고, 이에 〈2046>을 위해 장쯔이와 공리는 물론이고 덩지에(董潔)에 이르기까지 장이모 감독과 작업했던 모든 여성 스타들을 되빌려오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는 이들 배우 모두로부터 장이모 감독이 이제까지 해낸 그 어떤 것보다 훨씬 훌륭한 연기를 이끌어냈다. 교
〈2046>은 아직도 작업중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