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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통해 세상 보는 눈을 정해나가는 경우가 꽤 있다. 사형제도에 대한 견해도 그중 하나였는데 중학교 때 TV 주말의 명화를 본 날, 주인공이 살인을 저질렀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의 심판으로 다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찌나 울었는지 뱃살이 아파서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한참 세월이 지난 뒤 <데드 맨 워킹>이란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감독과 주연을 한데다 주제가 살인제도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표 끊고 들어갈 때의 기분은 약간 흥분상태였다. 드디어 저 파렴치한 살인범을 죽이느냐 마느냐,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이 핵심에 육박해가는 순간이 왔다. 아뿔싸, 삐리리∼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 ‘저 전화기의 주인은 지금 얼마나 미안해할까’ 생각하는 순간, “여보세요”라니? 김이 팍 샜지만 숀 펜의 연기력은 다시 한번 나를 영화에 몰입하도록 도와주었다. 마침내 그가 사형집행 호출을 받고
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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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즐길 시간은 없었지만, 듣자 하니 베를린영화제 시상식에서 조그만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부의 지원감축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나체로 식장에 뛰어들었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한 사내는 용케 초청장 없이는 못 들어가는 식장에까지 난입하여 핸드 마이크로 뭐라고 열심히 떠들어댔단다. 재미있는 것은 사회자의 반응이다. “당신의 주장이 뭔지 들어보겠다”며 식장에서 그 사내에게 몇분 동안 발언권을 주었다는 것이다.우리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기는 이보다 좀 힘들다. 골리앗 크레인 위에 올라가 150일을 농성해도 발언권이 안 생긴다. 차라리 그가 거기에 아무 주장없이 그냥 올라갔다면 어땠을까? 아마 신문은 벌써 이 기인의 기사를 실었을 것이다. 미용실 잡지는 이 기인의 부인을 인터뷰하고, TV 카메라는 속세를 떠난 고공의 철학을 비추었을 것이다. 기네스북에 오를 대기록을 가지고도 그가 매스컴의 버림을 받은 이유가 뭘까? 그가 거기에 ‘노동자’로서 주장을 갖고 올라갔기 때문이다.150일간의 농성도
노동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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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기 위해선 우선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 또 정리가 끝난 책상 위를 적신 헝겊으로 깨끗이 닦아주어야 한다. 왜?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뭐랄까 <편지>란 것은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산천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1급수의 반짝이는 수면 위에 여러 장의 편지지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펜을 든다. 유성보다는, 연필이 좋다. 컴퓨터의 도큐먼트와는 달리, 편지에서는 애당초 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지우고 고쳐도, 그 흔적이 종이의 지층 속에 어떤 식으로든 남게 마련이다(악력이 센 사람이라면, 그 속에 중생대 이구아노돈 정도의 화석을 남길 수도 있다). 그게 싫다면, 당신은 처음부터 모든 문장을 새로 써야만 한다. 결국 누구나, 심사, 숙고해야만 한다. 그러니 연필이 좋고, 또 연필은 2B 정도가 적당하다. 4H보다는 확실히 부드럽고, 4B에 비해선 뭐랄까 섬세하다. 이제 당신은 연필을 깎아야 한다. 그리고 육각의 모서리를 다듬으면서, 좋
여하튼, 편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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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학교 서울은 9일부터 11일간 서울 종로구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구로사와 기요시(黑澤淸) 감독 회고전을 개최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최근 세계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는 일본 감독 중 한 명. 한국에서는 지난해 개봉한 <도플갱어>가 첫 개봉 영화이지만 몇몇 영화제를 통해 상영된 바 있는 <큐어>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1980년대 초 <간다가와 음란전쟁> 등 로망 포르노로 영화 연출을 시작한 구로사와 감독은 <인간합격>, <위대한 환영>, <카리스마>, <회로>와 최근의 <밝은 미래> 등이 칸이나 베니스, 베를린 등의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이번 회고전에서는 ▲간다가와 음란전쟁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 등 초기의 로망 포르노와 ▲지옥의 경비원 ▲도어3 ▲큐어 ▲카리스마 ▲강령 등 공포 영화, 95~96년 연달아 만들어진 액션영화 연작 ▲'네멋대로 해라' 6부작이 선보인
