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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소품창고가 궁금했다. 저 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숨쉬고 있는 것일까. 먼지가 내려앉은 소품을 닦아내면 스크린에서 미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주르르 쏟아질 것 같았다. 먼저 남양주 태릉 소품실과 파주 소품창고를 찾았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두명의 소품지기를 그곳에서 만났다. 소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재를 들었더니 이번엔 과거가 궁금했다. 이어 남양주종합촬영소 소품센터를 찾았다. 한국영화 소품 역사의 산증인인 3명의 소품지기들은 소품에 얽힌 웃지 못할 비사를 기꺼이 들려줬다. 흔히 볼 수 없는 소품의 소유자들도 궁금했다. 골동품 차들을 개조하고 각종 유니폼과 총기 액세서리를 만든다는 두명의 소품지기를 또 만났다. 고맙게도 7명의 소품지기들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것 말고 그들의 보물창고를 개방해달라는 부탁에도 기꺼이 응했다. 시간과 기억을 머금은 소품, 아니 대품창고를 여기, 최초 공개한다.
세상 모든 물건이 여기에
소품창
남양주와 파주 소품창고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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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수 감독은 대학 다닐 때부터 가끔 시를 썼고, 김동기 음악감독은 거기에 곡을 붙여 노래를 했다고 한다. <삼거리극장>의 뮤지컬 장면들은 그처럼 오래된 호흡 때문인지 가사와 음악과 무대가 서로 떼어놓지 못할 천생연분으로 만난 듯하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하나의 색으로 녹아드는 삼원색의 판처럼 정신없는 와중에 하나가 되어버린다. 발랄하거나 처연하거나 허풍에 찬 가사를 직접 쓴 전계수 감독에게 어쩌다 이런 마술 같은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 한곡 한곡 코멘트를 부탁했다.
<밤의 유랑극단>
“피로 물든 만월의 밤은 다시 찾아와/ 죽은 혼령들의 차가운 심장을 두드리는 시간
무엇을 망설이느냐 때가 가까웠느니라/ 오늘밤 상상도 못할 끔찍한 공연을 계속하자
우린 모두 밤의 유랑극단/ 희극을 노래하는 비극의 자식들”
원래 오프닝 곡은 따로 있었지만 비오는 밤에 야외 뮤지컬 장면을 찍기가 힘들어서 뺐다. <밤의 유랑극단>이 오프닝처럼 되어버렸는데, 위협적
전계수 감독의 <삼거리극장> 뮤지컬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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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봐야 한다며 집을 나선 할머니를 찾아 삼거리극장까지 흘러든 소녀가 있다. 할머니 사진이 박힌 전단지를 돌리며 매표소에서 표도 팔던 그녀 소단이는 어느 밤 홀로 객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요란하게 차려입은 유랑극단의 혼령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쇼가 시작된다. 부천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관객을 만났고 11월24일에 개봉하는 <삼거리극장>은 쇼도 보고 노래도 듣고 무책임하게 황당한 이야기도 겪는 뮤지컬영화다. 삼거리극장 사장 우기남이 젊은 시절 만들었던 영화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 그 영화에 출연했고 지금은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극장에 붙어 있는 유령 배우들, 할머니를 찾아야만 하는 소단이. <삼거리극장>은 이러한 굵은 주춧돌 몇개를 놓아두고선 춤추듯 부유하듯 그 사이를 마구 오가는 영화다.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아도 틀림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뮤지컬영화의 역사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어떻게 이 느닷없는 영화가 튀어나왔을까. 이름도 범상치
주목할 만한 뮤지컬 <삼거리극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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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와 함께 마쓰리~
부드러운 감성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색다른 일본영화를 원한다면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괴수영화 시리즈 중 한편인 <고질라 대 메카고질라>부터 일본 요괴에 대한 총정리가 가능한 <요괴대전쟁>까지. SF와 액션으로 변주된 꿈과 모험의 세계.
리터너 Returner
야마자키 다카시 | 가네시로 다케시, 스즈키 안 | 2002년 | 118분
<올웨이즈: 3초메의 석양>을 연출한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의 2002년작. 2084년 우주생물 다그라의 침략으로 인류가 멸종의 위기에 처하자 밀리라는 소녀가 최초의 다그라를 말살하기 위해 2002년 과거로 돌아온다. 밀리는 우연히 미야모토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자신의 임무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한다. 미야모토는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암거래 시장에 잠입해 부정한 돈을 빼돌려주는 리터너다. 그는 어린 시절, 눈앞에서 친구가 암살당한 아픔을 갖고 있어 이를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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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판타지의 기묘한 변주
1회 일본영화제 개막작,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 연출한 <바이브레이터>의 정서가 마음에 들었던 관객이라면 귀가 솔깃할 작품들. <매목> <부드러운 생활> <얼굴> <리얼리즘 여관> 등의 작품들은 고독, 방황, 자아, 삶 등의 주제를 단조롭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한다. 일상 속의 결핍과 상처를 바라보고 조용히 응시하며, 노래하고 치유할 줄 아는 영화들.
