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은 영화의 제목부터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확실한 기획이다. 송새벽 배우가 먼저 캐스팅된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난 평소에도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다. 지난해 봄이었나, 가족들과 여행을 갔다가 시나리오를 받아 스마트폰으로 보는데도 한껏 몰입해서 읽었다. 내 예측을 벗어나는 스릴러로서도 매력적이었고 연기하는 재미도 함께 누릴 수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친구의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로 내몰린 준성(오민석)의 아내 다연의 어떤 면에 끌리게 됐나.
=아주 절실한 여자다. 남편이 무혐의를 받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한 상황에라도 자신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다연의 그 절실함을 모성이라 해석했다. 엄마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절실한 마음을 지닌 사람.
-영화의 전개 구조상 시간순서가 뒤엉켜 있는 데다 매번 국면이 바뀌는 상황이 잦다보니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감정선도 뒤죽박죽이었을 텐데. 순서대로 찍지 않는다 하더라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더라.
=캐릭터의 감정선을 계산하며 장면을 재배치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퍼즐이 맞춰지는 장면들이겠지만 나에게는 상황마다 감정선을 배분하고 중요한 지점을 기억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의상과 분장 등 스타일의 변화를 주기 위한 계산은 말할 것도 없고.
-영훈 역의 송새벽, 준성 역의 오민석 배우와 함께 연기했다. 그런데 다연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현장에서 두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두분 모두 이번 영화에서 처음 만났다. 송새벽 배우는 테이크마다 예측 범위를 벗어나 나도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배우였다. 오민석 배우는 나와 연기하는 거의 모든 장면이 격한 감정을 수반한 현실 부부의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리딩할 때부터 내게 어떤 감정을 확 전달해 주더라. 감정과 감정을 주고받는 호흡의 텐션이 좋았다.
-지난 몇년간 <퇴마: 무녀굴>(2015)의 금주나 <돈 크라이 마미>(2012)의 엄마 유림, <어린 의뢰인>의 아동 폭력 가해자 지숙까지, 선뜻 맡기 어려웠을 ‘센’ 캐릭터로 출연하는 장르영화가 많았다.
=언제부턴가 내 이름 앞에 ‘스릴러 퀸’이란 칭호가 달린 기사가 나오던데, 그걸 보면서 너무 많이 했나 싶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런 방향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진다. (웃음) 장르가 유사하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표현한 캐릭터는 전부 달랐으니까 계속 연기하는 것이다. 특정 장르의 캐릭터로 자주 섭외가 들어오는 것은 맞지만 내 취향도 분명 있다.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인물들에 주로 끌리는데 <진범>의 다연도 이전의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지점이 있다.
-반면에 드라마에서의 역할은 현재 방영 중인 KBS2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의 워킹맘 미선에서부터 tvN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지적인 요원이자 해커 나나황 등 영화 속 캐릭터와는 결이 다른 인물을 자주 맡는다.
=시청자와 관객에 대한 내 나름의 배려이기도 하다.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할 테니까. 한편으로는 나 자신도 영화에서 못다 한 작업을 드라마에서 풀기도 하는, 배우로서 나를 다스리는 전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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