문화학교 서울, 구로사와 기요시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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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곳에 살게 되었을까. 거대한 벌통 같은 철근 콘크리트 상자곽 속에서, 그야말로 꿀벌들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은 후일 최초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될 동네의 이름을 잠실(누에 잠蠶 집실室)이라고 이름했는데 그 선견지명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정말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아름다운 갈대 숲을 지나’ 한반도 땅끝까지 어디에나 포진하고 있는 아파트. 서양에서의 아파트는 단독주택을 마련할 가망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 부류들을 위한 주거 형태이지만,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달동네에서 연탄가스 마시면 동치미 국물이나 마시고 목숨 부지하던 시절에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로 각인되면서 희망과 성공과 행복과 안정의 상징이 되었다.아파트는 높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이 상승의 쾌감. 18평에서 25평으로, 38평에서 45평으로, 성적이 올라가고, 직위가 올라가고, 연봉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며 신분상승을 위해서 아파트 평수를 높여
[김형태의 생각도감] 집13 -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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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창작 동아리 ‘테두리’ 회지 <청춘호>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학생들로 구성된 만화동아리 테두리의 회지 <청춘호>는 일관된 주제를 갖고 있는 매력적인 동인지다. 보통 동인지들이 시간에 쫓겨 미완성된 작품을 수록해 작품집을 읽기가 퍼즐을 푸는 것처럼 난해하기도 하는 데 비해, ‘테두리’는 <청춘호>라는 타이틀로 모아지는 작품을 수록해 독서가 수월하다. <청춘호>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겪는 경험과 그들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가장 밝고 명랑하며, 진취적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그들이 사실은 하나같이 외롭고, 괴로워하며, 소통부재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작품들은 하나같이 우울한 색이다.김세중의 〈In the Evening〉은 티켓 다방에 일하는 여성과 몰락하기 이전 피아노에 얽힌 기억을 그린 작품이며, 박영순의 <상실의 시대>는 소통부재의 삶을 풍자하고 있으며, 양정우
은빛 사막에 외로운 객기, <청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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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무작정 편한 음악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분명 초심자이다. 컴필레이션 음반 너머 좀더 알고 싶어 책과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재즈는 무척이나 힘든 음악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재즈 하면 흔히 떠올리는 자유와 즉흥이라는 키워드가 고난이도의 기술적 숙련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재즈를 제대로 즐기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다. 그만큼 재즈는 고급스러운 문화 장르이다. 어둡고 난삽한 이미지는 CF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콘에 불과하다.그래도 큰 욕심내지 않고 재즈를 가끔씩 듣고 싶을 때, 누군가 길라잡이로 나서 한두곡씩 설명해주고 들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 <재즈 스페이스>는 참 좋은 길라잡이다. 재즈에 목숨 걸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운영자 ‘낯선 청춘’이 들려주는 재즈의 세계에 마음놓고 귀를 맡겨도 좋겠다. <재즈 스페이스>는 앞서 말한 것처럼 고급스럽고 수준이 높다는 의미에서 재즈답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는 이가 감동받을 정도
꼼꼼한 재즈 길라잡이, <재즈 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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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어드벤처배급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코리아플랫폼 PS2언어 한글 음성/ 한글자막적을 능히 제압할 수단을 갖추는 순간, 호러 게임의 재미는 반감한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배경이 된 <바이오 해저드>만 봐도 그렇다. 컨트롤러를 쥔 손에 땀이 배는 것은 베레타 권총 하나와 탄창 한 클립, 그리고 나이프로 어두운 복도를 걷는 게임 초반의 이야기일 뿐 주인공의 손에 묵직한 샷건이 들리는 순간, 이 게임은 슈팅 액션으로 돌연변이해버린다. 엔딩에 이르기까지 두려움의 수렁에 게이머를 잡아두는, 그런 호러 게임은 없는 것일까?얼마 전 국내 출시된 호러어드벤처 <사혼곡>의 좀비들은 이제까지 다른 영화 속에 등장했던 동료들처럼 굼뜨지 않고 영악하다. 게다가 완전히 죽는 법도 없다. 결국, 게이머가 해야 할 일은 ‘격퇴’가 아닌 ‘회피’. 이처럼 가능하다면 적에게 들키지 말아야 하는 <사혼곡>의 등장인물들에게는 ‘뷰 재킹’이라 불리는, 타인의 시선을
두려움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다면, <사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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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블록버스터’라고 자기 정리를 하고 있는 영화다. 규모도 그렇고 이야기의 대중적 설득력도 그렇거니와 영화의 마름새도 그렇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게 아니라 한마디로 작가가 소거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는 어떤 시스템의 결과이다. 사람들은 그 시스템에 고용되어 하나의 나사못으로 기능한다. 이 시스템의 목표는 역시 이윤이다.