매목 埋もれ木
오구리 고헤이 | 히다리 도키, 아사노 다다노부, 오쿠보 다카, 카렌 | 2005년 | 93분
이야기의 우연과 묘한 조화. 재일동포 2세인 오구리 고헤이 감독이 1996년 안성기가 출연한 영화 <잠자는 남자> 이후 연출한 9년 만의 신작. 여고생 3명은 릴레이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놀이를 하고 있다. 한 소녀의 이야기가 잠시 걸음을 멈춘 사이, 화면은 흑백으로 전환되고 한 마을의 ‘다른 이야기’가 얹혀진다. 이야기 안에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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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 펼쳐지는 꿈과 사랑의 세계. 11월15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주체 일본영상산업진흥기구(VIPO)·공동주최 메가박스, 일본문화청)가 열린다.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일본영화를 국내에 소개해왔던 메가박스일본영화제는 3회를 맞아 꿈과 사랑을 테마로 선정했다. ‘사랑과 청춘’이란 주제 아래, 한-일간 문화교류가 단절됐던 시기의 영화를 소개했던 1회, 시리즈물을 비롯한 일본의 다양한 장르영화를 상영했던 2회 등, 지난 영화제가 주로 과거 일본영화에 초점을 맞춰 이뤄졌던 것에 비하면, 이번 영화제는 무엇보다 동시대 일본영화를 소개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개·폐막작으로 선정된 <편지>와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모두 올해 10월과 11월에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들이며, 이 밖에도 상영작 18편이 모두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상영작 수는 지난해 45편에서 18편으로 크게 줄었지만, 일본영화의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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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서비스
-CGV 골드 클래스+롯데시네마 샤롯데관
영화 한편을 보더라도 특별하게 보고 싶다?! 국내 최초로 극장에 항공기의 퍼스트 클래스 개념을 도입한 CGV 골드 클래스에 이어 롯데시네마가 샤롯데관을 오픈하면서, 멀티플렉스들이 이른바 ‘명품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현재 상암, 용산, 오리, 관교 4곳에 위치한 CGV 골드 클래스와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안에 자리한 샤롯데관의 트레이드 마크는 이른바 침대형 좌석. 널찍한 크기에 180도 가까이 등받이 각도 조절이 가능한 침대형 좌석에는 영화를 보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이드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다. 영화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다면? 상영관 밖에 자리한 전용 라운지와 바에서 커피와 맥주 등을 무료로 즐기며 담소를 나누면 된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도 간단한 스낵과 와인을 제공받을 수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영 전에 미리 원하는 메뉴와 서빙 시간을 직원에게 말해두어야 한다는 것. 이 밖에도 영화
멀티플렉스에 가면 맞춤 서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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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서비스의 최전선 담당하는 멀티플렉스 스탭의 세계
영화는 배우를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영화 스탭에게 있다. 멀티플렉스 운영과 관리가 매니저와 슈퍼바이저의 몫이라면 고객과 직접 마주치고 매 순간 서비스를 감당하는 것 역시 영화관 스탭이다. 시급 3700~4400원, 야간근무시 원래 시급의 1.5배인 5500원, 영화는 공짜, 평균 근무시간 6시간, 주 5일 근무, 평균 연령 20∼23살, 대학생이나 휴학생, 여성 비율이 70~80%, 평균 근무기간 1년 이상, 사이트당 100~120명이 근무하는 멀티플렉스 스탭. “사람에 따라 가장 쉬울 수도, 가장 까다로울 수도 있는 아르바이트”라는 신기묘 슈퍼바이저의 말처럼 멀티플렉스 스탭은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슈퍼바이저와 스탭의 관계는 교생과 학생처럼 보인다. 10여명의 스탭을 한명의 슈퍼바이저가 담임을 맡아 관리하는 구조나 용모검사, 조회 같은 절차는 학교를 연상시킨다. 한창 바쁜 순간에는 슈퍼바이
관객 뒤에는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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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은 노회한 극장의 최후를 바라본다. 현실에서도 <안녕, 용문객잔>처럼 거대한 단관은 자취를 감췄고 멀티플렉스가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변하지 않은 건 영화에서 서로를 애타게 찾아 헤매던 다리가 불편한 여자매표원과 영사기사처럼 여전히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백몇십명의 스탭이 1만명의 손님을 상대하는 멀티플렉스의 하루는 쏜살같이 흘러간다. 관객은 스쳐가도 극장은 잠들지 않는다. 매점에서 땀범벅이 되고, 플로어에서 목이 뻐근하도록 인사를 해도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는 젊은 스탭들의 일상과 그들이 생각하는 멀티플렉스를 들여다보면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토토, 네가 영사실 일을 사랑했던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 네 일을 사랑하렴.”
오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쉴틈없는 멀티플렉스의 하루
“우리는 쉬지만 멀티플렉스는 잠들지 않는다”고 스탭들은 이야기한다.
멀티플렉스는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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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의한, 게임팬들을 위한 영화
크리스토프 강스가 <사일런트 힐>의 영화화를 꿈꾸었던 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프랑스에서 <늑대의 후예들>을 만들던 강스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순간 영화화 판권을 구매해야만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오랫동안 호러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진정으로 독창적인 이야기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사일런트 힐>을 플레이했을 때, 나는 이것이야말로 스크린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회사 고나미로부터 판권을 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스는 수많은 전화와 편지와 이메일을 고나미에 보냈지만 단 한번도 답신을 받을 수 없었다. 곧 두 번째 게임이 발매되었고, 전편보다 향상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게임은 다른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구미를 당기기 시작했다. 파라마운트, 미라맥스, 샘 레이미가 판권을 얻기 위해 달렸고, 톰 크루즈 역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고나미로부터
게임 또는 영화 <사일런트 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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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이제부터 수많은 괴생명체들을 물리치며 복잡한 지하 미로를 지나 잃어버린 딸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러니 지도를 미리 외워두세요. 기억력이 당신의 생명을 구할지도 모릅니다.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장이 팔린 동명 비디오 게임을 영화화한 <사일런트 힐>은 기이한 영상 체험이다. <늑대의 후예들>의 감독 크리스토퍼 강스와 <펄프 픽션>의 각본가 로저 에버리, <네이키드 런치>의 프로덕션디자이너 캐럴 스피어는 마치 게임을 하나하나 뜯어서 옮기듯 새로운 지옥을 창조해냈고, 영화는 전통적인 영화와 비디오 게임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듯하다. 게임을 닮은 영화, 혹은 영화를 닮은 게임. <사일런트 힐>의 세계를 살펴본다.
“게임 원작 영화를 보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이 게임기를 플레이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는 것과 같다. 내러티브 영화 예술의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상징이다.
게임 또는 영화 <사일런트 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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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자신의 리비도에 충실하라는 교훈극이다”
-재민의 약혼녀로 등장한 김정화를 비롯해서 재민의 어머니로 출연한 김화영은 배두나의 어머니이고, 아버지로 출연한 이승철은 이청아의 아버지다. 여기에 <굿로맨스>의 여주인공이었던 박미현, 임범 <한겨레> 전 기자, 촬영감독이자 영화사 대표인 최두영까지 우정출연해 카메오가 굉장히 많다.
=다들 분량이 많이 잘려서 죄송스럽다. 특별히 유명한 배우의 부모를 캐스팅하려던 건 아니었고, 어떻게 아는 사람을 통해 ‘배우’를 캐스팅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제작부장이 배두나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고 그 어머니까지 소개해줬다. 이승철 선생님은 김화영 선생님을 통해서 캐스팅했고. 저예산영화이다 보니 적은 분량으로 잠깐씩 출연하는 역할에 직업배우를 캐스팅해서 출연료를 지불하거나, 무턱대고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두영 대표는 사실 출연시켜주면 색보정을 공짜로 해주겠다기에 불렀는데, 바로 색보정 기사를 관두시고. (웃음) 상대적
문제적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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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아>는 독립장편영화?
적어도 2005년 12월 초 방문한 촬영현장의 상황으로는 그랬다. 애초의 제목이었던 <야만의 밤>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처절함이 거기 있었다. 연일 최저기온을 경신하던 겨울의 혹독한 초입이었고, 해가 지고 나면 사방에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야산에서 배우며 스탭들이 주섬주섬 땔감을 찾아 피워올린 모닥불이 유일한 난방도구였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의 태풍을 배경으로 하는 그날의 촬영분량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었지만, 수십명의 ‘강풍기 후원단’의 모금으로 마련한 강풍기는 드넓은 프레임에 광기어린 바람을 불어넣기엔 역부족이었다. 일주일은 족히 찍어야 하는 장면을 이틀 만에 마쳐야 했는데, 마지막 날에는 거짓말 같은 폭설이 온 산을 뒤덮었다. 필사적으로 눈을 치우던 끝에 결국은 전날 찍은 장면을 다시 찍어야 했다. 정상적인 사고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컷 수를 줄이고 악천후를 극복하느라 고심하던 제작진은 아래 위로 대여섯겹씩 중무
문제적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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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아니,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는 난감하다. 비유하자면 사회가 금지한 마약과 같다. 경험한 사람은 그것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고, 알고 있지만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까 두려워 발언을 삼가거나 에둘러 표현한다. 물론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다수다. 그래서 이송희일 감독은 꽤나 오랫동안 외로웠다. 1999년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첫 번째 단편 <언제나 일요일 같이>(1998)가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에서 상영된 지 8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게이감독’의 대표주자다. 그런데 그의 첫 번째 장편 <후회하지 않아>는 조금 다를 것 같다. 11월16일 개봉을 앞두고 미리 관객을 만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200석 규모의 상영관에서 3회에 걸쳐 상영되는 동안 평범한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고, 열렬하게 애정을 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난감한 소재를 둘러싼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좋은 의미
문제적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