이 블록버스터영화의 이념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기 전에, 우리는 여전히 역사적으로 해소되거나 극복되지 않은 문제를 현재진행형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임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우리는, 아픈 사람들이다. 통곡할 정도로 말이다. 여전히 우리는, 상처의 치유가 역사적 과제인 사람들이다. 남한 땅에서 그 과제를 ‘주적 개념’과 떨어뜨려 이야기하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것을 들춰내어 이렇게라도 이야기하는 데만 50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아도 정작 할
‘블록버스터’라는 육체, 그 안의 영혼, <태극기 휘날리며>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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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고기>다니엘 월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동아시아 펴냄팀 버튼 신작영화의 원작소설. 블레어 위치의 고장 앨라배마에 가정을 꾸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는세일즈맨 에드워드는 아들에게 들려주는 베드타임 스토리 속에서만큼은 헤라클레스가 부럽지 않은 영웅이다. 세월이 흘러 아들은 죽음의 침상에 누운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지만, 아버지는 판타지 밖으로 나서기를 거부한다.<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임진모 지음 | 민미디어 펴냄신중현, 송창식, 패티김, 한대수, 양희은, 조용필, 이정선, 김창완, 심수봉, 배철수, 김수철, 한영애, 이선희, 주현미, 이승철, 이병우, 장필순, 이상은, 유영석, 안치환, 신승훈, 강산에, 김건모, 이은미, 윤도현. 그 가운데 패티김의 인상적인 한마디. “나와 이미자는 노래를 그토록 수없이 불렀어도 오리지널 곡과 유사하게 부른다는 말을 듣는다. 노래의 생명은 테크닉이 아니라 순수일 것이다. 기교를 부린 노래는 당시는 어필할지 몰라도 나중
<빅 피쉬>의 원작 소설 <큰 물고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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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역사에 기반한 주류영화
오스카 맞춤으로 만들어진 영화 <콜드 마운틴>은 4편의 잠재적 라이벌(<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라스트 사무라이>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그리고 좀 동떨어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과 그다지 전망없어 보이는 동류 <휴먼 스테인>에 비해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영화가 덩치 큰 전쟁영화이며 섬세한 러브스토리라는 점이다.
하지만 영화 <콜드 마운틴>은 사랑과 전쟁이라는 두 이야기 사이에서 쉽지 않은 전투를 치르고 있다. 찰스 프레이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앤서니 밍겔라 감독이 직접 각색해 만든 이 영화는 (북군의 어이없는 공격 실패로 유명한) 피터즈버그 대공방이 한창이던 1864년 7월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유혈낭자한 격전의 와중에서도 주인공 인만(주드 로)은 전장으로 떠나오며 나누었던 뜨거운 키스의 추억을 아로새기며 사랑하는 연인 에이다(
고상한 무기력, <콜드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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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440호 기획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
지지난주<씨네21>엔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의 불안과 강박’을 논하는 의미로운 자리가 마련됐다. 마치 이런 기획을 지금쯤 안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타이밍 ‘죽이는’ 기획이었다. 나로선 ‘영화읽기’에서(437호) 감독 의도에 충실하느라 대충 수습하고 넘어갔던 <말죽거리 잔혹사> 비판이 둑이 터진 듯 쏟아진 것도 흥미로웠는데, 그 대부분은 공감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4인4색’치곤 너무 모노톤인걸, 싶을 때쯤, 이 글을 쓰게 만든 대목과 마주치게 됐다. 심영섭은 <말죽거리…>가 교실 속에 과거를 가두느라 전태일의 70년대와 박종철의 80년대를 까먹기 때문에,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의 뒤돌아보는 ‘척의 제스처’는 명백한 퇴행”이라 단정한다. 유운성도 다소 애매한 과정을 통해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그는 노스탤지어 영화들이 비인칭적인 대중의 기억을 자극하는 과거의 환유적 대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들의 진보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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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말이 없다. 나무를 깎고 다듬고 매만질 때도. 한눈에 차 뒷바퀴에서 자신의 발꿈치까지의 길이를 알아맞힐 때도. 남자는 말이 없다. 손은 화석처럼 굽고 거칠다. 남자는 오래전에 자신의 아이를 잃었다. 아이는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아내와도 이혼한 그는 혼자 남았다. 무심히 그릇을 닦고 스스로를 위해 밥을 차리지만, 남자는 말이 없다.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남자는 소년원에서 아이들에게 목공 일을 가르친다.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고 무언가를 훔친 나쁜 아이들이다. 남자는 그들에게 비판도 훈계도 하지 않고 그저 나무 깎는 일을 가르친다. 그러나 이 남자 올리비에는 알고 있다. 아이들은 제 어깨죽지로 나무판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한다.
장 피에르 다르덴과 장 뤽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은 관객에게 거대한 의문부호를 마음에 품고 아무런 단서없이 주인공을 따라갈 것을 원하는, 헌신과 사색의 깊이를 요구하는 그런 영화에 속한다. 우리는 올리비에가 무엇 때문에
미니멀리즘 화술의 기적, 다르덴 형제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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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아들>을 보고 인간의 심리조작에 대해 생각하다이런 여자를 상상해보자. 어린 시절을 강남에서 유복하게 보내고 명문 여대에 입학해서 지금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 사업이 실패해서 등록금을 낼 수 없는 것은 물론, 날마다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채권자들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냥 옆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학교를 그만두고 먼 친척이 운영하는 강남 룸살롱에 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성모 마리아를 경배하며 성장한 그녀로서는 술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었다. 게다가, 절대로 매춘은 안 한다는 노선을 정한지라 수입도 생각보다 신통찮았다. 그만둘까, 매춘을 할까, 그냥 참고 지내볼까 고민하던 차에 40대의 중년 남자가 제안을 한다. “하룻밤 자면 10억원 주겠다.” 그는 강남의 늙은 오렌지였는데, 그녀가 본 남자 중에 가장 재수가 없는
용서도 실은 애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